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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14~27 (2018.03.14. 아침묵상 QT)

category 묵상/마가복음 2018. 8. 9. 17:30

<말씀>

마가복음 13장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이 가리키는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확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오늘 말씀은 크게 두 가지 상황을 동시에 상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 성이 로마 제국에게 파괴됐던 AD 70년의 상황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다시 돌아오실 재림의 상황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두가지 상황이 동시에 오버랩 되면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3. 14절의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은 당시 시대적 정황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BC 167년에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이교의 제단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에 우상의 제단이 세워진 이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4. 예수님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 있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즉각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이방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모욕하고,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될 날을 이와 같이 묘사한 것입니다.


5.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예루살렘 멸망 날이 오면 긴급히 피난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비극의 날, 고통의 날, 화가 미치는 날이기에, 그 날에는 하루 빨리 피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 멸망의 날이 추운 겨울, 도망가기 어려운 우기에 오지 않기를 구하라 말씀하실 정도로 힘든 날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다가올 성전 멸망, 예루살렘 멸망 날을 예언하시며 남아서 고통을 견뎌야 할 그리스도인들을 챙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루살렘은 AD 70년에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고난 중에서도 두려워하지 말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환란과 핍박은 곧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비록 고난과 핍박이 있더라 하더라도 예수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기다릴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만이 진정한 희망이요, 용기의 근원이 됨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7. 사실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난 뒤에 예수님을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사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시는 지를 여러차례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날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베드로는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고백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고난과 박해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오실 예수님을 향한 소망을 붙잡고 살아갈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8. 한가지 오늘 말씀을 통해 더 깊이 해석할 수 있는 것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비단 로마 군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자신의 권력과 힘, 부와 능력에 기대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영광 돌려야 할 자리를 차지하는 것, 서 있으면 안되는 자리에 서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 영광받고, 하나님 대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모든 것은 멸망의 가증한 것입니다.


9. 로마 군대가 폭력적으로 예루살렘을 파괴했다면, 오늘날 멸망의 가증한 것들은 달콤하게, 쾌락적으로, 우리를 높여주고,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주면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도망가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것들은 결국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부터 돌려버립니다.


10. 우리는 이제 그러한 것들로부터 도망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우리의 권세가 다시오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소망하면서, 세상의 불의와 악을 멀리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주님은 속히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이요, 주의 권능과 영광을 우리가 다같이 보게 될 것입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v5oakneopeU (나는 오늘도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