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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 사건의 의미 (2021.02.28.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7장 1~13절)

마태복음 17장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몇해 전에 명량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고작 열세척의 배로 적어도 백삼십삼척 이상의 일본군을 막아낸 전투를 다룬 영화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싸웠던 전투 중 가장 위대한 전투를 다룬 이 영화는 저 개인적으로도 재밌게 본 영화였습니다. 이 명량 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병사들에게 했던 매우 유명한 말이 있었습니다. 必生則死 必死則生 필생즉사 필사즉생. 곧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그 장면을 잠시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연설은 사실 매우 감동적인 연설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잠시 잡혀있었던 사이, 조선 수군들은 큰 패배를 당했고,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군함이 파괴되고, 거의 대부분의 수군들이 전사했기 때문입니다. 끌어모으고 끌어모은 함선이 고작 13척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일본군 함선은 수백척이 넘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다음 전투에 전멸할 것이 뻔하였습니다. 그때, 이순신 장군이 나서서 벌벌 떨고 있는 병사들에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것이다라고 외친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당신 조선 수군이 처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조선 수군의 운명은 죽음이었습니다. 피할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어디로든지 도망가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진실로 걸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음의 두려움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 그리고 용기를 내어 죽기를 결단하고 싸우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외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순신의 선언과 똑같은 말씀을 우리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 함께 나눈 말씀 마태복음 16장 25절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고 하는 사람, 자기 목숨만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목숨을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게 된다면, 그 사람은 결국 목숨을 얻을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이순신의 이야기를 통해 빗대어서 살펴본다면, 우리의 삶 또한 조선 수군과 같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피하려고 애써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죽음을 피하려고 다른 길로 도망가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헛된 길로 가지 말것을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 자기 욕망과 쾌락만을 추구하며 사는 것, 사람들을 부리는 권력과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위해 사는 것, 자기 증명을 위해 사는 것을 멈추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우리의 삶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없음을 우리 주님은 선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이겨내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이순신 장군의 말씀처럼, 그리고 우리 예수님의 말씀처럼 오히려 죽음을 뚫고 들어가는 길 속에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처럼 말한 뒤에 실제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자료를 살펴보면, 12대의 다른 배들은 죽을 것이 뻔하다고 생각해서 뒤로 빠져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배 1대만 용기있게 133대의 배를 맞서서 버텼는데, 무려 오전 내내 혼자서 겹겹히 포위하고 들어오는 적군과 싸웠다고 합니다. 점심이 지나고 나서야 조류가 아군이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고, 또 이순신 장군의 분투를 보면서 한대씩 나머지 배들이 용기를 내어 다가왔고 이후에 전투에서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살 길을 쌓는 길을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역시 우리가 이 죽음의 길을 뚫고 나가는 법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모두가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때에, 모두가 각기 제 길로 흩어질 때에,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했을 때에, 오직 우리 주님이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의 길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진짜 사는 길, 생명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처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길을 선포했을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주님께 그 길이 옳다고 선포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신 후에, 당신께서 걸어가야 하는 길은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게 죽음으로 뚫고 나아갈 때 비로소 부활 생명을 드러낼 수 있음을 처음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신 뒤에 곧 이어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오늘 말씀에서 나타난 변화산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1~5절 까지의 말씀입니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예언하신 뒤, 엿새 뒤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어느 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아마도 헤르몬 산이나 다볼 산으로 추정되는 산이었습니다. 이들이 산 정상에 이르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주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갑자기 나타나서 예수님과 더불어 대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일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경이로운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이곳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제가 여기에다가 초막을 셋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에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었고, 구름 속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롭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내산에서 모세를 만난 하나님, 호렙산에서 만난 엘리야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곳에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을 때에,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해야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각각 구약성경의 율법과 예언을 상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놀랍게도 이들과 함께 서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얼굴이 해와같이 빛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예수님과 그 제자들 앞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세례를 받으시면서 들으신 말씀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더 나아가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변화산 사건은 그 메시지가 분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의 모든 율법을 완성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모세의 권위와 엘리야의 권위를 넘어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이루실 분이다. 너희는 예수님의 뜻을 따르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변화산 사건을 통해 당신의 뜻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을 선포하신 뒤에 곧 이어서 변화산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 의미를 분명히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6절부터 13절까지 말씀은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까지 함구할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이 변화산 사건의 참 의미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가 일어난 뒤에야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변화산 사건은 주님의 길이 옳았다는 것을 온 세상에 드러낸 주님의 부활을 미리 예표한 일종의 예고편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일을 겪고서야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구약말씀 말라기 4장 5~6절에서 선포된 예언을 살펴보면,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미리 그 길을 예비한다고 하였는데, 주님께서 메시아라면 그 엘리야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세례요한이 그 엘리야였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주님은 다시한번 당신께서 메시아이시며, 그 메시아의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마태복음으로 말씀을 나누기 시작한지도 벌써 1년 3개월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을 나누면서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선포하신 그 하나님 나라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진실로 율법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가지 비유로, 또는 기적으로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주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이제 점점 절정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시고 완성하시는 그 길의 정점에 바로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선포되고, 그 십자가의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드러나며, 그 십자가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소망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이 이제껏 선포하신 그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시기 위해, 이제 십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그 길이 옳은 길임을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시작하며 다시금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확인했습니다. 죽고자 하는 사람만이,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사람만이 오히려 살 수 있습니다. 죽음이 두려워 정면돌파를 하지 못하면, 결국 죽음에게 집어 삼킴을 당합니다. 그러나 기꺼이 죽음을 뚫고 나가기로 결단하면, 그 죽음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밀알의 비유처럼, 씨앗이 땅에 떨어져 그대로 있으면 그저 씨앗 하나에 불과하지만, 씨앗이 죽어서 썩으면 그 씨앗은 새싹이 되고 나무가 되어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죽음과 삶이 얽히는 역설을 복음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변화산 사건은 그 일을 확증해주는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그 놀라운 변화산 사건을 보고, 이제 이곳에서 초막에 짓고 살자고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황홀한 광경 속에 머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길은 그 산을 내려와서 십자가의 길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영광을 위해 가장 치욕적인 길, 가장 부끄러운 길, 가장 두려운 길로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저는 앞서 우리가 함께 보았던 조선 수군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 안위를 위해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며, 자기 삶을 보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마치 자기가 생각하는 그곳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에 생명이 있지 않음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마치 조선 수군이 육지로 도망쳐봐야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과 같습니다. 조선 수군의 생명은 적진 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때 그곳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적인 방법과 세상적인 길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 곧 십자가의 길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집중하고, 주님께 내 삶을 거는 것, 그 길이 죽음의 길처럼 보이고, 그 곳으로 가면 반드시 망할 것처럼 보이는 그 길에 바로 생명이 있습니다. 오늘 변화산 사건은 그 놀라운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너희 그의 말을 들으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늘 두렵습니다. 우리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기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그 길이 죽음의 길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홀로 먼저 그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죽으심으로 부활을 증명해 보이셨고, 그 길로 우리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우리의 길을 다시한번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길로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도망칠 것인가, 우리가 주님께로 우리의 마음을 결단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놀랍게 이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