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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1~6 (2018.01.12. 아침묵상 QT)

category 묵상/마가복음 2018. 2. 18. 10:05

​<말씀>

마가복음 3장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나눔>

1. 신앙 생활에는 형식과 본질이 있습니다. 형식은 신앙 생활의 여러 모습들입니다.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드리고, 봉사와 섬김을 나누고, 예전을 지키고, 말씀을 읽고, 여타 우리가 교회와 학교와 가정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모습을 가리킵니다.


2. 본질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과 교제하고 뜻을 아는 것, 예수님 닮아가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신앙의 형식은 그릇이라면, 신앙의 본질은 음식입니다. 이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릇이 없으면 음식을 담을 수 없지만, 음식이 없는 그릇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4. 신앙인의 궁극적인 관심은 신앙의 본질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본질은 형식 안에 담겨 있기에, 본질을 위해 형식을 귀하게 여기고 형식을 지키려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형식에서 본질이 빠지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


5. 이것은 수천년 동안 신앙인들의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본질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다 형식을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삶은 곧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형식 자체가 없다면 본질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과도한 이상주의로 뜬그름을 잡고 말았습니다. 예배, 기도, 공동체가 없는 신앙은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6. 다른 많은 이들은 과도하게 형식을 지키려는 함정에 빠졌습니다. 형식은 눈에 보이지만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형식은 우리 손에 닿아있지만, 본질은 우리의 손에 닿기 어렵습니다. 형식은 평가할 수 있지만, 본질은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본질은 망각한 채 형식만 열심히 지키는 형식주의자, 교권주의자, 율법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7. 당대 유대인들은 형식에 집착하여 본질을 잃어버린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들은 안식일의 참 의미, 곧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했습니다. 형식주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규칙에 갇혀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내 앞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을 살리는 일이 벌어져도, 생명과 사랑이 선포되는 일이 있어도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만 보였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형식주의에 매몰되어 본질을 놓쳐 버린 유대인들을 크게 꾸짖었습니다. 보란 듯이 손 마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무엇이 중요한가를 물었습니다. 형식이 되려 본질을 해치고 있음을 폭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9. 본질을 잃은 형식은 우상이 되어버립니다. 우상을 따르는 삶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우상이 흔들릴 때, 그 우상을 비판한 이를 미워하고 죽이려 든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우상이 되어버린 안식일을 비판하자 예수님을 죽이려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10. 그렇다면, 어떻게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 형식 안에 잘 담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기도를 할 때, 찬양을 할 때, 봉사와 섬김을 할 때,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과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사랑 안에 붙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11.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면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요, 둘째는 우리의 죄악됨과 연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예배, 기도, 찬양, 섬김과 사랑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온전함과 거룩함 앞에서 완전한 것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사랑에 참여하게 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형식은 이미 주신 것에 감사하여, 그 주신 것을 누리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12. 우리의 형식, 곧 우리의 그릇은 사실 금이가고 구멍난 그릇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 아무리 본질을 찾으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본질을 잃고 맙니다. 구멍난 옹기에 물을 채우는 방법은 옹기 자체를 물속에 담그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형식을 당신의 본질 안에 담그길 원하십니다. 그때에 우리는 형식 안에서 본질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누리기 위해 모든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13. https://www.youtube.com/watch?v=LqJi_lugUYE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사랑이란 단어에 예수님을 대입해보세요. 그럼 또 새롭게 들릴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