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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포기 (2021.03.14.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17:22~27)

마태복음 17장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난 16장 21절의 말씀에 이어서 두번째로 자신의 고난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리라. 

주님께서 처음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죽으심을 당할 것이라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의 반응이 기억해보면, 반발이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크게 반발하며 주님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란 제자들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십자가의 길로 가야만 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고난을 예고하시자, 제자들의 반응은 첫번째와 달랐습니다. 오늘 말씀 23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정말 예수님은 죽으려 하시는 것일까? 예수님이 죽으신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이 그들의 마음 속에 가득 들어왔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놀라운 이적 하나를 보이셨습니다. 이 이적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던 제자들에게 주님을 뜻을 보이신 이적이었습니다. 먼저 24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에 성전세를 거두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렀습니다.  왜 당신의 선생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습니까? 당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세를 내야만 했습니다. 출애굽기 30장 13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이에 관한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에서 사용하는 돈으로 반 세겔을 내야 했습니다. 이것은 일반 노동자의 이틀치 품삯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스무살 이상 된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게 내는 돈이었고, 이 돈을 가지고 성전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이 성전세는 보통 자기 고향에서 거두었으며, 그렇게 거둔 돈을 모아 예루살렘 성전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성전세를 거두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와서 예수님도 성전세를 낼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25절, 26절 말씀은 이어지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베드로는 이들에게 우리 예수님도 성전세를 드릴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예수님께서 계시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 상황을 말씀드리려는 찰라에 갑자기 예수님께서 먼저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의 왕들이 관세나 국세를 누구한테서 받아내느냐? 자기 자녀들한테서 받느냐? 남한테서 받느냐?” 

베드로는 갑작스러운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였습니다.

“남한테서 받아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 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성전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위해 세운 건물이었습니다.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성전은 당연히 하나님이 주인이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왕의 자녀들이 왕에게 세금을 내지 않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예수님은 성전제를 낼 필요가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예전의 종교 체제가 더 이상 무의미하게 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위한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기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찾아갈 필요도 없게 되었고, 하나님을 위해 성전세를 낼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주님께 예배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모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성전세를 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들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된다.” 아직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분명히 보이시기 전이셨기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성전이 임하였음을 알수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성전과 그 성전을 위한 성전세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을 배려하여 성전세를 내기로 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당연히 가지고 있는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마련하는 방법이 엄청 특이합니다. 반 세겔은 크지 않은 돈이라 그저 마련하면 될터인데 놀라운 이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라. 그리고 가장 먼저 잡힌 고기의 입을 열면 그 입안에 돈 한 세겔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너와 나를 위해 내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헌신과 섬김으로 자신의 것을 내어주려고 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 그것을 채워주심을 보이시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물고기 입에서 동전이 나온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전혀 생각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증표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적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11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습니다. 모든 권리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우셨고,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지극히 낮은 자리로 자기를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이 안에 지극히 큰 우리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기꺼이 성전을 위한 세금을 내신 것, 그 놀라운 겸손함의 바탕에는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주셨습니다.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만물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됨을 높이 드러내신 것입니다. 주님의 지극한 겸손한 사랑, 십자가의 사랑이 곧 하나님의 모습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겸손하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성전세를 내고자 했을 때, 물고기 입속에 한 세겔의 돈을 예비하신 것은 이러한 낮아짐과 채우심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보이신 주님의 이적이었습니다. 주님은 오늘 이적을 통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원리를 말씀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위해 그 권리를 내려놓는다면, 마땅히 자기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위해 그것을 나눈다면, 주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위해 예비하시고, 채우시고,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고난과 수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이러한 포기와 헌신이 그저 무의미한 일이 되겠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믿음으로 하는 포기와 헌신과 배려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을 경험하는 풍성한 열매를 경험하는 역사가 됩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가르치시는 김학철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교수님께서 인터뷰하시는 영상을 본적이 있는데, 이분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수력발전소에 비유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수력발전소 같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높은 곳에 있는 물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서 그 떨어지는 힘으로 전기를 만들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해짐으로, 낮아짐으로, 섬김과 사랑으로 예수님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그렇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셨던 예수님께서 겸손함으로 지극히 낮은 자리에 처하시고, 죽기까지 섬기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 본받아 사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마땅히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사랑을 위해 포기하고,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것을 이웃을 위해 내려 놓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세상 가운데 보여주어야 할 모습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갈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처럼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실뿐더러,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풍성한 열매로 맺어 나가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