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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승리 (2019.12.20. 금요기도회 설교)

에스더 9장
1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2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 각 읍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5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
7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8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9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10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1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아뢰니
12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명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지방에서는 어떠하였겠느냐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또한 시행하겠노라 하니
13    에스더가 이르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하니
14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매달리니라
15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16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7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18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19    그러므로 시골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고을에 사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일을 명절로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20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원근을 막론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21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23    유다인이 자기들이 이미 시작한 대로 또한 모르드개가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24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그들을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25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의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의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26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으로 말미암아
27    뜻을 정하고 자기들과 자손과 자기들과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하고 정해 놓은 때 이 두 날을 이어서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28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29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게 지키게 하되
30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편지를 써서 아하수에로의 나라 백이십칠 지방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
31    정한 기간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가 명령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32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하게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에스더 10장
1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2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오늘은 말씀을 나누기 전, 지금까지의 에스더 이야기를 잘 정리한 동영상이 있어 함께 그것을 찬양 영상 대신에 보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 – 왕후의 폐위 : 아하수에로의 악
2. 에스더의 등극, 모르드개의 암살 음모 저지 : 모르드개의 준비
3. 모르드개의 인사 거부와 하만의 학살 계획 : 하만의 악
4.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 에스더의 기도와 결단 : 백성의 기도
5. 에스더의 잔지 초대, 하만의 나무기둥 : 에스더의 낮아짐과 하만의 높아짐
6. 모드르개를 높임 : 하만의 어리석음
7. 에스더의 간청과 하만의 처형
8. 하만 처형 이후의 수습
9. 10.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어, 하만 일가의 몰락. 부림절의 시작

 

https://www.youtube.com/watch?v=tA-xg9Zd_vY&t=38s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 했던 하만이 처형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새 조서가 반포되었습니다. 그리고 12월 13일, 마침내 반포된 조서가 시행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왕이 내린 조서는 취소할 수 없었기에, 새로운 왕의 조서를 통해 옛 조서를 넘어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만이 왕을 꼬득여 내렸던 첫 번째 조서는 모든 유대인을 절멸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을 것을 명령한 조서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 말씀에 나왔던 새로운 조서는 그 빼앗으려는 자들을 물리치고, 거꾸로 그들의 재산을 빼앗을 것을 명령한 조서였습니다. 12월 13일에 이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거꾸로 그들을 집어삼키려는 자들을 물리치고 제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읍별로 모여서 자기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왕과 왕비와 최고 대신 모르드개가 그들의 편에 있었기에 아무도 유대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각 지방 대신들과 제후, 총독, 관리들이 모두 유대인들을 도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원수들을 찾아서 다 죽였습니다. 수도였던 수산성에서만 오백명을 처형하였습니다. 특별히 하만의 열 아들을 찾아 처형하였습니다. 그리고 왕비가 왕에게 청하여 그 열 아들을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다음날에도 유대인들은 수산성에만 삼백명을 죽였습니다. 각 지방에서도 이와같은 일이 있었는데 총 7만 5천명을 처형하였습니다. 다만 유대인들에게는 이들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는데, 이들의 재산을 빼앗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것에 대한 방어를 위해 싸웠을 뿐, 더 많은 부와 재산을 갖기위해, 탐욕을 위해 이 일을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이날을 제비를 뜻하는 부르라는 단어를 따서 부림절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12월 13일, 14일 이틀동안 잔치를 벌이고, 서로 기뻐하고, 음식을 나누어먹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날로 정하였습니다. 이 명절은 지난주에 보여드렸던 것처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매대와 페르시아의 왕조 실록에도 기록되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승리를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이스라엘의 승리 이전에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이 승리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인생 가운데에서 여전히 승리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인생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할지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 가운데 일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늘 사람들의 애통함과 절망, 깊은 슬픔 가운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애굽, 한나의 기도, 나오미의 슬픔, 다윗의 외로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 한국교회의 성장 역시 우리의 슬픔 가운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00년전 평양 대부흥의 배경에는 청일 전쟁의 비참함, 해방이후 한국교회의 부흥에는 6.25전쟁의 비참함과 가난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 속에도 우리 삶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많은 성도분들이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초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으면 되지 않았을까요?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으면 되지 않았을까요? 질병과 고통과 어려움과 같은 것들을 아예 처음부터 있게하지 않았으면 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이러한 것들이 있도록 허락하시고, 그 문제 가운데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실까요? 이러한 질문들을 하시곤 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질문들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대답이 없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들을 신학자들이나 신앙의 선배들이 찾아보긴 했지만 그 답이 정확하게 무엇이다. 딱 우리의 마음에 들만 한 해답이 나온 것은 솔직히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세상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그저 두고 보지 않으시고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이 세상의 고통에 참여하시고, 이 고통의 중심에 들어오셔서 자기 목숨을 세상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초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망하게 하지 않으셨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대한 제국으로 세워주셨더라면 아마도 에스더 이야기와 같은 사건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에 내내 짓밟힌 역사를 가진 연약한 민족이었습니다, 단 한사람이 마음 속에 악한 마음을 품자 민족의 모든 사람이 학살당할 위협에 쳐해지게 된 미약한 민족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고,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들의 현실은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연약하고 부족하기만 하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백성을 연약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이들을 선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순서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연약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일하시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문제의 중심에 들어가, 문제 가운데 고통받고 있는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문제를 넘어서는 가운데 당신의 일하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실까, 우리는 완벽하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지만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당대의 모든 민족들은 위대한 민족의 신이 위대한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시리아의 아슈르, 바벨론의 마르둑, 페르시아의 아후라 마즈다 같은 신들의 영광을 위해 제국들은 최선을 다해 제국의 영토를 넓히고 승리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자기들이 전쟁에서 이기면 이길수록 제국의 신은 위대한 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을 높이고 찬양하였지만, 사실은 자기를 높이고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제국의 번영과 영광을 높이기 위해 찬양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간증할 때 ‘이번에 빌딩 여러 개를 사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번에 서울대를 합격시켜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번에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그 가운데에서는 교묘한 자기 영광이 감추어져 있음을 우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문제없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한다면, 사실 하나님은 오히려 감추어지고, 자신의 영광이 더 드러나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자리는 흐려지고, 우리를 드러내는 자리에 하나님이 들러리가 되어버리게 되곤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강성한 민족 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을 드러냈다면,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제국의 성공이 그들의 군사력과 인간적인 전략의 승리인지, 하나님의 승리인지 헷갈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 것이라 착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제국이 멸망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같이 사라져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고통을 주시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살피실 때, 또 우리를 살피실 때 우리의 고통과 아픔, 눈물의 기도를 귀히 여겨주시고 그 기도 가운데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길을 선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민족이 있었지만, 가장 미약했던 민족,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되고, 죽음의 위협이 코 앞에 있어서, 온 몸에 재를 뿌리고 옷을 찢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주님께서 선택하시고, 그들의 아픔을 뒤집어 기쁨으로 만들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이 땅에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때, 곧 하나님께서 최후 승리를 이루실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애통하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신이 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진실로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도 페르시아 바벨론이라기보단 이스라엘 민족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위로가 여러분 가운데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제국을 세우셔서 페르시아 제국 보다 더 큰 영광을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죽음 속에서 그들을 건져주신 것이었습니다. 그저 그들을 죽이려는 자들을 무너뜨려 주신 것 뿐이었습니다.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랍게 일하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단지 하만보다 더 큰 하나님이 아니라 왕보다 높으신 하나님, 모든 제국과 모든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움직여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음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였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승리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말렉 족속을 이긴 것이 하나님의 승리일까요? 기독교 제국이 이슬람 제국을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승리일까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세상 가운데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승리일까요? 하나님의 관심은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른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기필고 얻고자 하시는 승리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승리를 위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셔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놀라운 의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하심은 바로 이 곳에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와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은, 그 가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더 이야기를 통해 이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주는 놀라운 기쁨과 영광을 누리기 위해 그 날을 기억하고 축하하기 위해 그 날을 명절로 지정하여 지키기로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늘 기도합니다. 제 삶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왜 제 삶은 다른 이들처럼 풍족하지 못합니까? 왜 제 삶은 늘 전전긍긍해야만 합니까? 언제쯤 저도 저 페르시아나 바벨론처럼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 언제 제 삶에 위대한 승리가 임할 수 있을까요? 

오늘 에스더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승리는 우리가 원하는 승리와 다르다. 우리가 원하는 승리는 우리만의 승리이지만, 그분이 이끄시는 승리는 그분과 우리가 함께하는 승리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된 삶,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삶 속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내신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코 앞에 둔 상황 속에서도 승리를 만들어 내신다. 하나님께서는 애통하고 절망하고 슬퍼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승리를 만들어 내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을 통해서 승리를 만들어 내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집으셔서 승리를 만들어내신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법으로 갈 때 승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계신 그 곳,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모든 순간이 곧 승리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는 페르시아나 바벨론, 이집트와 같은 제국이 되어야 이긴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과는 상관 없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곧 승리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이제 이집트는 가장 가난한 동네가 되어버렸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을 3000년동안 유지했지만, 지금 이집트에는 그때 지어놓은 피라미드가 유일한 자랑거리입니다. 전쟁을 늘 승리했던 바벨론, 지금 시리아와 이라크는 지금도 전쟁터입니다. 수많은 난민들이 이곳 캐나다에도 있습니다. 페르시아 였던 이란은 고문과 학살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제국의 허망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고통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껏 이어져 많은 이들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도도히 역사 가운데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주님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까? 언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까? 언제 우리는 로마 제국과 같은 나라를 만들고, 언제 우리는 힘을 얻습니까? 언제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고, 언제 우리는 기도 응답을 받으며, 언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이미 너희 가운데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승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 문제 가운데 기도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미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 안에서 승리하고 계십니다. 때가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셨음을 선명하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삶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길이요,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이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뜻을 넘어서는 아름답고 귀한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광야이면 그곳에서 꽃을 피울 것이요, 사막이면 강물이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이 우리를 통해 계획 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모두 이루실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 열매를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은 반드시 그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승리를 우리의 욕심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아말렉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갈등은 사실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싸움은 아각왕과 사울의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문화에 젖어들 것을 염려하여 사울에게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것이었다고 핑계를 대었습니다. 사무엘은 그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통해 자기 배를 채우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번에는 그 교훈을 잊지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하만의 아들들까지 처형하고 나무에 매달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와 훗날에 있을 갈등의 소지까지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공격하러 온 사람들을 처형하되 그들의 재산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이 승리를 개인적인 탐욕을 채우는 일에 활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아가 그들은 부림절을 기념하며 그들의 구원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에 힘쓰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고 그 승리를 통해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승리가 우리 자신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 가운데 들어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 또한 다른 이의 문제 가운데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승리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였던 우리를 돌보신 하나님께서 너희도 나그네를 돌보아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문제 가운데 계십니까?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승리하고 계심을 신뢰하기 바랍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승리를 막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 가운데 씨름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비록 때로는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삶 속에서 승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때가 될 때 그 승리를 우리 눈앞에 드러내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하루를 주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주님 주신 승리가 우리를 높이는 일에 사용되지 않도록, 우리 또한 그 승리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