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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종 (2020.12.17. 대림절 아침묵상 (11))

빌립보서 2장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 초대교회의 위대한 교부였던 어거스틴에 어느날 제자들이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덕목은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대답했습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둘째는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또 대답했습니다. "둘째도 겸손입니다." 제자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셋째는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이대답했습니다.  "셋째도 겸손입니다." 제자들은 놀라워 하면서 새로운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겸손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이 대답합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제자는 다시 물었다. "선생님, 그렇다면 교만이란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2.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교만합니다. 그 교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이웃 앞에서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 일이 교만으로부터 내 자신을 꺼내는 첫 걸음입니다.

3. 위대한 종교 개혁가 칼뱅은 인간의 교만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교만이요, 둘째는 이웃에 대한 교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교만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고,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채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은 자기 자신을 높이고 이웃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웃을 이용해먹는 것입니다. 

4. 이러한 교만은 우리의 모든 관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길임을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잠언말씀은 우리에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 선포합니다. 예언서 말씀은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경고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가버나움을 비판하시며, ‘네가 하늘까지 올라가려고 하느냐? 지옥까지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그렇다면 교만으로부터 벗어나 겸손의 길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교만은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이나 태도로 우리는 겸손의 모양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속에서부터 근본적으로 겸손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뿌리 깊은 자기 중심성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스스로 겸손해지려고 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겸손하다는 교만에 빠지고 맙니다. 앞서 어거스틴은 교만이란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지겠다는 말은 스스로 교만해지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6.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는 겸손해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함으로 가능합니다. 겸손은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목할 때 생기는 덕목입니다. 내가 나를 스스로 누르며 겸손해지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를 교만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주목하고, 그분의 위대하심과 그 사랑을 깊이 깨달을 때, 그분의 구원의 역사에 우리의 마음을 드렸을 때 우리는 진실로 겸손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교만한 상태인지를 깨달은 상태, 그것이 역설적으로 겸손한 상태인 것입니다.

7.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그 놀라운 겸손과 사랑과 은혜를 선포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신 분이시지만, 그와 동등한 대접을 받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모습을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극히 겸손한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 안에 우리를 향한 지극히 큰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에 매여 있는 상태만이 겸손한 상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기꺼이, 자연스럽게 그 겸손의 길로 내려가신 것입니다.

8.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의 길을 가장 존귀한 길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장 겸손한 길로 걸어간 자가 얻어야 하는 합당한 자리로 우리 예수님을 인도하셨습니다. 말씀은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극히 낮아지셨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예수님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시고, 그분의 영광 가운데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걸어가는 길, 그 겸손한 길만이 우리를 영광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9.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지극히 크신 우리 예수님의 사랑을 주목합시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은 겸손의 길을 바라봅시다. 오직 사랑만이 겸손의 길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겨주시고, 우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 분의 깊은 사랑이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을 비출 때, 우리는 이제껏 나 중심으로 살아왔던 교만들을 하나씩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도 그분의 사랑에 반응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우리의 것들을 내어주는 삶,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진정으로 겸손의 삶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죽는 길을 선택할 때, 주님은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예수님과 더불어 주의 영광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10. 오늘 기도는 설교자 칼바르트의 기도문으로 함께 우리의 마음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기도 제목은 지금 우리의 중심에입니다.

지금 우리의 중심에
주님, 주님은 스스로를 낮추셔서 우리를 높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가난하게 되셔서 우리가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가 주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값없는 감당치 못할 은총으로부터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우리 주요 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신비와 놀라움을 마주하며 우리는 여기 모여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또 듣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주님을 향하도록 주님이 우리를 해방하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이를 행할 아무 능력도 없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간구합니다.
지금 우리의 중심에 들어와 주소서.
주님께로 향하는 길을 성령을 통해 보이시고 열어주소서.
우리의 눈으로 이 세상에 임한 주님의 빛을 보고 
우리의 삶의 행실로 주님을 증거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