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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10-16 (2016.06.10. 아침묵상)

category 묵상/빌립보서 2016. 6. 10. 14:50

<말씀>

빌립보서 3장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오늘 말씀은 쉬운 이해를 위해 새번역을 함께 첨부합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12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16    어쨌든, 우리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합시다.


<나눔>

1. 오늘 말씀은 어제의 말씀과 이어져 계속 됩니다. 바울은 어제 말씀 (빌 3:1-9)을 통해 구원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비롯됨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그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고백합니다.


2. 바울은 그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삶이란 그 십자가와 부활을 사는 삶입니다. 


3. 바울은 빌립보서를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썼습니다. 그 감옥 생활이 참 힘들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고난과 아픔을 부활을 누리기 위해 거쳐야 할 당연한 과정이라고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십자가 죽음’만이 부활을 누리는 길이라는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4. 바울은 10절, 11절을 통해 고백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의 능력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부활을 알기 위해서는 그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나아가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본받아,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고 싶습니다.” 고백한 것입니다.


5. 나아가 12절, 13절, 14절을 통해 “나에게 있어 그 고난과 죽음의 길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고난을 향해, 죽음을 향해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붙들어 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길의 끝에는 부활이 있기에 나는 기꺼이 그 곳으로 향해 걸어갑니다. 아직 그 길의 끝에 다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주님께서 부활의 상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고백했습니다.


6. 바울이 다다르고자 한 믿음의 완성은 예수님과 함께 온전히 죽는 것이었습니다.


7.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은 곧 ‘십자가 죽음을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8장 34절, 35절을 통해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 그리스도인이란 죽는 사람입니다. 그 죽음의 길이 사는 길, 부활의 길, 영생의 길, 하나님 나라의 길임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더 죽으려고 애쓰고, 더 죽으려고 결단하며, 더 죽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9. 그렇다면 죽음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이 자살이나 자학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세의 수도승들은 고행을 통해 십자가를 지려고 했지만 이것은 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진정한 죽음의 삶이란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 삶에서 겪는 어려움과 아픔, 나아가 죽음까지도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돌릴 때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 죽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와, 십자가 죽음으로 기꺼이 나아갈 용기와, 십자가 죽음을 허락하신 놀라운 기쁨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10. 오늘은 시로 마무리하겠습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인생이 잔잔한 호숫가에 있는 오두막에서 

조용히 흘러가고 있을지라도, 혹은 거친 바다에서 밀어닥치는

파도와 싸우며 시련을 받고 있을지라도, 

고요히 사는 것을 명예로 삼는 곳에, 

혹은 몸부림치고 싸우고 있는 곳에 굴욕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당신이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어 주시기를, 

온전히 당신께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당신께서 이끌어 주시기만 한다면, ...

우리가 얻는 것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 

우리는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잃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는 이런 삶이든 저런 삶이든, 어느 삶이든 간에 

모든 삶이 진실한 삶일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누구든 위험과 거리가 먼 수치스러운 

안일함으로 사람들을 이끌지 않으시고, 

어느 누구든 터무니 없는 모험으로 

사람들을 이끌지도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 쇠얀 키에르케고어


"

우리는 후퇴함으로써 나아갑니다.

우리는 떨어짐으로써 올라갑니다.

우리는 고통당함으로써 정복합니다.

우리는 침묵으로 설득합니다.

우리는 아낌없이 줌으로써 풍요해집니다.

우리는 온유함으로써 땅을 물려받습니다.

우리는 슬퍼함으로써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는 참회하고 기도함으로써 영광을 얻습니다.

"

- 존 헨리 뉴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베푸시는 성령의 온갖 은총과 선물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것은 바로 자기를 눌러 이기고, 

고통, 모욕, 수치, 불쾌한 것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달게 참아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다른 선물은 자랑거리로 삼을 것이 못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다 받은 것인데 왜 받은 것이 

아니고 자기의 것인 양 자랑합니까?"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는 

바로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 있습니다. 

사도께서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아씨시 프란치스코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부에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자신을 낮추어 복종시키심으로써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시기로 선택하셨다는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수세기에 걸쳐 보잘 것 없는 이들을 택하여

구원의 말씀을 전파하셨을 뿐 아니라, 

이 소수의 남은 자들을 택하여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셨으며 

갈릴리의 이름 없는 마을에 사는 비천한 여인을 택하여 

말씀이 거하는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도시의 외곽에서 치욕스러운 죽음으로 

생의 종말을 고했던 한 사람 안에서 자신의 충만한 사랑을 

선언하셨습니다. ...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던 그분은 

조그많고 연약한 아이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피난민으로, 순종적인 소년으로, 평범한 청년으로, 

세례자 요한의 참회하는 제자로, 몇몇 소박한 어부들이 

따르던 갈릴리의 전도자로, 죄인들과 함께 먹고 

낯선 이들과 함께 대화한 사람으로, 소외당한 이로, 

죄인으로, 자기 백성에 대한 위협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권력의 권자에서 무력함으로, 

위대함에서 왜소함으로, 성공에서 실패로, 

강력함에서 연약함으로, 영광에서 치욕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나자렛 예수의 전 생애는 위로 올라가려는 성향을

거부하는 삶이었습니다. ...

제자란 낮아지는 길을 가시는 예수를 좇아 

그분과 함께 새로운 삶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위로 오르려하는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전제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킵니다. 

"

- 헨리 나우웬


<비아>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