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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마음을 품은 교회 (2021.03.28. 주일예배. 마태복음 18:15~20)

 

마태복음 18

15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오늘 말씀은 교회 공동체에서 죄를 범한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뒤를 살펴보면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은 공동체와 관계에 관한 말씀임을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함께 나누었던 말씀 18 10절부터 14절까지 말씀을 보면 잃어버린 어린양에 관한 비유가 나와 있습니다. 백마리의 중에 한마리의 양을 잃어버리면, 구십 구마리의 양을 두고 한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한마리를 찾으면 나머지 구십 구마리의 양보다 이것을 기뻐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사람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 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말씀이후에 다음 주에 나눌 말씀 18 21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면 용서에 관한 비유가 나와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용서하되 일곱번을 일흔번까지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말씀 사이에 끼어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지극히 귀하게 여기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일곱번식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이 죄를 저질렀을 , 공동체는 그의 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사람을 지극히 귀하게 여기고, 그를 용서하려는 마음을 품으면서도, 동시에 죄에 대하여 엄중하게 다루는 방법을 오늘 말씀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선포된 죄는 가벼운 죄에서부터 중대한 죄에 이르는 모든 죄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공동체 내에는 개인적 상황 속에서 해결할 있는 문제들이 있고, 공동체가 함께 판단했을 때에 교회 공동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 공동체를 흔들 있는 죄가 있을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내부에 들어온 이단의 문제, 교회 재정에 대한 부도덕한 사용, 교회 지도자의 성적 스캔들, 교회 내에 심각한 갈등과 다툼, 이러한 문제들은 교회 전체를 흔들고, 연약한 이들의 신앙을 무너뜨리며 주님의 교회에 상처가 있는 문제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구성원들 이처럼 죄를 저질렀을 , 죄에 대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방법을 단계로 말씀하셨습니다.

 

첫번째 단계는 개인적 권면입니다. 15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5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누군가가 죄를 범할 때에, 가장 먼저 우리가 있는 일은 사람과 단둘이 만나 권고하여 죄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죄가 아직 경미할 때에, 그의 죄가 시작 단계에 들어서고 있을 때에, 그의 죄의 영향력이 적을 때에 조기에 문제를 다루어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죄는 눈덩이와 같은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 묵상에서 함께 나누었던 사무엘하 말씀에 등장한 다윗의 범죄를 살펴보면 이를 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전쟁에 나아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싸워야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쟁터에 군사를 내보낸 , 자기는 홀로 예루살렘에 남아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마땅이 있어야 자리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던 우연히 목욕하고 있는 여인을 보았고, 여인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마음만 빼앗기고 말면 것을, 그는 자신의 욕망을 실행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장수의 아내였습니다. 여인이 임신하자, 다윗은 그것을 감추기 위해 충성스러운 장수를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죄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야고보서 1 15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가 점점 자라나서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됨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형제가 죄의 싹이 트고 있을 때에 그가 돌이킬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조용히 사람을 상대하여 권고하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안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람의 죄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권면할 때에, 그것을 정죄나 비판을 통해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죄나 비판은 다른 죄입니다. 서로 간의 갈등과 분열을 가져올 뿐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돌이키고자 한다면, 먼저 기도하고, 깊은 사랑과 용납과 이해를 통해 이루어가야 합니다. 수만 있다면 우리는 사람과의 친밀한 교제 안에서 권고하고 돌이키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 우리는 사람을 얻을 있으며, 교회 공동체를 세워갈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회개하지 않았을 때에는 두번째 단계가 있습니다. 16 말씀입니다.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주님께서는 만일 이렇게 개인적으로 권면하였는데도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사람을 데리고 가서 사람을 권면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명령에는 신명기 19 15절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증인의 입으로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유대인들은 말씀에 따라 사람의 증언은 효력이 없었고, 세사람의 증언이 있을 때에만 증언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사람이 자의적으로 판단했을 가능성, 보았을 가능성, 고의로 왜곡하거나 조작했을 가능성 등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말씀에 따라 세사람의 증언이 있을 때에 객관성이 확보될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전통에 따라 두번째 단계에서는 사람을 데리고 가서 세사람이 함께 설득하고 권면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번째 단계에도 사람,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원칙을 계속해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세사람이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함부로 정죄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때때로 편견과 오해가 담겨 있을 있습니다. 사람의 잘못된 시선과 판단으로 죄가 아님에도 죄로 있는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능성이 언제든 있기 때문에, 대일 관계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조언하고 권고하였을 그것을 상대방의 생각일 뿐이라 여기고 마는 것입니다. 그때에 신뢰할 만한 누군가가 사람 있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있습니다. 죄가 아니었는데, 상황과 형편을 고려하면, 충분히 다르게 생각할 있는 문제였는데 오해였다는 사실이 발견되기도 하고, 그것이 실제로 죄였다면, 조금 객관적으로 문제의 잘못을 되돌이킬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세사람이 함께 논의하고 권면하는 것은 조금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함으로서 신뢰 안에서 문제를 풀어갈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갈등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해결하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함께 모여 문제를 풀어가라는 것은 결코 정죄와 판단, 심지어 압박으로 해결하라는 뜻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세사람이 함께 문제를 풀어가되 공개하지 말도록 것은 최대한 그의 마음을 지켜주고, 사람이라도 낙심하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사람이 가서도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엔 교회 공동체 전체가 문제를 함께 짊어져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번째 단계입니다.  17 상반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7(상반절)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세사람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죄를 멈추지 않는 모습이 뚜렷이 드러난다면, 교회는 이제 문제를 교회 전체의 문제로 가져와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을 중요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성도 누군가가 죄를 저질렀을 ,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생각하였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회개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 26, 27 말씀에서 이러한 교회의 고백을 이와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26   만일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부분이라

 

교회 공동체는 몸입니다. 몸의 부분이 아프면, 전체가 아프게 됩니다. 몸의 부분이 회복되면 몸의 모든 부분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가 죄를 짓고 예수님을 떠나 살아가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 모두가 아파하고 염려하고, 모두가 함께 회개하는 공동체입니다. 그저 너는 살이 아니다 도려낼 없고, 너는 몸이 아니다 잘라낼 없는 것입니다. 끝까지 품고 기도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문제를 해결해 내려고 애쓰는 , 아흔아홉마리의 양이 한마리의 양을 끝까지 찾아내려 하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그러한 마음으로 성도를 권면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전체를 흔들 있는 중요한 문제일 경우에는 교회가 문제를 공론화하고, 함께 주님의 뜻을 구하며, 죄에서부터 돌이킬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역시 정죄와 비판이 아닌 사랑과 희생으로 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죄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죄의 문제가 너무 크고, 무엇보다 돌이켜지지 않을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주님은 네번째 단계를 말씀하셨습니다. 17 하반절 입니다.

 

17(하반절)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그를 교회에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조직보호를 위한 추방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그것은 죄인을 회개하게 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상 그를 감당할 없으니 쫓아내자, 때문에 우리까지 죄인이 있으니 잘라내자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그리스도 공동체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껏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과도 결이 맞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그를 회개 시킬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쓰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무서운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 사랑으로부터의 단절입니다. 우리는 흔히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을 생각할 때에, 그가 받은 채찍질, 그가 받은 십자가 , 그가 받은 죽음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정작 가장 고통스러워 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외면, 하나님과의 단절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이와 같이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는 ,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이 예수님이 겪으신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고통을 겪으신 이유는 우리에게 그러한 고통을 겪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누구보다 고통을 정확히 아시기에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죄를 떠나지 않는 이들을 보며 너무도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죄를 짓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알려주는 최후의 방법으로 관계의 단절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공동체로부터 끊어지는 아픔,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떨어지는 아픔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아픔을 미리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아픔이 영원한 아픔이 있고, 마음의 고통이 영혼의 고통이 있음을 가르쳐 주시고자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마지막으로 회개할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가르쳐 주신 가르침 속에는 여전히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마음, 용서하시되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시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 공동체는 조직을 위한 조직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드러내는 공동체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그대로 드러낸 공동체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인을 돌이키는 과정을 통해서도 놀라운 주님의 뜻을 그대로 드러내길 원하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능력을 교회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여러분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요, 여러분의 간구가 하나님께 상달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두사람이 마음을 모아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두세사람이 이름으로 모이면, 내가 여러분들 중에 있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심지어 우리 뱃속으로 나온 자녀의 마음도 돌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주님은 누군가를 돌이키고 회개시키는 일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도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을 , 주님은 그를 위해 일하시겠다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무엇보다 성도를 위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특별히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형제 자매를 위해 기도해야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모두가 함께 걸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죄를 짓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며, 주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고 권면해주고 일으켜 세워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1:1 권면으로, 때로는 두세사람의 권면으로, 때로는 교회 공동체의 권면으로 그렇게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교회 공동체에서 내보냄으로 회개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 안에서의 사랑과 용서입니다. 사랑과 용서를 통해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우리에게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것입니다. 기도는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주님안에서 지극히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가운데 누리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