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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질서 (2021.03.21.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8:1~14)

마태복음 18장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사람이 가진 본능적인 감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더 큰 사람인지를 재빨리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권력관계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이 있는 공동체에서는 늘상 있어왔던 일입니다. 심지어 부부나 연인 사이에도 기싸움이라는 것이 존재하기까지 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든, 아니면 슬며시 감추어져 있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종의 위아래가 생기고, 그 관계에 따라 많은 것들이 결정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이렇게 위아래를 결정하고 누가 더 큰 사람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면 정말 피곤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이러한 관계를 규정하는 것을 쉽게 하기 위해서 일종의 규칙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이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이를 묻게 되고, 그 나이를 바탕으로 일정정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서열을 정리하곤 합니다.  그리고 나이 뿐 아니라 사회적인 위치나 지위, 서로가 해야할 역할, 각자 가진 재산이나 능력과 같은 것들도 이러한 서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또 심지어 외모나 인종도 이러한 데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것들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으면서 권력관계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이러한 권력관계를 만드느냐가 그 사회의 근본적인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1절에서 제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에서는 누가 더 큰 자입니까? 이 질문은 하나님 나라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때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질서를 가진 나라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셨습니다. 2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 아이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회개하여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어린아이를 통해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라 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나 단순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어린아이가 받고 있었던 대접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아직 절반정도만 사람인 존재, 미천하고 부족한 존재, 존귀함이나 고귀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자신을 어린아이로 여기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지극히 겸손해지는 것을 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 오히려 큰 자라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선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질서,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질서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계속해서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준, 하나님 나라의 대원칙을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판단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사람은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의 나이나 지위나 능력이나 경험이나 재산, 그 사람의 외모나 성별이나 인종과 같은 것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누구나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큰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존귀히 여기십니다. 얼마나 존귀히 여기시는 지, 내가 하찮게 여기는 내 앞의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만큼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자격이 있거나 능력이 있어서, 혹은 거룩해서, 혹은 선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 하나님께서 그러시기로 작정하시고 결단하시고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그것이 .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을 대접하면, 그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네 앞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처럼 소중하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6절부터 10절까지 말씀입니다.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너희 중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이 작은 어린아이 하나를 업신여기고, 핍박하고, 죄를 짓게하여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떠나게 할 것이라면, 차라리 자신에게 큰 돌덩이를 목에 달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런 일을 할 바에야 차라리 나가 죽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만큼 이 일이 나쁜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죄짓게 하는 이 세상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 세상에 죄악의 유혹은 있게 마련이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네 눈이 범죄하게 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이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고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키는 수호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께 날마다 그들의 삶을 보고해주고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진실로 우리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참으로 두렵고 떨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중 누구의 손과 발이 남아있을 수 있겠으며, 우리 중 누가 두 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날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며, 날마다 교만한 삶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셀 수 없을 만큰 목에 돌을 걸고 바다 깊은 곳으로 뛰어 들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의 말씀에 담긴 깊은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의 기준, 우리의 질서, 우리의 정체성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준, 하나님 나라의 질서,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으로 바뀌는 것이 이처럼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하나님처럼 존귀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가지고 있는 교만함을 내려놓고 겸손함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히 죽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목에 돌을 걸고 바다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은 깊은 죽음을 경험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잘라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손과 발을 자르듯, 우리의 잘못된 사랑을 잘라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시선을 뽑아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마치 눈을 뽑는 것처럼 우리의 잘못된 시선과 기준과 판단을 뽑아 내야만 한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끝으로 12~14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주님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마리가 있는 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그 아흔 아홉마리를 산에 두고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그 잃은 양을 만일 찾게 된다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마리보다 이 것을 더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으시다.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이 비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잃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듯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듯 나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조금 더 인정을 받고, 조금 더 존중을 받기 위하여,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 더 사랑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우리 만의 기준을 만들고, 우리만의 이너서클을 만들고, 우리의 것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큰자와 작은자를 구분합니다. 나아가 작은 자를 멸시하고 천대하고 빼앗고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이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질서입니다.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위에서 세워지는 질서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가 되고, 모든 이들이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보이시고자 하신 것, 그것이 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손과 발에 못이 박히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일을 우리 예수님께서 모두 대신 감당하여 주셨고, 우리 예수님께서 그것을 통해 지극한 주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의 손과 발이 주님의 손과 발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에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예수님과 더불어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요,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처럼 존귀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핵심원리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오직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합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깨달은 사람, 그리고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새벽교회 성도 모두가 이와 같이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