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행악자의 운명 (2015.04.02.새벽기도회 설교)
누가복음 23장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고난 주간 중 성금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날입니다. 예수님은 이날 새벽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면서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의 이른 아침 예배가 겟세마네와 같은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는 두 명의 행악자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매우 비참한 운명에 빠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형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십자가 형은 로마의 가장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의 목적은 고통과 수치심이었습니다. 십자가 형은 가장 비천한 계급의 사람들이 로마의 권위에 도전했을 때 처하는 형벌이었습니다. 보복과 본보기의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들은 모든 옷을 벗겨졌습니다. 뼛조각과 쇠조각으로 묶인 채찍질을 통해 온 몸을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흘린 피로 타는 듯한 목마름을 겪었습니다. 가슴압박으로 호흡을 못해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결국 지쳐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비참하고 처절하게 나무에 걸어 온 세상의 조롱이 되었습니다. 로마는 십자가형을 통해 죄인에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의 인생은 실패하였다. 너의 인생은 저주받았다. 너의 인생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망한 인생이다. 공교롭게도 십자가 처형의 장소의 이름은 죽음과 멸망의 상징 해골이었습니다.
행악자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고 절망하고, 무너졌을 것입니다. 십자가형을 받은 그들은 정치범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혹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온 인생을 걸었습니다. 정치범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살인 강도일 수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혹은 분노와 욕망을 위해 폭력과 살인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어떠한 길이었든 그들은 자신의 뜻과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순간 그들은 그 들 사이에서 함께 절망의 길을 가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들과 똑같은 비참함, 똑같은 처절함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들은 그 죽음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대화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예수님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삶에 대해, 이적에 대해, 말씀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자기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강도가 예수님께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당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그의 비난은 로마 군인과 유대 백성들의 비난과 비슷해 보이는 비난이었습니다. 로마 군인들과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께 네 스스로를 구원하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강도의 비난과 로마군인, 유대인들의 비난과 이 강도의 비난은 전혀 다른 차원의 비난이었습니다. 로마인들, 유대인들의 비난은 승리한 권력자의 비난이었습니다. 교만함과 오만함이 가득 찬 비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비하하는 구원이었습니다. 폭력과 살인의 비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강도의 비난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절망이 담긴 비난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이렇게 무력하게 죽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의 인생을 이렇게 망치실 수가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우리 유대를 위해 한일은 무엇입니까? 도대체 내 인생 속에서 하나님 당신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이제라도 진짜 그리스도라면 당신과 나를 구원해 보십시오 외치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아픔 앞에서, 우리의 고난 앞에서 너무나도 무기력해 보이는 그리스도를 향한 원망과 탄식의 비난이었습니다. 마치 지독한 절망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외치는 항변과 같은 비난이었습니다.
그 때 다른 한 강도가 그 비난 앞에 새로운 고백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고백은 앞선 강도의 고백과 완전히 반대의 고백이었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악을 스스로 바라보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했던 삶을 돌이키는 고백이었습니다. 자기의로 가득 찼던 삶에 대해 회개하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으니 나는 심판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 저는 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 저는 심판받기에 당연한 사람입니다. 고백하였습니다. 더불어 그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저주와 수치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려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눈에 화려한 것,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합당한 것, 곧 세상의 권세와 세상의 영광이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가장 낮고, 천하고, 고통받고, 절망적인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는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고통당하는 자신과 함께 하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당하는 예수님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골고다, 곧 해골의 언덕에서, 그 죽음과 절망의 언덕에서 그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곳은 하나님의 생명 구원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절망과 눈물의 땅도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면, 그곳은 예배의 땅, 구원의 땅, 영광의 땅이 됩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십자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그 자체가 기쁨이 됩니다. 실패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패 그 자체가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죽어도 살고, 살아있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십자가의 자리, 고통과 절망과 수치와 죽음의 자리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어가는 그 자리에서 기꺼이 함께 고난을 겪으며 죽어 주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바라보야 할 믿음은 바로 이러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통해, 성공과 번영을 통해, 영광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장 비천한 곳, 가장 절망적인 곳, 가장 쓰라린 곳, 가장 아픈 곳, 가장 죽음과 가까운 곳에 하나님이 있다. 그곳에 내가 십자가를 지고 너희와 함께 한다. 그 사랑이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낙원에 들어간 강도처럼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파송의 말씀 :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절망, 죽음과 함께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부활 생명의 참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우리 이웃의 죽음과 절망 가운데 함께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의 빛을 나누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고난의 예수님처럼, 이 땅 가운데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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