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마가복음 12장
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크게 세 단락이 함께 있습니다. 35~37절은 그리스도(=메시아)와 다윗의 관계, 38~40절은 서기관(율법학자)들에 대한 비판, 41~44절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입니다.
2. 먼저 35~37절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전후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조금 어렵습니다. 당시 유대들은 그리스도(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으로도 불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부른데에는 당시 사람들의 그리스도(메시아)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3.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바벨론-페르시아-그리스-로마로 이어지는 압제에 큰 고통을 겪었고, 무엇보다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상황이 끝나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이스라엘 왕국이 회복되길 바랐습니다.
4.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들을 위해 다윗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보내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내줄 사람을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메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메시아)를 다윗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다윗과 같은 일을 할 자라고 생각하여 다윗의 자손이라 부른 것입니다.
5.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유대인들의 그리스도(메시아)관을 바꾸어주고자 하셨습니다. 새롭게 올 그리스도(메시아)는 그러한 일들을 하실 분이 아니셨습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훨씬 위대한 일을 하실 분이셨습니다. 단순히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시는 분이 아니라 온 세상에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분이셨습니다. 그리스도(메시아)는 단순히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 자신이었습니다. 그리스도(메시아)는 그래서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이 그리스도(메시아)는 곧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6. 당대 유대 지도자들, 율법학자들은 여전히 다윗 왕국을 기대하고 있었으며, 구약의 율법만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선 분이셨습니다. 다윗 왕국, 구약의 율법, 종교 예식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직접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닫길 원하셨습니다.
7. 38~40절 말씀은 이러한 맥락에서 유대 율법학자(서기관)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하였습니다. 율법학자(서기관)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종교적 허례허식과 권력에만 도취되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왕국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진짜 중요한 하나님을 놓쳤던 것처럼, 율법학자들은 수많은 종교 의식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는 않고 자신이 높아지는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8. 41~44절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인가 그 핵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붙잡아야 할 본질을 붙잡는 것입니다. 당대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찬란하게 빛내줄 옛 영광, 곧 왕국의 회복을 꿈꾸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세와 권위를 높여줄 종교적 지위에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하나님에게는 무관심했고,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9.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삶보다 하나님께 집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돈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내어주고, 희생하여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닮아있었습니다. 그녀만이 예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10.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지, 또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 자신을 높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방식의 신앙생활은 우리를 낙담하게 하든지, 또는 다른이들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참된 신앙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반응하여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11. https://www.youtube.com/watch?v=E5nvWPGMqqw (예수님 그의 희생 기억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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