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윤리 (2015.03.01.대학부 집회 설교)
누가복음 14장
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지난 한주 잘 보내셨나요? 수련회를 다녀온 친구들은 수양관에서, 수련회를 다녀오지 못한 친구들은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잘 지냈으리라 믿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두 예수님으로 통일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저스 올 올해 우리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의 삶 속에서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어떤 만남, 어떤 장소에 있었던 간에 그곳에 우리 예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와 모임, 말씀, 기도를 통해 그것을 또 확인하는 시간 되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사람, 예수님의 닮아가는 사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잘 알 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마다 예수님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착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종교적인 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교생활을 잘 하고 율법을 잘 지키면 예수님을 잘 닮아가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있는 모습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일상 속에서 성공하고 성취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치적 변혁을 일으키는 것이 예수님을 닮은 것이라 생각해서 정치적 변혁을 추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수도원 같은 곳에 들어가 내면을 닦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라 생각해서 그러한 길을 추구해 나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겠다고 고백하면서, 사실은 예수님에 대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 민족주의자, 자유주의자, 종교주의자, 세속주의자, 열광주의자, 신비주의자가 각각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 생각하십니까?
앞서 말한 다양한 길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면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을 전체로 이야기하는 것을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억압이 발생하고,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이크를 보면 동그라미도 있고, 길쭉한 부분도 있고, 다양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동그라미라고만 하면, 우리는 알고는 있으나 오히려 왜곡하고 말 것 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작은 물건 하나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되신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은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분이야 단정 짓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마땅히 이래야해 하며 정죄하는 것 또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어려운 상항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이해했을까요? 다같이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8절까지를 봉독하겠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해한 핵심 사건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닐 때에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몰랐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주실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꿈이 망가뜨려질 것처럼 보이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버렸고,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뿔뿔이 도망가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였고, 성령님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나서, 예수님을 닮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던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셋 동산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우리가 읽은 고백을 올려드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의 의미를 성령님을 통해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 가운데에 예수님을 이해하는 핵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였기에,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였기에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았습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온전한 자기희생, 내려놓음, 자기낮춤이 바로 예수님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윤리를 보여줍니다. 1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은 안식일에 병에 걸린 사람을 고쳐주는 것이 옳은가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것은 사상에 있어서 예수님을 닮는 법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안식일 법이 곧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 속에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고 싶은 욕심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과 같은 율법을 통해 나라의 해방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더불어 자신의 재산과 자신의 자녀들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욕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자신의 욕심과 꿈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은 외면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지킨다고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 욕심과 꿈을 위해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고통위에 있어도 그것을 외면할 때가 많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아픔, 고통, 슬픔을 보고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안식일법을 어기고 생명을 살렸습니다. 헌신은 자기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을 수 없을지라도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종교적 정결을 위해 강도만난 사람을 외면했던 제사장보다 기꺼히 자신의 것을 내어 도움을 주었던 차별받았던 사람, 사마리아인이 훨씬 선한 이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절에서 11절은 역시 삶의 자리에서 따라야할 예수님의 뜻을 잘 보여줍니다. 잔치자리에는 상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 더 빛나는 자리에 오르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자리가 아니라 낮고 천한 자리로 갈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상의 예의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인생 전체를 통해 살아가야할 방식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더 낮은 자리, 더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자리, 더 섬기는 자리에 가야 합니다. 이는 그 자리가 곧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리로 가면 갈수록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낮은 자리로 가면 갈수록 그렇게 우리를 헌신할 수 없는 우리의 한계를 경험함으로 예수님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낮은 자리로 가게 되면 오히려 우리는 높은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역설적인 윤리입니다. 거창고 직업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십계명에는 놀라운 역설이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제1계명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제2계명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제3계명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제4계명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제5계명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제6계명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제7계명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제8계명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제9계명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제10계명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이것이 바로 기독교 윤리, 곧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이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윤리입니다. 죽고자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죽음으로서 사는 윤리입니다.
12-14절은 관계에 있어서 예수님을 닮는 법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좀 더 유익한 사람을 찾고, 그들과 가까워지려고 합니다. 전도사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 친구 중에 아주 부자가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를 만날 때 이 친구가 부자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자유하려고 했지만 정말 쉽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이처럼 더 가까운 사람, 더 부유한 사람, 더 좋은 사람, 더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하고 싶고 그런 사람과 더욱 친해지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더 약한 사람, 더 부족한 사람,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함께하고, 그들에게 베풀고, 그들과 더불어 사랑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우리가 유익을 위해 만남을 갖게 된다면, 그 모임은 반드시 우리 스스로를 얽어맬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인생이 기브 엔 테이크라면, 평생 서로가 이익에 얽혀 살 뿐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 또한 조건 없이 사랑하고, 조건 없이 섬길 때 예수님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고, 더 연약한 사람과 사귀는 것,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란 예수님처럼 우리를 십자가에 거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상과 가치관을 가졌던 간에, 그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무엇을 추구하고 실천하며 살던 간에 그 안에 십자가의 자기 비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 스스로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 이것들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힘도, 지혜도, 의지와 인내력도 갖지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 안에 행하시는 이는 성령님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구원의 기쁨을 주심으로 우리가 기쁘고 즐겁게 이러한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더불어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이 예수님을 배움으로 더욱 기뻐질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낮아질수록 깊어질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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