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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의 선택, 왕의 선택, 하만의 선택 (2019.12.06. 금요기도회 설교)

에스더 7장
1    왕이 하만과 함께 또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가니라
2    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3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4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라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하니
5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말하여 이르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6    에스더가 이르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거늘
7    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앎이더라
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이르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9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10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1.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 – 왕후의 폐위 : 아하수에로의 악
2. 에스더의 등극, 모르드개의 암살 음모 저지 : 모르드개의 준비
3. 모르드개의 인사 거부와 하만의 학살 계획 : 하만의 악
4.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 에스더의 기도와 결단 : 백성의 기도
5. 에스더의 잔지 초대, 하만의 나무기둥 : 에스더의 낮아짐과 하만의 높아짐
6. 모드르개를 높임 : 하만의 어리석음
7. 에스더의 간청과 하만의 처형

오늘 말씀은 에스더의 절정이 되는 말씀입니다. 에스더와 하만이 마침내 왕 앞에서 한자리에 만났습니다. 에스더를 깊이 사랑한 왕은, 이제 왕 앞에 나와 잔치를 연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목숨을 걸고서까지 왕에게 요청한 것이 무엇인지를 따뜻하게 물었습니다.

왕비는 대답합니다. 


"임금님, 내가 임금님께 은혜를 입었고, 임금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기시면, 나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간청입니다. 나의 겨레를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소청입니다. 나와 내 겨레가 팔려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살육당하게 되었습니다. 다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남종이나 여종으로 팔려 가기만 하여도, 내가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한 일로 임금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왕비는 온 마음을 다해 왕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왕은 크게 놀랐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손으로 왕비와 왕비의 가족을 죽이려한 상황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왕은 이러한 음모가 누구의 생각에서 나왔는지를 왕비에게 직접적으로 물었습니다. 


 "그자가 누구요? 감히 그런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자가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 밝히시오.“

왕비는 대답했습니다.

“그 대적, 그 원수는 바로 이 흉악한 하만입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만이 오랜 시간 만들어놓은 그의 음모와 계략이 폭로되어버렸습니다.

하만은 사색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왕이 가장 사랑하는 왕비를 죽이려는 음모가 눈앞에서 발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만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어졌습니다. 그의 처형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왕비밖에 없었습니다.

왕은 화가 나서 왕궁의 안뜰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만은 바들바들 떨면서 왕비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였습니다. 얼마나 간절했던지 왕비가 몸을 누이고 있는 침상 위에까지 가서 엎드려 빌었습니다. 왕이 돌아왔을 때 이 모습을 보고 더욱 분노하였습니다. 하만이 그 상황에서 왕비를 겁탈하려 한 것은 전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노가 하늘 끝까지 치밀어 오른 왕의 눈에는 하만의 모든 행동이 악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왕은 네가 감히 왕궁에서 내 왕비를 겁탈하려 하느냐?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모든 것은 결정되었습니다. 왕은 하만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왕의 호위대들이 하만의 얼굴을 천으로 덮어버렸습니다. 그때 내시 하르보나가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세워둔 높은 장대가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왕은 바로 하만을 그곳에 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하만은 그대로 끌려가 처형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워낙 순식간에 전개됩니다. 다른 장보다도 적은 10절에 불과합니다. 말씀은 이렇게 순식간에 이야기를 전개함으로 하만에 대한 왕의 총애, 하만의 권세, 하만의 잔인함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심각했던 문제가 왕의 말 단 몇마디 말로 해결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모습은 왕의 힘과 권세의 강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하시면 어떠한 문제도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의 주관자는 우리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나누고자 하는 첫 번째는 바로 이러한 에스더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시선을 상황과 형편, 우리의 능력, 관계의 복잡함 등 현실적인 부분에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을 통해 너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줄 아니?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야, 너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야, 네가 해야 할 어떤 일이 아니야, 너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나, 하나님이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가 모든 전쟁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깨닫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이 모든 일을 주관하심을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에스더가 왕이 아니라 하만을 찾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까지의 상황을 봤을땐 실제로 왕을 좌지우지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하만이었습니다. 왕을 만나면 죽을 수도 있고, 하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 훨씬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으니, 하만을 찾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만님 한번만 상황을 바꾸어 주십시오, 우리 모르드개 삼촌을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요청했다면, 아마도 하만은 더욱 거드름을 피우며 자신을 높이고, 에스더를 이용하려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모르드개의 생명은 구했을지 몰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만의 노예가 되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왕을 찾아갔습니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하만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왕, 모든 일을 완전히 돌려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왕을 찾아갔습니다. 그 두려움과 불안을 기도로 극복하고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믿음으로 그렇게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왕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하만은 왕비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다 비참하게 죽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선택을 할 때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재정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고 합시다. 재정이 힘들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재정을 쫓아갑니다. 하만이 우리를 죽이려 할 때, 마치 하만을 찾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재정을 쫓아가는 삶은 결국 재정의 노예가 되는 삶입니다. 재정을 쫓아가면, 결국 재정이 우리의 마음을 모두 빼앗고, 우리의 삶을 재정의 노예로 만들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왕을 찾아간 것처럼 우리는 모든 재정의 주관자인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결국 재정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재정을 붙잡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심지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용기를 내어 왕에게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을 택하기로 결단할 때, 우리의 삶 속에서 에스더의 승리가 임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나누고자 하는 것은 왕의 선택입니다. 오늘 왕은 무엇을 선택했나요? 바로 에스더와 에스더의 민족을 살리고 하만을 죽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에스더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왕은 에스더에게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것은 지난주에도 말했듯 왕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보편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왕은 에스더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에스더가 왕에게 자기 자신과 자기 민족을 살려달라고 했을 때 하만이 자기의 죽음을 직감한 것은 에스더를 향한 왕의 사랑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에스더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거침이 없었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으며, 그 음모를 꾸민 하만을 곧바로 처형해 버렸습니다. 아가서 8장 6절에서는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과 같이 잔인하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생각과 삶을 바꾸고, 선택을 바꾸는 아주 강한 힘이 있습니다. 왕은 에스더를 사랑했기에 기꺼이 자기의 명령을 철회했을뿐더러, 그 음모를 꾸민 하만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이러한 사랑은 오늘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한1서 4장 10절은 선포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모든 심판으로부터 건져내셨고, 우리를 모든 죽음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것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진정한 소망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선택을 결정한다한다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우리를 무한히 선택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에스더와 우리 사이에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에스더는 (변덕스러울 수 있는 인간인) 왕에게 나아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습니다. 에스더는 자기가 왕에게 나아갈 자격, 곧 왕이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늘 의심해야 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우리의 자격을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가져야 할 자격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온전히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 사랑의 왕이신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거침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늘 신뢰해야 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립니다.

세 번째로 나누고자 하는 것은 하만의 선택입니다. 하만의 선택은 늘 예수님의 선택과 비교됩니다. 하만은 늘 자기가 높아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높아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을 과신했습니다. 그리고 이 높아진 자기 자신에 취해 불의를 저지르고자 하였습니다. 하만은 세속 권력인 왕에 기대어서 자기 권세를 세웠습니다. 왕의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데, 그것을 몰랐습니다. 권력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데 영원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계속 높였고, 자기 자신이 왕과 같은 존재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끝내지 않고 그 권력으로 자기를 모욕한 사람, 나아가 그 민족 전체를 죽이려 했습니다. 자기 권력에 도취된 분명한 악이었습니다. 돈이나 명성, 권력을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착각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는 자기 힘의 상징으로 22.5미터의 긴 나무 장대를 세웠고, 그곳에 모르드개를 매달아 자기의 권세를 자랑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만의 모습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새벽예배 말씀 잠언 17장 5절 말씀에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하만의 모습이 딱 이러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사람을 멸시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했고, 교만함에 도취되어 자기 자신을 우상숭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고 있었던 바탕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는 오늘 말씀 가운데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그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날 때 모래 위에 지은 집이 그냥 허물어지는 것처럼,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의 권력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허상 위에서 자기를 높이고, 다른 이들을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만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서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있는가? 나는 무엇에 기대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있는가? 

그러나 하만의 선택과는 정반대의 길을 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만이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를 높이는 길로 갔다면, 예수님을 우리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길로 갔습니다. 하만은 권력을 우상으로 삼고, 권력에 기대에 자기를 높였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위에서 자기 삶을 늘 낮추었습니다. 하만은 자기 감정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자 했다면, 예수님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살리고자 하였습니다. 하만은 결국 자기죄 때문에 자기가 나무에 매달리는 심판을 받았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나무에 달리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만은 영원히 죄인이라는 불명예를 얻었지만, 우리 주님은 부활하시고 이 땅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하만의 선택의 정확한 반대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닮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길은 좁은 길이나 넓어지는 길이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길이요, 반석위에 세운 집과 같은 길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 자신에 집중하는 길, 자기 자신을 높이고, 다른 이들을 멸시하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3명의 선택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에스더의 선택에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왕의 선택에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하만의 선택에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선택은 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모든 권세의 주관자 하나님, 우리를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을 통해 그 길의 열매를 보여주신 하나님을 선택할 때 우리는 진실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 보단 당장 우리를 흔들리게 하는 그것을 선택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왕이 아닌 하만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삶의 주인이자 세상의 주인,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무엇보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믿고 의지할만한 분이심을 분명히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길로 살고자 할 때 결국 죽을 수 밖에 없음을 하만을 통해 보게하시고, 오직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겸손히 나아가는 나와 우리 모두를 살리는 사람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인생을 주님께 드리고 맡깁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