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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새로운 눈을 뜬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며, 진정한 가치가 하늘에 있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리 하나님을 만난 놀라운 경험을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제든 낙심하고, 실족하여 세상의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는 죄인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그리고 세상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출애굽 경험은 그 자체로 하나님 경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세운 우상들의 허상과 무력함을 선포하는 하나님, 자신들의 고통과 탄식 소리를 듣고 그들을 건지시는 하나님, 생명과 통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자연을 창조하시고 온 자연을 운행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은 당대의 어떤 민족도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을 경험하였고, 그 분의 통치를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만을 볼뿐 하나님 성품, 인격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지 하나님의 인격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주인이 노예를 다루듯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만을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을 삶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모든 마음이 마비되어 버린 어리석은 우리와 매우 닮아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졌다고 보이는 순간 불평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을 이끌어낸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제하고 싶으셨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제하는 것 그 자체가 진정한 구원임을 가르쳐주고 싶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욕망, 필요를 채우는 것만이 ‘삶’이라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과 사랑하고 교제하고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 깨달을 수 있도록 싶으셨습니다. 생명과 삶의 근원이 거대한 문명과 부유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생명과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의 문화, 이집트의 생각, 이집트의 방식에 익숙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 또한 그들이 살고 있었던 이집트의 방법과 같을 것이라 착각하였습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서 다루었던 것처럼, 하나님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아무런 인격적 교제 없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고, 욕망을 채워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모든 생각을 바꾸고 싶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의 방식으로 살아갔던 그들에게 전혀 새로운 방식 곧, 하루 하루 교제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노예를 자녀로 바꾸고자 하신 것입니다.

  

노예가 주인이 되는 길은 참으로 어려운 길입니다. 노예가 자신이 노예가 아님을 알게 되어도 노예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이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또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래서 매일매일 먹을 수 있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먹으며, 새롭게 하나님을 되새길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날 것을 요청하십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만나와 메추라기는 예수님입니다.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끊임없이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나아가 온전한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