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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신뢰 (2019.11.29. 금요기도회 설교)

에스더 6장
1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2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3    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4    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5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7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11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12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1. 에스더가 왕과 하만을 초대하기로 한 잔치가 있기 전날밤 – 왕이 본 것 : 역사책
2. 하필 그 내용 중에서도 왕의 암살 이야기 –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암살하려고 고발한 이야기 (잔치, 왕 3년, 왕후즉위 및 암살 왕 제 7년, 지금은 왕 제 12년) 
3. 왕이 그 이야기를 보고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지 못한 것을 발견 – 뜰에 상의할 사람을 찾음
4, 하필 그때에 하만이 뜰에 서있었음
5. 모르드개를 자기가 세운 나무에(15미터) 모르드개를 달기를 허락하고자 기다리고 있었음
6. 왕이 하만에게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물어봄
7. 하만은 그 사람이 자기인줄 알고 아주 큰 상을 요청함 –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쓴 왕관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를 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겐 이와같이 할 것이다. 외치게 하소서
8. 왕이 모르드개를 높이게 하였음, 그리고 그 일을 하만에게 시킴
9. 하만은 당혹감을 느끼고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음 –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며,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가 이르되 그가 유다사람의 후손 모르드개의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큰일이 난 것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그를 이기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말하였음
(대감은 이제 유다 종자 모르드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다시는 그 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예 그 사람에게 손을 댈 생각을 마십시오.")
10.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스더의 잔치에 하만을 데리고 갔음 (빠른 상황 전개)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데, 말씀을 읽고 있는 우리는 하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일하시는 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만의 입장에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만은 인간이 저지르는 어리석음, 죄악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만의 실수가 단지 하만만의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실수라는 점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만을 통해 우리 자신을 또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아가는 오늘 저녁 되길 소망합니다.

하만은 첫째로 자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였습니다. 하만은 자기의 권세에 취해있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이란 한마디로 정의하면 다른 사람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 권력은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이 된냥 착각하게 만듭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 뜻대로 모든 것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권세에 익숙해질 즈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악한 일을 서슴지 않게 되는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만은 언제나 왕이 자신을 높일 것이라 착각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모르드개를 높이고자 왕이 물었을 때 내심 자기라고 생각하는 하만의 모습은 코믹하기까지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들어가면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혹시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합당한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그를 높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이 적당한 사람인데 자기가 자기를 높여서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밑으로 내려가라고 하면 얼마나 민망한 일이겠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하만은 이와 같은 민망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도의 민망한 일이 전부라면 큰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만은 교만함이 극도로 올라있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대 민족을 모두 학살하고, 모르드개를 22.5미터 장대에 매달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힘을 과시하려 다른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범죄였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모르는 교만은 결국 파멸로 이르게 됩니다. 다른 이를 함부로 대하려다가 자신이 그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하만은 두 번째로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는 멀리서 모든 것을 보기 때문에 하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만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알 수 없는지를 전혀 구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만은 에스더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무모하게 유대인 전체를 학살하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관계를 알지 못했습니다. 알았더라면 모르드개를 이렇게 쉽게 죽이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모르드개가 왕을 구해준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왕이 그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읽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직 자신의 계획과 음모에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하만이 저지를 결정적인 실수는 무엇일까요? 하만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우리가 느끼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느끼고 아는 것은 늘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한계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어떤 두 사람이 각자 본 경험이 있었던 한 물건을 두고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 물건을 동그라미라고 우겼고, 한 사람은 그 물건이 네모라고 우겼습니다. 그 물건을 두고 한참을 싸우다가 결국 친했던 관계마저 망가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 알고보니 원통이었습니다. 한사람은 위에서 그 물건을 보고, 한 사람은 앞에서 그 물건을 본 것입니다. 두 사람 다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했을 뿐,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자기의 모습을 깨닫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달려가는 것은 마치 앞을 보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매순간 선택하는 것만큼 우리와 우리의 관계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 없습니다. 

하만은 셋째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만이 생각하지 못한 가장 큰 변수였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버지에게 세상이 부조리하고 온갖 비리가 많은 것처럼 느껴져서 참 세상이 악하다 이야기 했더니 그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참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일하시고 계시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눈앞에 있는 것들을 할 뿐이지만, 그 모든 조각을 맞추시고 인도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우연이나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섭리라고 고백함. 하만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많습니까? 에스더의 잔치를 가지 전날밤 하필 역사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 역사책 속에서 하필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하필 왕이 그 이야기 속의 모르드개의 이야기에 보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하필 그때에 하만이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달아 죽이려고 왕을 찾아오고 하필 왕이 그때에 사람을 불러 하만을 만나고, 자기 도취에 빠진 하만의 입을 통해 모르드개를 높일 방법을 찾게 되고, 그리고 그 모르드개를 높이는 일에 하만이 사용되고, 하만이 만들어놓은 모든 것들을 단번에 뒤집으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일하시는 지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를 위해 모르드개를 위해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이렇게 일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도 이렇게 일하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교만,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고, 오직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언 16장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야곱의 이야기 – 형에게 장자권을 팥죽을 샀던 야곱은 그 복이 무엇을 뜻하는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형을 피해 삼촌 라반의 집에 도망가고, 그곳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 14년을 노예로 일하고, 자기 재산을 마련하고자 6년을 더 일했습니다. 돌아와서도 형과 극적인 화해를 했지만 여전히 아내 라헬과 아들 요셉을 잃는 슬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을 험악한 삶이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욕심 많았던 야곱은 이러한 삶을 통해 이스라엘로 거듭날 수 있었고, 이스라엘 족속의 뿌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 –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의 과정을 요셉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노예로 팔려가고,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갖히고,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요셉은 하나님이 쓰시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고백 ‘생명을 살리게 하시려고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라고 말하며 형제들을 용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계획을 따라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끄시며 가장 좋은 것으로 그 길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신뢰하고 믿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로마서 8장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의 조각조각들을 모아서 아름다운 그림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만은 하나님 없이 자기가 그림을 그리려다가 모든 그림을 망치는 길로 갔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는 그림의 전체는 볼 수 없어도 매일 매순간 하나님 안에서 그림을 그리다보면 그 그림을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완성 시켜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만 조심해야 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교만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인간의 교만은 태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꼬임에 넘어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죽음에 이르는 벌을 받고 말았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생 아벨의 제물만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자 동생을 죽여버렸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배의 재물이 드려지지 못한 것을 자기 자신의 잘못에서 찾아보아야 할 텐데, 하나님께 반항하는 마음으로 동생을 죽여버린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교만한 마음이었습니다. 바벨탑 사건 또한 이와 같은 교만을 보여줍니다. 벽돌로 탑을 쌓아 하나님께 닿으려 했던 사람들은 결국 심판을 받고 흩어져야만 했습니다. 애굽의 바로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신의 대리자, 신의 아들이라 생각했습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낼 것을 들었을 때 그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들어와 있는 죄인 교만은 뿌리 깊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여기는 것을 늘 포기하지 못합니다. 칼뱅은 우리 자신을 우상 만드는 공장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높이고, 우리 자신을 가장 불쌍하게 여기며, 우리의 마음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깁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알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며,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교만으로부터 멀어지길 원하십니다. 교만이야 말로 우리를 가장 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만, 우리를 가장 먼저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만은 이러한 교만함에 빠져서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길로 걸어갔습니다. 자기 뜻대로 자기가 가장 높임을 받고, 자기 뜻대로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는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선악과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지도 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을 먹었을 때 아담과 하와가 죽음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음을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교만함을 조금도 갖지 않으시고, 오직 겸손함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신뢰하신 분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셨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겸손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교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만은 사랑 앞에 무너집니다. 어머니의 사랑 앞에서 자신의 교만이 무너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우리의 모든 교만이 무너집니다. 감격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이 교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알게 된다면, 우리는 진실로 겸손한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을 포기하는 것처럼 진실로 겸손한 길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완전한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간다하더라도 부활의 승리를 얻게 될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소망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기꺼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놀라운 비밀을 다시금 깨닫기 원합니다. 예수님 바라봄으로 겸손함을 깨닫고, 예수님 바라봄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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