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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원하시는 결정 (2019.11.22. 금요기도회 설교)

에스더 5장
1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4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5    왕이 이르되 에스더가 말한 대로 하도록 하만을 급히 부르라 하고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가니라
6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하니
7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8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9    그 날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매우 노하나
10    참고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의 친구들과 그의 아내 세레스를 청하여
11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지방관이나 신하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12    또 하만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
13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하니
14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이 이르되 높이가 오십 1)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가소서 하니 하만이 그 말을 좋게 여기고 명령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삶을 살아가다보면 많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결정을 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정을 하고 싶어합니다. 무엇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정일까? 그것을 찾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축복으로 걸어가는 삶일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아쉽게도 무엇을 결정을 하는 것이 나에게 더 좋은가는 잘 나와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가 서리로 갈까요? 랭리로 갈까요? 하나님 제가 아파트에 살까요? 타운하우스에 살까요? 하나님 제가 취업을 시작할까요? 사업을 시작할까요? 이러한 결정들은 성경말씀에 딱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성경을 딱 펴서, 예를 들면 에스겔 20장 46절을 딱 펴서 보고, 아 화이트록으로 가야하겠네요. 이렇게 찾아갈 수도 있지만, 이렇게 성경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에스겔 20:46]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을 가르쳐줄까요? 성경 말씀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잘 말씀해주지 않지만,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잘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신 것은 지난 주일 설교때에 말씀드렸다시피 우리가 무엇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왜 그것을 선택했는데, 어떻게 그것을 할 것이냐 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결정을 할 때에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가 그 결정 가운데 갖는 태도를 보십니다. 말씀은 그 마음의 중심, 그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선택과 결정의 과정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더가 마침내 왕의 앞에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왕의 잔치 – 와스디의 폐위 – 에스더의 왕후 등극 – 모르드개의 반란 제보 – 하만의 계략 - 모르드개와 백성들의 기도 – 에스더의 결단) 까지의 이야기들 후에 나타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 왕의 어리석음과 하만의 악함, 모르드개의 준비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제 마침내 에스더가 왕 앞에 나서는 내용입니다. 에스더의 태도, 에스더의 행동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어떤 결정을 하고 실행할 때에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더불어 오늘 에스더의 카운터 파트너로 등장하는 하만의 모습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결정을 하고 어떻게 실행하는 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같이 1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선택과 결정을 할 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기도’입니다.

오늘 말씀에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제삼일에’

잠시 지난주 함께 나누었던 말씀을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더 4장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는 큰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법규에 따르면,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을 보러가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왕 앞에 나섰을 때 왕이 규를 내어주지 않으면 그 사람을 바로 처형을 당했습니다. 왕은 30일 동안이나 에스더를 찾지 않았습니다. 왕의 마음이 지금 어떠한 상태인지, 에스더를 향한 생각이 어떠한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불확실한 일에 자기 목숨을 거는 것, 그게 그녀가 왕에게 나아간다는 뜻이었습니다. 

왕을 만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왕에게 새로운 제안을 해야 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의 운명을 건 제안이었습니다. 그녀가 만일 실패한다면 모든 유대인은 말 그대로 학살당해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일에 한치의 실패도 있어선 안된다는 막중한 부담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그녀가 모르드개에게 요청한 것은 기도 였습니다. 모든 유다인들을 모으고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나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겠습니다. 결단한 것입니다.


어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좋은 예를 하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금식을 통해 기도하셨습니다. 또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ㄱ)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ㄴ)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ㄷ)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ㄹ)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할 때에 사탄은 3가지를 시험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을 앞두고 기도할 때에 겪는 갈등입니다.

1,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십시오.
2,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을 증명해주십시오.
3.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선택을 앞두고, 결정을 앞두고 기도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 시험과의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문제가 눈앞에 닥쳤을 때에 그 문제를 주목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주목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요술램프의 지니가 되기보다는 우리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우리가 그 무엇보다도 신뢰하고 믿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정말 중요한 문제가 우리 앞에 있을 때 그 문제를 붙잡고 기도하는 것을 통해, 정말 역설적으로 그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시길 원하십니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통해 계속 문제를 붙들고 있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돌이 빵이 되도록 기도해, 높은 곳에 떨어질 때에 천군천사로 보호해주도록 기도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얻도록 기도해.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기도를 내려놓고 오히려, 주님 제가 말씀으로 살겠습니다.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주님만을 경배하고 섬기겠습니다. 기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기도는 이 놀라움을 경험하는 길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앞에서 죽음을 앞두고 기도할 때도 이러한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죽음이 앞에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절망이 자신의 길이라 할 지라도 자기의 고난과 절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깊이 들어가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기도는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행위입니다. 내 상황과 내 조건, 내 상처와 내 어려움에 깊이 함몰되어 있는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우리 아버지 되심을 다시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더욱 심할수록, 문제가 집요할수록, 소망이 보이지 않을수록 우리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오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 해결과 어려움을 기도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내어드리는 행위입니다. 당면한 문제, 당면한 어려움을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통해 점점 더 문제에서 하나님으로 시선을 옮기십니다. 고난과 고통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옮기십니다.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지켜주시고 계심을 서서히 신뢰하게 됩니다. 에스더도, 많은 믿음의 선배들도, 그리고 우리 예수님도 이러한 길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에스더는 이렇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신뢰, 그리고 그 신뢰 안에서의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그 고백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고백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불구덩이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고백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고백이었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고백하는 예수님의 고백과도 일맥상통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로서 하나님을 붙잡은 에스더는 이제 왕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함이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과 담대함도 있었습니다. 목숨이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갑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자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1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왕이 에스더가 뜰에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매우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왕은 마음을 열어 왕비에게 규를 내밀었을 뿐 아니라, 왕비에게 놀라운 제안까지 합니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이 표현은 일종의 관용어 같습니다. 하늘의 별도 따다 주겠다 표현하는 것처럼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하는 왕의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때 에스더는 이 때 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하려고 할 때 우리가 조심해야하는 것은 ‘분주함’, ‘조급함’입니다. 분주함과 조급함은 하나님 보다는 상황을 볼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상황이 바람처럼 몰려올 때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때 우리는 조급하고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에스더가 만일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더라면 왕이 규를 잡아주었을 때 자신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때가 이를 때까지 시간을 두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도 후에 그녀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분주함과 조급함 때문에 큰 일을 그르친 사람이 성경에 있습니다. 바로 사울입니다.

사울이 왕이 된지 2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큰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왔습니다. 전차가 3만, 기마병이 6천, 군대는 모래처럼 많이 모였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군대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군대는 다합쳐서 고작 3천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이스라엘 군대들은 겁을 먹어서 동굴과 수풀, 바위틈, 웅덩이에 숨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강을 건너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바들바들 떠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사울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일주일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그곳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제사를 드린 후에 전쟁을 하도록 합시다. 그런데 일주일 되던 날 되어도 사무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더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렇잖아도 군대가 적은 데, 제사를 못드리면 하나님의 도움을 못받는 것이 아닌가, 사무엘은 왜 나타나지 않는가, 백성들이 불안해서 떨고 도망치지 않는가, 사울은 사무엘이 드려야 할 제사를 자기가 드려버렸습니다. 사실은 자신이 두렵고, 자신이 불안하고, 자신이 분주했고, 조급했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드리고 나자 사무엘이 나타났습니다. 사무엘에게 당신이 나타나지 않아 내가 대신 제사를 드렸다고 변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아직 7일이 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불안함과 조급함으로 절차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울에게 사무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무엘상 13장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울의 실수는 뼈아픈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을 놓쳤습니다. 오히려 상황과 다급함을 먼저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큰 실수를 하였고,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버렸습니다.
에스더는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붙잡고 주목하였습니다. 차근차근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한걸음씩 걸어갔습니다. 마치 처음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한걸음씩 걸어가는 아기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길을 따라 걸어 갔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러웠지만 담대했고, 겸손했지만 당당했습니다.

에스더는 왕이 자신의 소원을 말해보라는 왕에게 자신의 잔치에 참여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하만과 더불어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음날 잔치에 참여한 왕에게 다시 내일 또 잔치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차근차근 자기가 해야할 말을 준비했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았고, 겸손하게 그 일을 풀어나간 것입니다. 

(하만의 모습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에 취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잔인하게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 우리의 일들을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늘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주목하게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길 원하십니다. 

또한 그 신뢰 가운데에서 분주함과 조급함을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상황과 여건이 불어오는 바람처럼 다가올 때 그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한 그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루하루 충실하게 준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준비가운데 일하시고, 그 일하심을 통해 세상의 권세를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책임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