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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자 (2015.03.07. 사역팀 연합 집회) - 하나후사 류이치로의 글을 토대로 한 설교


골로새서 4장

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요즘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단순히 얼굴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서 아 우리가 함께 기도하는 것이 참 중요하구나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 베네딕트는 기도가 곧 노동이요, 노동이 곧 기도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가 곧 사역이요, 사역이 곧 기도다. 기도가 곧 봉사요, 봉사가 곧 기도다. 우리의 기도가 곧 섬김과 헌신이요, 헌신과 섬김이 곧 기도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와 우리의 사역이 곧 하나이기에, 우리는 사역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반쪽짜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사역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이 기도가 곧 우리의 사역임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이 곧 기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모든 사역을 기쁨 가운데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말씀 골로새서 4장 2절을 통해서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기도를 계속 할 수 있을까요? 식음을 전폐하고 항상 기도만 하라는 말씀일까요? 이 말씀은 우리의 기도가 끊임이 없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적극적으로 본다면 모든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의 삶을 살 고 있는지 되돌아봅시다. 오늘 말씀 제목은 기도하자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삶의 순간을 기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시간을 또한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호흡처럼 기도할 수 있는 지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늘 기도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초청의 자리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말주변과 능력, 영빨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해서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시작과 과정과 끝이 모두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주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첫째로 청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설교에도 지난 주에 선포되었고, 지난번 집회때에도 제가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는 기본적으로 청하는 것입니다. 요청하고 받는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원초적 나눔입니다. 그리고 그 나눔을 통해 우리는 사랑을 경험합니다. 어린나이에 먼저 성숙해버린 애들이 있습니다. 우리집은 가난하니까, 우리집은 엄마 아빠 사이가 안좋으니까, 우리 엄마 아빠는 바쁘니까, 부모에게 요청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성숙한 것이 아니라, 아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청하는 것, 진실되게 요청하는 것,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표현,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청을 귀히 여기시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기도는 둘째로 함께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은 ‘아 지금 여기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하며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내 일상 속에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내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깊이 경험함으로 아 하나님이 내 모든 곳에 함께하시는 구나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시시때때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죠. 하나님 내 모든 삶에 개입해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밥먹을때도, 누군가를 만날때도, 시험을 볼때도, 강의를 들을 때도, 하나님 하나님 함께해주세요 친밀하게 소통하는 것입니다. 짧게도, 길게도, 깊게도, 가볍게도 모두 만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셋째로 탄식하는 것입니다. 가장 깊은 기도가 나올 때는 언제인가요? 우리가 아플때입니다. 제가 수술을 얼마전에 했는 데 마취가 풀린 직후, 온 목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김지하 시인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싯구가 있는데, 이게 목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껴보면 그 간절함이 얼마나 간절한 건지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아픈 그 순간 하나님을 찾는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을 가장 간절히 찾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어떻게 힘들때만 기도할 수 있냐며 오히려 힘들 때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했을 때 교회가기 부끄럽다며 오히려 신앙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탄식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 탄식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눈물과 함께 울어주시는 하나님, 그 고통과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넷째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 독백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위해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하나님 앞에 선자의 자연스러운 고백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우리 또한 기도의 순간에 떠오르는 우리의 죄와 악함, 한계 등을 고백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어떤 이는 마음속에 죄책감 때문에 기도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이 들 때 우리는 아 이때가 기도할 때구나 생각하고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회개를 하고, 회개를 통해 죄사함의 기쁨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짐을 경험합니다. 수련회 후 기쁜 표정들은 우리 안에 임한 죄사함의 기쁨입니다. 


다섯째로 기도는 듣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이렇게 대답하라고 알려줍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기도는 말하는 것인 동시에 듣는 것입니다. 친구중에 자기말만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듣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만날때마다 자기얘기만 하는 사람을 보면 피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리석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교만해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워질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이러한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기도는 말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는 것,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하겠다고 고백하는 것, 그리고 모든 매체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못들을 때 여러분이 더 답답할까요 하나님이 더 답답할까요? 바로 하나님이 훨씬 더 답답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들을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듣고자하는 귀와 지혜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친구를 통해, 말씀을 통해, 부모님을 통해, 깨달음을 통해, 마음에 드는 마음을 통해, 직접 듣는 음성을 통해, 환상을 통해, 방언을 통해, 심지어 침묵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섯째로 기도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기도를 통해 깊은 감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과 시선으로 내 삶을 보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볼 때는 그저 폭풍이고 전쟁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때는 놀라운 섭리와 사랑, 인도하심이 있음을 기도로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큰 사랑을 깨닫게 되고, 최후 승리를 바라보게 되어 감사하게 됩니다. 


일곱째 기도는 안식하는 것입니다. 한병철씨의 피로사회라는 책이있습니다. 요즘은 심리정치라는 책을 냈는데요. 온 세상이 해야한다, 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가득차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미디어와 에스엔에스가 이러한 몰아치는 사회를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쉴 수 있는 여지가 없고, 안식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주는 쾌락과 세상이 주는 즐거움 안에서 쉬라고 강요당하며 정작 참된 쉼은 누리지 못하는 사회가 오늘날 사회입니다. 쉬는 것 자체도 소비적으로 쉴 것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참된 빈 공간, 빈 시간, 빈 삶을 찾아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만나는 자리,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 쉬는 자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평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때도 ‘주쒸없소서’ 이렇게 일방적인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 전도사님 아까 청원하라면서요, 지금은 하나님으로 만족하라니 앞뒤가 안맞잖아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앞에서 수많은 문제들과 고민들, 어려움들과 꿈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청원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내려놓게 하시고, 풀어주시고, 나아가 참된 안식과 교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하고,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결국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닮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떠했습니까? 누구보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으로 감격하고, 그 사랑으로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모두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삶을 귀한 기도로 받으시고, 예수님의 순종의 그 기도를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처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청원하는 기도를 통해 깨달을 수도 있고, 함께하는 기도를 통해, 안식하는 기도를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되고, 예수님 닮는 법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기도할 때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기도할 때 우리의 죄된 모습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또한 알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시간을 정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때때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에만 머물러있지 않게 기도해 합니다. 이 모든 기도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어드리고, 온전히 우리를 예수님을 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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