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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성전 (2021.05.23.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21:12~22)

 

마태복음 21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가에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무화과나무에게 이런 일만 아니라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받으리라 하시니라

 

한때 버킷리스트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죽기전까지 하고 싶은 것들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우리에게 남은 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우리 성도 여러분들은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 가장 필요한 일을 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신 우리 예수님께서 바로 이와 같은 마음이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제 자신에게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이 되기전에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중요한 , 가장 필요한 일에 자신의 시간을 소중하게 삼으셨습니다. 주님의 사역의 절정의 시간을 가장 귀한 일에 사용하신 것입니다. 마치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 터지며 아름답게 모든 빛깔을 드러내듯,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당신의 모든 사역의 정점이 되는 일들을 해나가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예루살렘 사역은 어쩌면 유언과 같은 사역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자마자 가장 먼저 성전을 찾으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 하나님과 만나고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신앙의 상징과 같은 곳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침마다 나누고 있는 말씀에도 나타났듯, 성전은 원래 솔로몬이 지었던 것이요, 바벨론이 침략하여 완전히 파괴된 후에 스룹바벨이 재건했던 것이요, 끝으로 헤롯이 다시 보수하고 확장한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유대 지도자들은 성전을 그들의 권위의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이러한 성전에 들어가셔서 하신 일은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12~14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하신 일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때에 난동을 부리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서 먼저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더불어 바꾸는 환전상들의 책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까지도 모두 둘러 엎으셨습니다. 이들이 다시는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모두 뒤집어 버리신 것입니다.

 

사실, 성전에 있던 상인들은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에 필요했기 때문에 존재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교회에 헌금을 때에 로마 황제가 발급한 동전으로 헌금을 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동전에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통용되는 성전 주화가 있었습니다. 환전상들은 로마의 동전을 성전의 동전으로 바꾸는 것을 해주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소나 양과 비둘기 등을 팔았던 상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흠이 있거나 병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엔 지역에서 예루살렘까지 오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물을 데리고 온다 하더라도 오는 길에 동물들이 병이 들거나, 다쳐서 흠이 생기거나, 야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돈을 가지고 올라와서 성전에서 이러한 제물을 사서 즉시 드리곤 하였습니다. 성전의 상인들은 이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인들을 완전히 뒤집어 엎고 쫓아낸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을 강도라 비난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격렬하게 상인들을 비판하고, 성전을 뒤집어 엎기까지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이해심이 없고, 융통성이 없으셔서 이렇게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못하셨기 때문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뜻을 헤아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1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 만들어 버렸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이루어져야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성전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일에 너무 분주하였습니다. 동전을 바꾸는 일에 분주하고, 제물을 준비하는 일에 분주하였습니다. 정작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일에는 무감각해진 것입니다. 그저 성전의 재정을 채우는 , 형식적으로 그럴싸 해보이는 종교 생활만을 보여주는 일이 우선순위가 것을 크게 개탄하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집중을 흔드는 , 그것이 바로 강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 들어야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사람 한사람이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전 답게 사는 것은 주님을 우리 마음 안에 모시고, 주님과 기도로 교제하며,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 마음의 지성소에 주님을 향한 순수함과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하고 죄악된 본성은 이렇게 주님께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을 힘겨워합니다.  또한 악한 원수 마귀는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붙들고 사는 것을 계속해서 막으려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이처럼 성전으로 사는 , 하나님과 계속해서 교제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뺏는 , 가장 힘을 가진 것은 놀랍게도 우리의 분주한 일상입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 오늘 당장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 매일매일 다가오는 일이 우리의 마음 전부를 차지할 우리의 중심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오면 당연히 하나님을 위해 동전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오면 당연히 하나님을 위해 제물을 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위해 최고의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요,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하나님께 집중하는 일을 놓치게 되는 아이러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깨닫게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갑자기 소리도 지르시고, 상도 뒤집으시고, 상인들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정말 중요하냐,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냐, 무엇에 집중해야 하냐 이것을 몸으로 물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신 , 곁에 있는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제껏 성전이 있었지만, 성전은 나름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정작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우리 예수님은 만나 주신 것입니다. 순간 하나님과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만나는 진정한 성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찾는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일들을 행하시자 분노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5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루살렘의 최고위직에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한낱 갈릴리 어촌에서 올라온 종교 선동가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이 보기에 이러한 사람을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영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고, 사람이 성전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사실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성전과 권위를 무시했다고 생각하였고, 대중을 선동하기에 위험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키는 예수님을 보고 분노하였습니다.

 

분노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억울해서 화가나는 분노가 있고, 일이 진척되지 않을 상황이 답답해서 화가나는 분노가 있습니다. 부도덕한 일들을 목격했을 화가나는 분노가 있고, 존중을 받지 못하고 모욕을 당할때에 화가나는 분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했던 분노는 이와 같이 피해를 받아서 느끼는 분노를 넘어서는 분노였습니다. 이들의 분노는 깊은 교만함에서 나오는 멸시와 혐오의 분노였습니다.

 

감히 갈릴리 출신, 아무것도 없는 같은 놈이 성전을 모욕해? 네가 우리를 모욕해? 네가 감히 다윗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어? 이들은 성전을 지키고, 성전을 책임진다는 깊은 우월감과 교만으로 예수님을 멸시하고 혐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오늘 사건을 보고하고 있는 다른 말씀인 마가복음 11 18절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멸시를 함께 느낄 사람들은 그러한 대상을 죽이고 싶어 합니다. 이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계획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이러한 마음을 아시고 16절에서 이와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주께서 어린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주를 찬양하게 하시리라고 선포했던 말씀을 들은 적이 없느냐? 주님은 말씀을 하시며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은 오히려 겸손한 , 낮은 , 순전한 자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자리가 신앙을 보장해주지 않고, 직분이 너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로 인해 너희가 교만한 자리에 있다면, 너희는 결코 하나님을 찬양할 없을 것이다. 교만함은 신앙의 가장 걸림돌이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사람, 이웃 앞에서 교만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찬양할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 사람이 성전이 되어야 하지, 성전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전의 주인은 오직 우리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어린아이와 젖먹이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어 주님을 찬양해야 것입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지는 길은 오직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찾았던 맹인과 저는 자들, 그리고 어린이들은 주님을 만났음을 기억해야 것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상인들과 제사장들을 비판하신뒤 성밖 베다니로 나가 하룻밤을 묵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오셨는데, 놀라운 기적하나가 일어났습니다. 18~22 말씀입니다.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가에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무화과나무에게 이런 일만 아니라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받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다음날 아침에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배가 고프셨습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가에 무화가 나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가 나무 가까이 가서 보니 나무에 잎사귀는 무성한데 열매는 하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아직 열매를 맺는 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보시고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랬더니 무화과 나무가 말라버려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짜증이 나서 이러한 일을 하셨을까요? 기적은 의미가 있는 기적이었습니다. 잎은 무성하나 열매가 없는 나무,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과 성전을 둘러싼 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일매일 분주하게 성전과 관련된 일을 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으나 정작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들어서기에 그들은 너무 바빴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전을 가지고 있다는 마음으로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는 곳으로 이용할 뿐이었습니다. 화려한 성전, 화려한 예루살렘은 모두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나무였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나무를 저주하심으로 이러한 잘못된 길이 이제 끝나게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새로운 성전,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전이 임하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자 제자들이 깜작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있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아니라 산을 옮길 있는 일도 일어날 것이다.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완전히 새롭고 놀라운 일이 펼쳐지게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되,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루살렘에는 화려한 성전이 있었고, 수많은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와 기도, 진정한 성전은 없었습니다. 이들은 분주하여 하나님과 교제할 시간이 없었고, 이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것이 요란하기만 정작 중요한 것은 없은 빈수레와 같다 선포하셨습니다. 잎만 무성할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성전이 아닌 진정한 성전을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나누는 성전, 하나님의 안에 거하는 성전을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는 백성들이 얻게 되는 마음의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은 믿음으로 얻게 되는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분주함과 교만함을 내려놓고,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오라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주님을 바라볼 , 주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거룩한 예배로 받으실 것이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온전한 성전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