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십자가 (2021.10.31.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27:27~44)

 

마태복음 27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리고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박은 후에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예수라 죄패를 붙였더라

38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성도 여러분,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 사랑하실까 하는 생각이 드신적이 있으십니까? 특별히 삶이 뜻대로 되지 않고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 세상의 불의와 악을 때에, 마음속에 의심과 회의, 우울한 마음이 때에 이러한 생각이 드신 적은 없으십니까? 마음 속에 은혜가 느껴지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시들어질 때가 있으십니까? 그때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목하고,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을 있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길이 있습니다. 말씀을 보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주님을 가르쳐주는 생생한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다가 믿음이 회복되고,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경험한 예는 우리 교회의 역사 속에 정말 가득합니다. 말씀 중에서도 특별히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이러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장 절절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진정한 소망과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당할 고난은 다름 아닌 우리 사람 사람을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주님은 순간 우리를 생각하시며 고난을 견뎌 내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주님의 고난이 어떠한 고난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서기관들은 사람을 보내어 우리 주님을 체포하였습니다. 이들은 대제사장의 관정에서 예수님을 재판하였고, 예수님께서 당신이 그리스도라 고백하자 사형을 언도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 형으로 죽이기 위해서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형은 오직 로마 제국의 총독만이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사람들의 기세에 눌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처형하라 넘겨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함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27~31 말씀입니다.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리고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이제 예수님을 넘겨받은 로마 군인들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껏 사람들을 처형해왔던 방식대로 예수님을 처형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채찍질 당하여 피투성이가 예수님을 데리고 와서 조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홍포는 원래 왕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게 넝마 같은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들게 하여 조롱하였습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앞에서 유대인의 왕이시여 평안하십시오라고 인사를 하며 비웃었습니다. 다른 번역으로 보니 유대인의 만세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갈대로 머리를 때렸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조롱이 끝나고 나자 이들은 다시 홍포를 벗기고 예수님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이러한 폭력과 조롱은 어리석고 무도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교만과 악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로마 군인들은 힘이 있었고,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떠한 일인지도 알지 못한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때린 것입니다. 그들은 우주의 창조자요 모든 권세위에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네까짓게 무슨 왕이냐 비아냥거리며 조롱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모욕하고 조롱할 우리도 알지 못한 우리 주님을 조롱하고 모욕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곳에서 당신을 드러 내시지 않으셨습니다. 너희 내가 지금 누군줄 알고 이런일을 하느냐 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능력과 힘으로 복수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순간을 모면하거나 피하실 수도 있으셨는데 그런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으시고, 견디셨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욕하면 욕하는 대로, 침을 뱉으면 침을 뱉는대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일은 모든 일을 저지르던 로마군인과 같은 사람들, 자신의 교만과 무지를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들, 죄악과 어리석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주님의 사랑과 용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계속 보도록 하겠습니다. 32절부터 3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박은 후에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예수라 죄패를 붙였더라

 

이제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처형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당시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들은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 나무를 지고 처형장소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예수님 또한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당시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람은 십자가 형에 처해지기 전에 모진 채찍질을 당하였습니다. 십자가 형은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 놓는 형벌인데, 사람이 너무 쌩쌩하면 나무에 너무 오랜시간 매달려 있게 됩니다. 그래서 너무 고통을 겪게 되니, 조금 빨리 죽을 있도록 채찍질을 해서 피를 많이 흘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채찍질을 당하고 피투성이가 되니 십자가를 힘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로마군인들은 지나가던 사람들을 잡아서 자리에서 일을 시킬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가에 있다가 정말 우연히 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그의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가복음 15장이나 로마서 16장의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는 훗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들의 아들 또한 귀한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피투성이가 되는 순간에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사역을 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억울한 일을 겪곤 합니다. 말그대로 끌려가서 나무를 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 우리 주님께서 억울함을 은총의 자리, 복의 자리로 바꾸어 주십니다. 주님의 억울한 죽음은 그러한 일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 처해진다 하더라도 이제는 이상 낙담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있을 주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구레네 사람 시몬과 같이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은 이제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해 죽음의 장소인 골고다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은 해골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언덕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시기 위해 당신께서 죽음의 자리에 가신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우리 예수님께 쓸개를 포도주를 마시게 하려 하였습니다. 일종의 마취제, 진통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나마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맛보시고는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 당하시는 고통의 길을 모두 감수하시겠다는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완전히 발가 벗긴 뒤에 손과 발의 관절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는 군인들이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 군인들은 속옷마저도 탐욕을 부리며 빼앗아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내어주셨음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어주심은 다름 아닌 우리를 향한 내어주심이었습니다. 주님이 이와 같이 십자가에 매달렸을때 아이러니하게도 십자가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달렸습니다. 말씀은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어주셨다는 것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죽기까지 내어주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말씀  38절부터 44절까지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38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골고다 언덕에 세워지셨습니다. 그런데 때에 예수님의 우편에 각각 강도 둘이 함께 못박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처형된 예수님을 보고 조롱하고 모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님께 말하였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이면 다시 짓는다던 사람아, 목숨이나 구해보거라.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이들은 예수님의 무능력함을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와 같이 비참한 일을 당하시지 않을 것이라 그들은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대제상들과 서기관들, 장로들도 같았습니다. 그들은 성공주의자, 성취주의자들이었고, 권세와 능력,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만이 위대한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들 역시 예수님을 조롱하며 말하였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가보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니 어서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고 해라!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어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하니, 어디 하나님께서 지금 일하시는 살펴보자. 그가 말하기를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던데, 어디 하나님께서 아들 살려주시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들은 비참하게 죽어가는 예수님을 보면서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모든 일을 부정하고 싶었고, 조롱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예수님은 함께 못박혔던 강도들의 저주들까지 들어야만 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듣기 힘든 조롱과 비난을 들으며, 모든 자기 존재와 삶과 사역이 부정당하는 순간을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예전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던 분들이 글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고문을 통해 경험한 가장 고통스럽고 비참한 순간이 언제인지를 나누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은 고문 자체가 주는 신체적 고통과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고문을 통해 결국 자신이 이제껏 해왔던 모든 이들을 스스로 부정하고 그들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고문을 당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영혼이 파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이 견뎌내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이 영혼이 파괴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사역이 부정당하는 경험,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경험, 무엇보다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부정당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조롱과 비난이 순간 합당한 것이 되어버리고, 주님께서 이제껏 해왔던 모든 것들이 거짓인것처럼 보여지는 순간을 주님은 견뎌내어야만 했습니다. 모든 오해와 부정, 나아가 하나님의 침묵마저도 견뎌야만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자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가운데에서 보여주신 분의 하나님됨의 정점에는 다름 아닌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권력을 숭상하고 화려한 부를 찬양합니다. 놀라운 기적와 이적에 감탄하고, 탁월한 지혜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됨이란 이러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에 보여주신 하나님 됨은 다름 아닌 지극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지극히 낮아짐을 기꺼이 감수하는 , 죽기까지 순종하고 모든 것을 내어주는 , 나아가 자신의 모든 존엄과 명예가 짓밟히는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억울함을 참아내시는 , 심지어 하나님의 침묵을 견뎌내시는 , 죽음을 받아들이시는 , 주님은 모든 것을 통해 우리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씀은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십자가가 주님의 사랑을 증언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우연히 가에서 어떤 분이 십자가를 높이 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정점에는 바로 주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에 십자가 달려있고,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주님의 사랑입니다. 지극한 주님의 사랑, 우리의 모든 것을 덮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주님은 이미 답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십자가에 담긴 사랑을 한평생 깊이 깊이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가 십자가를 세상에 증언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 무엇으로도 견줄 없는 참된 기쁨과 감사와 평강을 누리는 감격을 누리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