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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2021.03.07. 주일설교. 마태복음 17:14~21)

마태복음 17장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우리는 지난 주 말씀을 통해 변화산 사건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어느 한 산에 올라가셔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변형되사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놀랍게도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면서 그 구름 속에서 목소리가 났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 땅에 오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이 확증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선포가 옳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었으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앞에 베드로가 고백한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는 이 고백이, 예수님의 고백 곧 자신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삼일만에 부활하는 것을 통해 이루질 것임을 확증시켜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당신이 메시아되시고 구원자되심을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우리 하나님께서 확증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산 사건이 있은 뒤에 일어난 사건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14절에서 16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갔었습니다. 이제 산에서 내려온 뒤에 산 아래에 남아있었던 나머지 제자들과 합류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려오신 것을 보고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말하였습니다.  주님 제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 아이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심각한지 가끔씩 불 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제가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영광의 사건을 경험하고 내려오셨는데, 그의 제자들은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비참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상황을 크게 안타까워하였습니다. 일단 주님은 먼저 중요하고도 급한 것, 곧 아이를 치유하는 일부터 행하셨습니다. 17절, 18절 말씀입니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주님은 먼저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엄중히 꾸짖으셨습니다. 이 세대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다.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내가 얼마나 너희를 참아야 하느냐, 주님은 제자들이 이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믿음이 없고, 패역했기 때문이라 선포하였습니다. 패역하다고 번역된 성경 원어(디에스트람메노스)의 뜻은 비뚤어졌다, 구부러졌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또 믿는다 하여도 굽은 믿음, 잘못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능력이 없다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셨는데, 무리들은 물론이요 제자들까지 주님의 선포와 가르침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상황임을 주님은 이 상황을 통해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이전에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당신의 능력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절 말씀입니다.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러한 주님의 권능을 조금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임하였다는 것도,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여전히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즉각 이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아이 속에 있는 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이 아이가 그 시간으로 나았습니다. 그 아이를 지배하고 있던 악한 영이 떠나간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분명하였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되시고, 우리의 하나님 되시고,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삶에 중심이 되고, 우리 사랑의 방향이 되고, 우리와 늘 동행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껏 우리 삶에서,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 역할을 하고 있던 모든 우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욕심이나 욕망이 되었든, 우리의 상처나 미움이 되었든, 우리의 두려움이나 불안이 되었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으로 삼지 않고, 오직 우리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소개하여 주시며,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이 임할 때 일어나는 치유와 회복과 용서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보여주는 풍요로움과 기쁨과 감격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여전히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지 않고 자기 자신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 얻는 권능과 능력, 예수님을 통해 얻는 성공, 예수님을 통해 얻는 명성과 지혜 같은 것에만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받았음에도 아무런 능력을 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를 우리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또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책망과 기적 앞에서 다시한번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가 이와 같이 물었습니다. 19~20절 말씀입니다.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제자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하였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저는 이 질문에 제자들의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면, 이와 같이 질문했어야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굽어져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믿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질문하지 않고, 왜 우리가 이 아이를 괴롭힌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통해 얻을 능력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더 깊이 말하자면, 여전히 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믿을 것을 이야기하는데, 더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 관심을 두라고 이야기하시는 데, 제자들은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질문에 응답하여 다시 방향을 믿음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은 너희 믿음이 작기 때문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주님은 믿음이 작기 때문에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에서 오해해서 안될 것은 이 믿음을 어떤 주술적 차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확신해. 내가 진짜 될 줄로 믿어. 나 진짜 믿어”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것은 이러한 생각이나 감정적 상태로서의 믿음, 자기 확신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이 선포하시는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곧 하나님의 사랑과 그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태도, 내 모든 것의 주 되시는 하나님을 믿는 태도, 내 생명과 내 인생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그 믿음, 곧 우리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고 믿는 그 믿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그러한 믿음이라면,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 할 지라도 산을 옮길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잘 보여주는 바울의 고백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 13절 말씀입니다.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과 신뢰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고 고백합니다.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이 그를 교만하게도 하게하지 않고, 절망하게도 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모든 상황과 형편을 넘어서서 굳게 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우리 주님이 선포하신 믿음을 분명히 붙들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고 순교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로마시대에는 큰 경기장에서 사자와 맞서야 했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일본 에도 시대에는 유황불에 던져저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입니다. 사자는 난폭했고, 유황불은 뜨거웠으며, 권력자들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순교자들의 믿음은 아무런 능력이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순교자들의 믿음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세상의 권력자도 감당할 수 없었던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죽음앞에서도 초연히 지켜질 수 있었던 것, 그것이 바로 산을 옮기는 능력이 나타난 것이요, 못할 것이 없는 능력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믿음으로 끝까지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이, 이 들을 통해 드러낸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한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그러한 믿음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믿음을 가진 세대를 믿음이 없는 세대, 패역한 세대라 부르십니다. 믿음은 우리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우리를 굳게 세웁니다. 그러한 믿음은 우리를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건져냅니다. 그러한 믿음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줍니다. 그러한 믿음은 불의와 죄악을 뚫고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냅니다. 그러한 믿음은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고, 그러한 믿음은 우리 안에서 주님의 열매를 이루어냅니다. 그러한 믿음은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합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 그 믿음의 길을 보여주셨고, 부활을 통해 그 믿음의 열매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