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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2015.12.13.대학부집회설교)


마태복음 1장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제가 이번 겨울에 두나미스 터키팀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번 터키팀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역을 떠납니다. 기존 터키팀은 신약성경, 특히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나오는 많은 기독교 유적들을 방문하는 일정이 많았습니다. 일종의 비전트립의 성격이었지요. 그런데 이번 터키팀은 특별한 사역을 하러 떠납니다. 바로 터키 안에 있는 수많은 난민들을 돕는 사역을 하러 떠납니다. 터키 안에 있는 난민들을 도우러 가게 되면서 저는 조금 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왜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되어갈지, 내가 그들에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함께 하는 우리 두나미스 터키 팀들과 이러한 부분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그들에게 가서 우리의 생각과 방법으로 돕는 흉내만 내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깊게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소소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동의 역사는 어떠한지, 이슬람은 도대체 어떤 종교인지, 현대 중동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문화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왜 요즘 문제들은 더 격화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책들을 살펴보고 논문도 보고, 다큐멘터리도 보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제가 드는 느낌은 마치 이런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집 앞에 있는 갯벌에서 작은 게들을 종종 잡곤 했습니다. 게들은 아주 작은 구멍에 걸쳐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합니다. 그런데 잡으려고 하면 몸을 작은 구멍에 쏙 숨기곤 했습니다. 그 게를 잡으려고 갯벌을 파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파게 됩니다. 아주 작은 구멍인데 결국 허리만큼 파야 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중동에 대해서, 아이에스에 대해서, 시리아에 대해서 공부하면 할수록 아 문제가 정말 복잡하구나, 아 정말 답이 없구나, 아 정말 심각하구나, 하아. 이거 어쩌면 좋냐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책 한권 본사람’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 한 권만 본 사람은 그 한 가지 관점으로 세상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복잡합, 다단함, 혼돈스러움, 다양성을 다 본 사람은 어떤 문제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동은 정말 간단히 이야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의 복합체였습니다. 중동은 정말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더불어 우리나라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선말의 문제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모두 거친 우리나라 역시 이에 못지않게 복잡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총과 칼을 들고 싸우지 않을 뿐,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 살며 숱하게 싸우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북한과의 관계까지를 생각해보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상황과 문제도 여전히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어르신들이 폐지를 줍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0퍼센트가 다 되는 노년 빈곤율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조금만 잘 살펴보면 주변에 자살한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 년에 자살하는 사람이 만 사천여명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곁의 많은 청년들이 실업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고, 점점 더 살기는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심화되어가는 빈부격차와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것들도도 우리의 이웃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이 땅도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이 있고, 여전히 수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고, 씻기지 않은 눈물이 흐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면, 우리의 일상도 참 많은 고통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재정의 문제, 학업의 문제, 마음의 문제 기타 삶의 다양한 문제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환경 속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우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습니다. 다 밝은 것 같고, 다 좋은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슬픔과 고통은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더불어 인류가 문명을 이룬 이래 고통과 아픔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사실 과거로 돌아갈수록 인류의 역사는 더욱 비참하였습니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고, 빈곤함으로 인해 굶고 헐벗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습니다. 가혹한 고문과 처벌과 전쟁이 빈번하였으며, 노예제도와 사회적 억압이 극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교의 강한 율법주의, 로마 제국의 폭력적인 통치, 수많은 질병과 사고들, 무엇보다 해결되지 않는 가난으로 인한 헐벗음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처참함과 고통 가운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고통을 숙명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신음을 들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러한 세상,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선포하신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시고 그 마음에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신 것입니다. 그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 신음이 자신의 신음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그 모든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오히려 더 큰 아픔으로 여기고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것을 말씀은 이처럼 세상을 사랑했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통을 끝장내겠다 결단하시고, 스스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을 함께 겪으셨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며, 함께 굶주리고, 함께 피곤하고 지친 삶을 사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3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삶의 고통가운데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모든 고통 끝에서, 모든 사람의 고통을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의 울부짖음, 절규, 고통, 슬픔, 눈물, 절망, 죽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지셨습니다. 세상의 고난 속에서 고난 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섬김으로 내어주셨고, 결국 그 모든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하나님의 단절된 상태를 회복시키고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생명을 드러내고자, 우리의 모든 우상과 죄악을 무너뜨리고자, 기꺼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이 땅의 모든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변화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낸 말씀입니다.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임마누엘 예수님을 생각할 때 늘 더불어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우리가 그분의 놀라운 헌신과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구나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임마누엘 예수님을 생각할 때 아 이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돈이 아니구나, 내 삶의 주인이 학벌이나 나의 상처가 아니구나. 이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나의 상황과 처지와 상관없이,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존재구나, 나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세상은 고난과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세상은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결국 세상에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물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얼마전 태안반도에 기름이 크게 유출된 적이 있었습니다. 기름이 해안가를 따라 갯벌과 돌을을 모두 덮어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기름을 닦으러 봉사했던 기억이 여러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기름이 바다를 덮고, 해안을 덮으면 그곳은 죽음의 땅이 됩니다. 땅 속 생물들의 호흡 자체를 막기 때문입니다. 그 곳은 오랜 시간 죽음이 지배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기사하나를 보았습니다. 사라졌던 새들의 둥지가 한두개씩 발견된 소식이었습니다. 생명의 지표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곳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머지않아 모든 곳이 다시 생명이 충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밑둥이 잘린 나무는 아무리 나뭇잎이 많고 열매가 많이 달려도 죽은 나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앙상한 나무라도, 작은 잎이 돋는 것 본다면 우리는 이 나무가 살아있음을 알게 됩니다. 온 세상이 죽음이 있어 보이고, 한국 사회가 절망적이어 보여도, 한국교회가 문제가 많아 보이고, 우리 가정이 아픔이 많아보이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희망 없어 보여도, 우리는 살아있는 둥지, 살아있는 싹을 보며 아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구나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이런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능력과 자질과 성품과 가능성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 희망이 일하는 통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들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동행하는 사람은 세상의 기준에 매어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돈을 가지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을 지배합니다. 성공을 가지고 성공을 사랑하는 사람을 지배합니다. 쾌락을 가지고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을 지배합니다. 폭력을 가지고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두렵게 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8절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어떠한 고난과 고통, 두려움 속에서도 오롯히 생명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그 일을 능히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작은 불꽃이지만 이 땅의 어둠을 몰아낼 것입니다. 여러분은 작은 소금이지만 이 땅이 부패하는 것을 막아낼 것입니다. 여러분은 작은 누룩이지만 이 땅을 크게 부풀려낼 것입니다. 여러분은 작은 씨앗이지만 풍성한 나무가 되어 많은 열매와 휴식처를 허락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위대해 보이고 커다란 일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이 속한 곳에서 임마누엘 예수님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존재로 굳건히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두려움과 상처와 열등감으로부터 온전히 해방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과 생명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여기 이 사람이 있어 이 땅에 소망이 있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 이 사람과 함께 하는 하나님이 있어 세상이 소망이 있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 나는 죽고 내 안에 하나님만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없는 이 땅에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이 생명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이땅에 우리를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