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님의 죽음 (2021.11.07.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27:45~56)

 

마태복음 27

45   제육시로부터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중의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한국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더라도 정돈하고 다듬어서 사용할 있도록 해야 보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그렇습니다. 말씀이 아무리 우리 앞에 있고, 말씀을 매번 우리가 듣는다 하더라도, 말씀을 우리 마음 가운데 깊이 심어야만 합니다. 주님께서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씀을 그저 흘려듣고 넘어간다면, 말씀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말씀은 우리에게 무용지물이 되고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읍시다. 하나님, 말씀이 안에 심기어지고, 깊이 뿌리내려지고, 아름드리 나무처럼 크게 자라날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성령님께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선포였습니다. 그렇기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헤아릴 없는 보물과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장에서 십자가가 구원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지혜가 되고 능력이 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지극한 사랑을 아는 지혜를 얻고,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갈 수록 용서의 은혜로 사는 능력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을 그저 흘려보내서는 안됩니다. 보배로운 구슬과 같은 말씀을 꿰어서 우리의 목에 걸고, 우리의 손에 매어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먼저 45~49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교독하여 봉독하겠습니다.

 

45   제육시로부터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중의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마가복음 15 25절에 따르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유대 시간으로 세시에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것을 오늘날 시간으로 바꾸면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3시간이 지났습니다. 유대 시간으로 열두시가 것입니다. 그때부터 아무 짙은 구름이 하늘을 덮기 시작하였습니다. 거의 깜깜한 밤과 같이 어두워졌습니다. 이렇게 어두어진 하늘은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것을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시편 22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고백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받으신 고난은 여러가지 차원의 고난이었습니다.

 

첫째로는 육체적 고난이었습니다. 주님 십자가 위에서 살이 찢기고, 숨을 짓누르는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지극히 고통을 받으며 십자가에서 처절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둘째로는 수치와 모욕의 고난이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만 했습니다. 로마 제국에 저항한 역도라는 오명을 함께 뒤집어 써야만 했습니다. 이제까지의 주님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만한 일이었다는 조롱과 비난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사회 질서와 공동체의 번영에 있어서 절대로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고 쫓겨나간 사람이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게 주님은 철저히 외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새번째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고난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사랑의 관계 안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고백하며 무엇보다 친밀한 관계로 있으셨습니다. 히브리서 4 15절을 보면 우리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 고백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다름아닌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진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고 말씀은 죄의 삯이 사망이라 선포합니다. 마치 줄기에서 꺾여 져나간 꽃이 시들 ,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피조물의 운명이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신 ,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이 치루어야 죽음의 삯을 예수님께 지우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가장 견디기 힘드셨던 것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이와 같이 절규하신 것이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미 마음이 무뎌질대로 무뎌져서 하나님과의 단절된 상태의 고통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의 상태를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것이 자유라 생각하고, 그것이 편안함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불나방들이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죽음의 , 절망의 길로 걸어가면서 길이 복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것으로 인해 고통 당하신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탄식소리를 듣고서는 엉뚱한 말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목마르고 아프다는 표현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폰지 같은 해면을 가져다가 신포도주를 적셔서 예수님의 입에 대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것 마저도 말리며 어디 엘리야가 도와주는지 살펴보자고 조롱하였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50절에서 56 말씀입니다.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탄식과 같은 말씀을 하시고, 다시 크게 소리를 지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때에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고난을 당하셔야만 했는지, 이유가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먼저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사진) 성전 안에는 성소가 있었습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재자인 대제사장만 들어갈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역시 속죄제사를 통해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함받은 후에만 곳에 들어갈 있었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단절을 뜻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막을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찢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우리 예수님의 보혈에 힘입어 거룩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있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못하나, 주님의 보혈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였고, 우리는 죄인이나 주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주셧습니다.

 

더불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엇보다 무덤이 열렸습니다. 이미 주님을 알다가 죽은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갔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났음을 보였습니다.

 

역시 주님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죽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의 단절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 당신께서 대신 관계의 단절과 죽음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죽으셨을 많은 이들이 다시 살아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기적은 일종의 프리뷰, 일종의 샘플과 같은 기적이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의 용서와 구원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모든 이들은 이제 생명을 얻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다시 살아날 때엔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게 것이며, 다시는 애통이나 질병이나 이별이나 죽음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에서 살게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이 우리 모두의 생명을 위한 죽음이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에, 이제껏 예수님을 조롱하던 사람들, 예수님을 핍박하고 박해하던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세상 권세와 세상의 능력이 얼마나 비루한가, 얼마나 연약한 가를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처형을 책임지던 백부장은 고백하였습니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백은 인류의 마지막 고백이 것입니다. 가운데 살아가던 사람은 심판의 자리에서 두려움 속에 고백을 하게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구원의 기쁨으로 고백을 하게 것입니다.

 

모든 죽음의 순간을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였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죽음을 지켜보며 끝까지 죽음의 의미를 바라보았습니다. 결국 이들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온전히 바라보는 이가 부활의 증언자가 되고, 부활의 선포 안에서 십자가의 의미가 드러나게 됨을 말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모든 인간을 대표한 죽음이었습니다. 인간의 고통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인간의 고독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인간의 죄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우리 예수님은 이제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육체적 고통, 삶의 고단함에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때에 맞는 먹을 것을 주시고, 때에 맞는 치료를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어려움에 공감하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지십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에 비극이 닥치고, 어려움이 닥칠 때에도 주님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십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우리의 친구, 우리의 주님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견뎌 내셨습니다. 끝없는 겸손과 사랑으로 사람들을 감싸주시고 용서하여 주시고 품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길을 걸어가셔서 참된 승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도 이러한 사랑과 용서를 허락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가장 깊은 마음을 이해하여 주시고,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품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옳은 , 바른 길로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주님과 함께하심을 바라보고 사랑과 정의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갈 있도록  우리 주님은 붙드십니다.

 

끝으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이 되어 주십니다. 주님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단절을 오롯이 몸으로, 생명으로 받으신 죽음이었습니다. 고통, 탄식으로 우리의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버림을 대신 받음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온전히 얻게 되었고, 이제 영생 소망을 바라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게 되었고, 부활을 약속받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주님의 십자가를 곱씹고, 십자가를 모든 속에서 되새기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날마다 꿰어서 우리의 참된 보배로 삼기를 소망합니다. (한달패스) 모든 순간에 하나님과 동행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삶이 주님의 은혜로 가득하길, 그리고 영원한 소망의 날을 맞이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