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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하나님 (2021.11.21.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28:1~10)

 

마태복음 28

1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위에 앉았는데

3   형상이 번개 같고 옷은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여자들이 무서움과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사람들이 영화나 소설, 드라마, 심지어 스포츠를 때에도 좋아하는 형식이 있습니다. 바로 반전입니다.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좋아하던 이야기들을 보면 이러한 반전이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어머니를 잃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던 신데렐라는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공주가 되었습니다. 떠나버린 사랑을 끝까지 기다리며 정조를 지켰던 춘향이는 죽기 직전 이몽룡의 암행어사 출두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습니다. 2002년에 저는 스물 살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 축구는 한번도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한 적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월드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해 월드컵은 인생 전체를 통틀어 잊을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반전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깊은 비극과 절망의 순간이 단번에 뒤집어지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반전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감격합니다. 사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녹녹치 않고, 그만큼 우리에겐 희망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반전 관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반전 선물로 주시는 우리 하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반전을 좋아하는 것만큼, 오히려 그보다 반전을 좋아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반전으로 가득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히브리 백성이라 불렸습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하비루라는 단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도시 주변과 밖에 사는 부랑자들,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정착하지 못하고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가장 연약하고 천했던 민족을 세워 하나님의 제사장 민족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삶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나그네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고향에 두고 새로운 땅으로 떠나야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자식을 갖지 못해 대를 이을 아이 하나가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고, 모든 믿는 이들의 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삭은 이민자로서 원래 정착해 살았던 사람들의 텃세를 고스란히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는 생명과 같았던 우물을 팔때마다 우물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우물을 허락하셨고, 결국 승리자로 세우셨습니다. 야곱은 형에게 쫓겨 도망가 무려 20년을 피해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간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는 시간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만드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노예가 되었고,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에 빠져 기약이 없는 죄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번에 총리가 되었고 모든 이들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모세는 노예의 아이로 태어나 강물에 던져진 아이었습니다. 그는 젊은날 민족을 위해 일하려다가 살인범이 되고 80세가 이르도록 광야에 숨어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세우셔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건지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밖에도 성경에는 이와 같은 반전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절망과 어둠 가운데에서 마침내 희망을 선포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때에 모든 것을 뒤집으십니다. 그리고 죽음과 패배가 짙어갈 때에 거꾸로 하나님의 생명과 승리를 선포하십니다. 말씀은 이러한 하나님을 끊임없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아는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깊이 알았던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머리에 부으셨으니 잔이 넘치나이다

6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저는 이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절망의 침묵의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때에도 우리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를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나의 소망이요 나의 빛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한평생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에 이러한 놀라운 고백을 하게 것입니다.

 

그리고 반전을 누구보다 아셨던 우리 예수님께서는 반전을 마태복음 5장의 팔복 말씀을 통해 선포해주셨습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우리가 절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마음이 가나할 , 애통할 , 의에 주리고 목마를 , 박해와 고난 가운데 있을 , 삶이 깜깜할 ,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반전을 허락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상황과 형편을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해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하나님의 반전의 정점에 바로 오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반전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약속과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말씀을 통해 우리 예수님의 장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사랑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에게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성을 다해 예수님을 염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돌무덤에 장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끝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죽음은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근본적인 절망입니다. 이상 반전을 기대할 없는 절망입니다. 죽었는데 이제 무슨 소용이 있나요라고 말할 밖에 없는 절망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관계도, 지금까지의 모든 꿈과 소망도, 지금까지의 모든 열정과 에너지도 멈추게 합니다.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 이제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피조물이구나, 내가 한계가 있는 존재이구나, 내가 없는 것이 있구나를 깊이 깨닫는 자리가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헤아릴 없는 슬픔을 경험하고, 감당할 없는 절망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죽음이 너무 절망적인 사건이기에, 우리는 어쩔 없이 죽음이 아닌 삶에 집중하게 됩니다. 죽음은 어찌할 없으니 살기라도 하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저 돈과 권력과 세상의 명예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조금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 하루를 사는 , 지금 앞에 있는 이와 소중한 시간을 누리는 , 나아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남기는 것에 마음을 씁니다. 사실 이것이 죽음 앞에선 우리가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주는 절망은 어찌할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합니다. 아리마대 요섭과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가 이러한 심정이었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 그토록 귀했던 사람 예수님이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서 허망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그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자식이 눈앞에서 사람이 겪을 있는 가장 고통과 수치를 겪으며 죽고 있는데 그저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마주할 있는 죽음의 고통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마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이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끝까지 죽음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죽음을 막을 없었어도 죽음과 함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있는 최선의 애도를 다하였습니다. 용기를 내어 빌라도를 찾아갔고, 주님의 찢겨지고 상한 죽은 몸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몸을 닦아 내었고, 무덤에 예수님을 안장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슬픔을 피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죽음 앞에서, 가장 절망 앞에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리에서 심령이 가난한 , 애통하는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것입니다. 그들은 자리에 하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 인류역사의 최고의 반전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그리고 반전이 오늘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의 믿음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봉독하겠습니다.

 

1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위에 앉았는데

3   형상이 번개 같고 옷은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여자들이 무서움과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다음날인 일요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우리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지진이 나서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굴러가 버렸고, 위에는 주님의 천사가 앉아 있었습니다. 천사의 형상은 번개같고, 옷은 눈처럼 새하얀 색이었습니다. 빌라도의 명령을 받아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무서워 바들바들 떨며 죽은 사람처럼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때에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찾는 알고 있다. 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다. 분께서 이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살아나셨다. 이리 와서 분이 누워 계시던 곳을 보아라. 이제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라.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제자들은 거기서 예수님을 뵙게 것이라고 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말이다.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한 것입니다.

 

여인들은 소식을 듣고서도 소식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건은 사람의 지혜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이 한편으로는 두려움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쁨으로 가득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이 느끼는 놀라운 감정입니다. 여인들은 놀랍고도 충격적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부리나케 달렸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인들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평안하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원어를 보면 카이레테라고 나와있는데, 이것은 기쁘냐 라는 뜻이었습니다. 여인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예수님이 눈앞에 다시 살아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인들은 자리에서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절을 하였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이제 가서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해다오. 거기에서 나를 만나게 것이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전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 죽음 지독한 절망을 뒤집은 부활 되셨습니다. 주님이 만나는 자체가 죽음을 이겨낸 증표가 되고, 주님을 만나는 자체가 생명과 영광의 약속이 되었습니다.

 

이제껏 성경의 많은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반전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작은 이들을 들어 쓰셔서 세상의 제국들을 무너뜨리시고, 연약한 이들의 믿음으로 세상의 거대한 자들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애통함과 절망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회복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사람의 인생을 살피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절망이 있었습니다.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땅에 보내 주셔서 직접 죽음을 뚫고 부활 생명을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든 백성들에게 반전을 반드시 주시겠다는 확정된 약속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의 사건은 비단 여인들만을 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 모두를 위한 사건이 되었고 나아가 주님의 부활을 믿는 모든 백성들을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깊은 절망과 애통함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할 , 우리는 우리의 반전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뒤집어 주실 아니라, 우리의 죽음까지도 뒤집어 주시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부활을 바라보는 사람은 삶의 자리에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열매를 맺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죽음 마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며, 죽음을 너머 부활 생명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끊어지고 모든 것이 멈춘 십자가 사건 마저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의 사건이 되었음을 바라보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제 부활의 소망 위에 세워진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부활을 기념하며 매주 주일, 부활의 날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부활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들, 하나님의 반전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은 승리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거두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죽음이 어쩔 없는 것을 알기에 그저 오늘 하루에 충실하게 살아가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넘어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모든 순간에 기뻐하며, 모든 순간에 감사하며 그렇게 선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서서 다시 주님의 부활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섭시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바라보는 , 그러한 삶은 반드시 주님께서 완성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