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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마지막 당부 (2021.05.07. 금요기도회 설교. 갈라디아서 6:11~18)

 

갈라디아서 6

11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글자로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오늘은 갈라디아서 마지막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달여간 갈라디아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를 통해 복음이 무엇인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교생활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그저, 율법을 지키고,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은혜, 그리고 용서를 깊이 깨닫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상 심판받을 두려움, 벌받을 두려움과 불안으로 신앙생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확정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기쁨과 평안함 가운데에서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를 온전히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충만하심에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차 나누었듯, 갈라디아 교회에 찾아온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보혈 통해 선포된 구원과 용서의 능력을 축소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다른 조건을 제시하였습니다. 거짓교사들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할례를 강요하고, 규례와 절기를 지킬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의 복음, 자유의 복음, 사랑의 복음을 의무의 종교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고, 다시 예수님 안으로 돌아올 것을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 선포하였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1 전도여행때에 마음을 다해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였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헌신하고 희생하여 세운 사랑의 열매였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을 떠났을 아니라, 바울과의 관계도 끊어버렸습니다. 바울의 심정은 이루 헤아릴 없을 정도로 안타까웠고 비통하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자신의 사도됨과 자신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전하였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당시의 관계를 회상시켰으며,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꼼꼼히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갈라디아 교회에 전하였습니다.

 

먼저 11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1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글자로 것을 보라

 

끝으로 바울은 편지를 자신이 직접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이 글씨를 크게 것은 두가지의 이유로 생각되곤 하는데, 첫째는 그가 강조하기 위해 글씨를 썼고, 둘째는 그의 눈이 아마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글씨로 썼다는 것입니다. 두가지 어떤 이유에서든지 바울은 자신의 마음을 다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뜻을 전하기 위해 직접 편지를 적어 보낸 것이었습니다. 보통은 바울 서신은 대필자가 있어서 바울이 옆에서 말해주면, 그것을 듣고 대필자가 글을 쓰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는 자신의 마음을 다해 직접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사실을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하며 마음을 돌이켜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바울을 이어서 다시한번 거짓 교사들의 허위를 폭로하였습니다. 12, 13 말씀입니다.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바울은 구원을 받기 위해 육체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거짓 교사들을 육체의 모양을 내려하는 자라 비판하였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인간적인 겉치례만을 강조하는 자들이라 비판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겉으로만 그럴싸해 보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려고 하는 것은 그저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할 구실을 만들고자 함이라는 것을 폭로하였습니다. 실제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믿음으로 얻는 것인데, 아무런 쓸데가 없는 할례를 그저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성인이 할례를 받다가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할례를 받으라고 주장하는 그들이 얼마나 내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모순되었는지를 폭로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할례 아니라 모든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자신들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다른 속셈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만큼 사람들을 할례시켰다라는 자랑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기의 종교적인 공적을 과시하고자 성도들을 이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랑을 위해 다른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무엇보다 복음을 왜곡하는 것을 참을 없었습니다.

 

바울은 다시한번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14~16 말씀입니다.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바울은 신앙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도, 자랑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할례를 받는 , 속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안았으면서 겉모습만 그럴싸한 사람이 되는 , 나아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고, 종교적인 업적을 꾸며 대는 , 모든 것은 복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충만한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보혈로 용서하신 용서를 진실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진실된 마음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모습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꾸며도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용서를 깨닫지 못한다며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드러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세상 무엇도 예수님보다 귀한 것이 없고, 이상 세상 속에서 나를 드러내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게 것입니다. 오직 바울은 예수님께 매여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게 되면 겉으로 보이는 종교적인 모습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것이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받고 안받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붙들려 사는 , 용서받은 사람으로 사는 , 하나님의 자녀됨을 깨닫고,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 오직 주님의 영광안에 사는 ,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뿐입니다. 주님의 충만한 사랑과 은혜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바울은 강조하고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은 새로운 규례, 사랑과 은혜의 규례, 십자가의 규례를 따르는 사람에게, 그리고 은혜로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이자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평화와 자비가 넘치길 축복하였습니다.

 

바울은 모든 말을 마치고, 자신의 심정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습니다. 17, 18 말씀입니다.

 

17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간절히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고백했습니다. 앞으로는 문제로 나를 괴롭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이미 그리스도를 전하는 와중에 충분히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질병으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복음의 중심으로 돌아와 다시 온전한 성도가 되길 간곡히 부탁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심령에 있기를 간구하며 말씀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을 다시금 붙들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우리가 의식하듯 의식하지 못하듯 우리는 여러 형식에 익숙해집니다. 신앙의 습관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 우리의 말투, 우리의 예배, 우리의 관계 모든 것들 속에 신앙의 형식이 배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의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로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기도와 찬양을 통해, 우리의 모든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은혜를 깊이 깨닫고, 날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깊이 누려야 것입니다. 주님 은혜 안에 거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하는 신앙생활은 오히려 우리에게 독이 있습니다. 물론 주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고, 사랑을 붙들고 있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로 향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무감각하고, 무관심하고, 아무런 갈망도 없으면서, 그저 겉으로 사람들의 시선에만 신경쓰고, 종교생활만 그럴싸하게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 목회자로서 우리 성도님들을 살펴보면,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려고 애쓰는 귀한 모습을 보이시고 계십니다. 거짓 교사들이나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더욱 은혜를 갈망하고, 더욱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 ,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인생과 모든 삶의 문제들 가운데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시고, 주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오늘도 복음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