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와 삯군 (2015.4.23. 직장인 예배 설교)
요한복음 10장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여러분은 목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흔히 그려진 성화들을 보면 푸른 초장에 하얀 양들이 뛰어다닙니다. 목자는 지팡이를 들고 그들을 선한 표정으로 인도합니다. 또 어떤 목자들은 양을 머리에 안거나 이고 가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이 쓰인 때인 고대 근동에서는 목자에 대한 이미지가 이와 달랐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목자는 절대적인 힘과 권위, 위엄의 상징이었습니다. 바벨론 함무라비 법전에 보면 함무라비는 스스로 자신을 진실로 평화를 가져오는 목자라 칭하였습니다. 이집트 파라오들은 자신들은 선한목자요, 모든 군사들을 보호하는 자라고 칭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신들의 권위나 능력을 표현할 때 당대의 사람들은 목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을 목자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보호자시오, 힘이시오, 능력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떼들을 그 힘과 능력으로 인도하고, 먹이고, 지키고, 돌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어 주셔서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지키시고 돌보신다 생각했습니다. 가장 강력한 힘과 능력이 곧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목자 되심은 구약성경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편 78편, 이사야 6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양같이 인도하여 내셨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의 다윗 언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가 되어주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끄시고 키우시는 것 뿐 아니라 이스라엘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을 때 더불어 심판하시는 모습도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했을 때 회복시키시는 목자의 모습 또한 예레미야 23장을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힘, 하나님의 주권의 모습을 목자에 빗대어서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배경 가운데 선포된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전절이 되기 전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수전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더렵혔던 안티오쿠스를 몰아내고, 성전을 탈환하여 회복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로 따지면 광복절과 같은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날 함께 모여 에스겔서 34장을 봉독하였습니다. 에스겔서 34장은 거짓 목자였던 당대의 종교지도자들을 비판하는 말씀입니다. 또 참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양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킬 것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세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구원해주실 능력의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스스로를 선한 목자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는 자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곧 하나님이다 선언하신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겐 신성모독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말씀은 그 다음에 나온 말씀이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그 양들을 위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그리고 구약에서 목자는 능력과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목자가 죽어버리면 양들을 돌볼 이가 사라집니다. 목자는 다윗처럼, 함무라비처럼, 파라오처럼, 심지어 하나님처럼 힘과 능력과 권세를 가진 분이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목자라고 하면서, 더불어 자신이 죽을 것을 동시에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새파란 빨간색, 정말 못생긴 최고미남, 수영을 아주 잘하는 맥주병과 같은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신 이 말씀에 예수님의 복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대에 자신을 목자라고 자칭하는 이들을 오히려 삯군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삯군이란 바로 목자처럼 보이나, 결정적인 순간 양들을 떠나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삯군의 특징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 양들을 이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자신의 신념과 욕망, 종교행위를 믿는 것입니다. 바로 우상숭배자들입니다. 당대 대표적인 삯군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실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하나님처럼 생각했습니다. 율법이 하나님인 세상에서 사람은 율법의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에스겔 34장에 나오는 거짓 목자들은 성전을 하나님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전만 잘 지키면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전을 위해, 종교 권력을 위해 사람은 도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말씀을 1차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은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가장 큰 위협을 준 이들은 영지주의 이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지혜가 곧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혜를 위해 사람은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곧 삯군이 되어버립니다. 그 가운데 양들은 도구가 되고, 이용당하고, 결국 버림당하게 되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힘과 권력, 능력, 지혜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께서라고 생각하는 것을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현실 때문에, 우리의 상황과 마음 때문에, 우리의 죄 때문에 삯군을 따릅니다. 돈을 우리의 목자 삼습니다. 우리의 인맥을 우리의 목자 삼습니다. 권력과 힘을 우리의 목자 삼습니다. 우리의 학력과 우리의 지식을 우리의 목자 삼습니다. 심지어 종교적 권위와 종교적 행위를 우리의 목자 삼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삼게 된다면, 우리는 이것들의 노예가 되고 말 것 입니다. 성경은 그 끝을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해친다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것들은 결정적인 순간 우리를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 삼아야 할 것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나오는 놀라운 용서와 사랑, 인정과 생명을 얻을 때 우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모든 우상을 십자가에 걸 때 우리는 부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선한 목자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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