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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용서하신 예수님 (2020.12.22. 대림절 아침묵상 (13))

누가복음 23장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1.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셔서 하신 수많은 사역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병자를 치유하시고, 귀신 들린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소외되고 버림 받았던 이들을 주님의 품으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말씀을 온전히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참으로 귀하고 갚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의 핵심에는 ‘용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서 있을 때에,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더불어 그 주님을 못받은 우리의 죄를 반드시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우리,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우리,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우리, 헛된 우상을 숭배하며, 우리의 눈과 마음에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 진홍같이 붉은 죄에 빠져 있는 우리를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3. 그 죄를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당시 유대인들과 오늘 우리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의 권위와 권세를 위하여,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신념을 위하여, 예수님을 못받았던 당대 종교 지도자,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과 우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어리석음과 영적 무감각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외쳤던 유대 군중의 모습과 우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가고 말았던 제자들의 연약한 모습과 우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4.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깊이 묵상한다면, 그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이 겪어내신 모든 고난과 아픔과 절망과 죽음이 나로 인함이요, 내 죄를 사하기 위함이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당신이 받아주시고, 기꺼이 십자가의 길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 우리 예수님의 용서, 하나님의 용서가 있었습니다. 

5. 오늘 말씀 34절은 이러한 예수님의 깊은 용서가 무엇인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주님께서는 가장 극심한 고통과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이 일이 모든 사람의 죄를 감당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순간에도 사람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죄악과 어리석음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들을 품는 예수님의 놀라운 용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주님께서 이렇게 용서하시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태도는 교만하고 어리석기 그지 없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죽어가는 예수님의 옷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나누려고 제비 뽑았습니다. 참으로 잔인하고 무도한 일이었습니다. 백성은 서서 그저 구경하였습니다. 무심하고 무관심한 그들의 마비된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관리들은 교만했습니다. 그들은 죽어가는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이 조롱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 것이다.’ 로마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예수님께 나아와 신 포도주를 내밀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비난하였습니다. 

7. 로마서 1장 29절에서 31절 말씀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어떤 죄를 짓는지를 그대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리고 32절 말씀은 이러한 죄를 짓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죽이는 자들이 정확히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정작 사형에 처해져야 할 이들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들을 용서하시고자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용서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8. 오늘 말씀을 바라보며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기꺼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받아주시고, 그 죄를 용서로 덮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용서 안에는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되 죽기까지 사랑한 그 사랑, 그 용서가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 은혜요, 참 선물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9. 이제 우리가 주님의 그 용서하심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지게 됩니다. 첫째는 더 이상 죄를 짓는 일을 기뻐하지 않게 됩니다. 나의 죄가 내가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나를 이처럼 용서해주셨는데, 내가 어찌 다시 죄를 지을 수 있으랴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용서받은 자의 삶입니다. 둘째는 이제 이웃을 용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나 또한 용납 받고 용서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기에 내 이웃에 대해서도 관대하고 용서하고 품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웃이 죄를 저지를 때, 그들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해 저런 죄를 저지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단순히 죄인도, 의인도 아닙니다. 오히려 용서받은 자,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입니다. 자기 자신이 지극히 큰 죄인인 것을 알지만, 동시에 우리를 위해 놀라운 용서를 해주신 예수님의 사랑의 십자가도 아는 사람입니다. 이 놀라운 고백이 우리 성도님들의 온 삶에 가득하길 축복합니다. 

10.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와 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을 기다리며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를 향한 주님의 크신 사랑과 용서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는 오늘 말씀에 나오는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저희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매 순간 죄를 짓으며 살았습니다. 저희는 그 일이 주님을 배신하고 조롱하고 모욕하고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인 줄도 모르고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저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 죄악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주님은 저희의 이러한 모든 죄악을 기꺼이 감당해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선포된 주님의 기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는 이 고백은 저희를 향한 주님의 절절한 사람의 고백임을 저희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이제는 저희가 이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용서받은 자로서 다시는 죄에 가까이 가지 않는 자들 되게 하시고, 저희 또한 용서하는 자들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달아 예수님께 더욱 나아가고, 예수님 닮아가는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