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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16-23 (2016.06.22. 아침묵상)

category 묵상/골로새서 2016. 6. 22. 15:22

<말씀>

골로새서 2장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어제에 이어 잘못된 가르침에 현혹되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종류의 잘못된 가르침을 지적하고 조심할 것을 가르칩니다.


2. 첫째는 16절에 나오는 유대 율법주의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3. 구약의 율법은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분 자체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요 말씀에 완성자이십니다. 이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절기와 여러 가지 정결 예법, 안식일은 모두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씀이라 고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구약의 말씀을 해석해야 한다고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약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라 고백합니다. 그러나 일부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구약의 절기를 모두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바울은 이러한 부분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 비판은 갈라디아서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4. 17절을 보면 구약에서 말씀하는 절기는 모두 장래일(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비추어주는 그림자이며, 이 절기들의 핵심(몸=본체)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강조합니다.


5. 둘째는 18절에 나오는 천사 숭배 사상입니다. 이것은 신비주의와도 연결되어 눈에 보이는 환상을 따라가고, 그 환상을 과장하여 말하고 믿었습니다. 이들은 하늘의 별들을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사를 숭배했고, 천사를 통해 신비적 지식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실제적으로는 교만했으나 위장된 겸손을 추구했습니다. 


6.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이단사상을 비판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사셨으며, 그로 인해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의 주인이 되셨다는 것이 참된 신비입니다. (롬16:26 참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연합하고, 예수님 안에서 자라나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 외에 무언가 새로운 신비를 깨닫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교만함에 기댄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7. 셋째는 20-21절에서 나오는 고행주의, 금욕주의입니다. 이는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된 교만한 태도입니다. 


8. 당시 유대주의자들과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 많은 교인들이 금욕고행주의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무엇인가를 금지하고, 절제하고, 참고 견디는 것은 그 자체로 깊은 정신적 만족감과 성취감을 줍니다. 이것이 우리를 내적 우월감과 성취욕에 빠지게 하여 우리가 노력을 통해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게 합니다. 많은 종교가 고행을 하고 금욕을 하는 것은 이러한 자기 착각이 주는 힘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9. 그러나 바울은 23절에서 이러한 종교적 행위가 실제로는 육체의 욕망을 제거하는 데에는 아무런 힘이 없음을 비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바라보고 그 은혜와 사랑에 반응할 때, 그리고 그것을 믿고 따를 때 참된 구원과 성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10. 우리의 신앙 생활을 되돌아봅시다. 어제 말씀에서 오늘 말씀에 이르기까지 바울은 크게 네 가지 종류의 왜곡된 종교적 태도를 지적합니다. 점성술과 같은 운명을 따르는 운명주의, 율법에 얽매이는 율법주의, 신비적 지식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금욕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금욕주의입니다. 이러한 종교생활은 얼굴만 바꾸어 우리 신앙 안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함정에 취약한가요?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다시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예수님께 집중하는 하루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UENbfQgjj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