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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자의 기쁨  (2014.3.14. 금요기도회 설교)


요한복음 4장 39-42절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오늘 저녁 식사 잘 하셨나요? 여러분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제가 삼각교회 교역자로 와서 참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맛있는 집을 많이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역자들, 특히 담임 목사님께서는 맛있는 음식, 좋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함께 맛 집에서 음식을 나누면 기분도 좋아지고, 더불어 마음을 나누기가 참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해서 시시 때때로 맛 집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좋은 곳이 발견되면 조금 멀어도 다같이 가서 함께 음식을 먹곤 합니다. 덕분에 저는 이 곳에 와서 이렇게 더 둥글둥글 해졌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집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되고, 여건이 되면 저도 대접하며 살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맛 집을 제가 많이 알고 있어도, 이것을 말로만 전하면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냉면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냉면 맛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 쪽집 냉면은 감칠맛이 더 좋아요. 저 쪽집 냉면은 육수의 진한 맛이 일품이죠, 아랫집 냉면은 새콤달콤한 맛이 참 좋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대충은 알겠지만 어떤 냉면이 가장 맛있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제가 모시고 가서 맛을 함께 보는 것이지요. 제가 가장 맛있는 집이라 소개했더라도 사람은 다 취향이 다를 수 있고, 또 각자 체험해 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맛 집만 하더라도 이러한데, 우리가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소개시켜주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일까요? 한 사람을 소개 시켜 주려고 해도, 그 사람의 성품, 인격, 살아온 환경, 가족관계, 현재 하는 일, 가치관 등등 엄청나게 많은 것을 나누어야 겨우 조금 알 수 있을까 말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실제 이 사람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소개해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일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갈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데 있어, 너무 쉽게 말로, 교리로, 생각으로 전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혹시 저는 그래서 아예 소개하지 않습니다. 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포기하고, 전도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명동에 나가면, 또는 지하철을 타면 큰 소리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에 거리에서 외치라고  하는 구절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혜 없는 태도이며,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바울은 그리스에서 전도할 때 철저히 그들의 지혜에 맞추어 전도했으며,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서도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전도했습니다. 성경에서의 거리에서의 외침은 특별한 상황이거나,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정적으로 전파하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전파라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소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 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약 제가 냉면을 소개하고자 할 때 다른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 냉면을 생각하면서 (크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런 표정이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이 들것 같습니까? 아 그 냉면 정말 맛있나보다 나도 꼭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맛있다고 이야기를 해도 이런 표정(아무런 감동도 없는 무표정)으로 말로만 전한다고 해보십시오. 그 맛이 느껴집니까?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그 냉면을 먹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 경험하고, 맛보고, 그 감동이 이심전심으로 느껴 질 때 사람은 그 감동을 함께 맛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은 여러 남편을 가진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뜨거운 낮에 홀로 우물을 나올 만큼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차별과 질시에 익숙해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절망 가운데에서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인생에 한 번도 겪지 못한 놀라운 일을 경험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경험, 사랑을 받는 경험,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경험을 하자마자 마을로 뛰어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이야기 했을 까요? 아마도 매우 들뜬 목소리로, 감격해가며, 떨면서 사람들에게 전하였을 것입니다. 누가 봐도 그녀가 놀라운 일을 경험했구나 하는 것을 알아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예수께 유하시기를 청한 것입니다. 아직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예수님 저 사람에게 분명한 무엇이 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들어보아야겠다 결정한 것입니다. 이 여인을 보며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함께 하며 그 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한다면 사람들을 우리를 보고 물어볼 것입니다. 예수님이 도대체 어떠한 분이시길래 네가 그렇게 기뻐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니? 예수님은 우리의 존재로 전해야 합니다. 지식으로, 우리의 행동으로, 우리의 성취로 전하는 것은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같이 42절을 봉독하겠습니다.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그들이 예수님을 믿은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친히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한계가 있고, 하나님의 은총이 있습니다. 저는 아동부 전도사로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을 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아무리 좋은 설교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길을 안내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문 앞 까지는 갈 수 있더라도, 결국 그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이들로 하여금 그 마음의 문을 열게 하셔야 했습니다.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셨던 것처럼, 모세를 부르시고, 이사야를 부르셨던 것처럼, 결국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부르실 때 우리 아이들이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설교해야 하지만, 결국 모든 구원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참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소개한다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가족이 믿음이 없을 때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말로 가자고 해도, 협박하고, 설득하고, 애교를 부리고, 고집을 피워도 신앙은 절대 강제로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결국 기도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전도는 그래서 결국 기도로 이어집니다. 스스로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합니다. 자신의 한계와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배우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또한 자기 마을 사람들의 영접하심을 통해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신비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 삼는 제자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나님을 소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구원의 신비함을 경험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놀라운 일을 경험하였는가, 그리고 그 구원 앞에서 나는 얼마나 부족한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지역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길을 경험하는 놀라운 은총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