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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3-23 (2017.01.05. 아침묵상)

category 묵상/마태복음 2017. 1. 5. 16:13

오늘 말씀을 읽으며 비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오늘날 현실이 오마주처럼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생긴 후로부터는 어린이들이 고통을 받고 심지어 죽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마음을 가누기가 참 힘듭니다. 몇 년전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을 봤을 때에도, 어제 ‘무함마드 소하옛’의 사진을 보았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세월호’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이들의 가족을 위해,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말씀>

마태복음 2장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나눔>

1.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 이 땅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하늘에는 영광스러운 일이요, 땅에는 평화를 선포하는 일이었습니다.


2. 그러나 세상의 권세는 예수님의 오심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세상 권력은 하나님께 자신의 권력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을 판단하는 열매를 먹은 아담의 후예들은 모든 삶의 주권을 자기에게 두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살아가는데 익숙했습니다.


3. 헤롯은 이러한 세상 권력을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4. 자신의 우상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내가 무엇에 분노하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이 없으면 불안해하는가? 무엇에 집착하는가? 무엇에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느끼는가?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등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표현들이 우리의 마음속의 주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5. 그는 권력을 우상으로 삼고, 권력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그의 권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분노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의 아기들을 모두 학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 우상의 노예가 된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 것입니다.


6. 베들레헴은 절망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죄악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눈물과 애통이 온 도시를 덮었습니다. 가장 연약한 자들, 가장 힘이 없는 자들이 우상숭배적 권력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7. 예수님 역시 태어나자마자 난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이 죽고 나서야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두려움 때문에 태어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 지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8. 이러한 베들레헴의 절망은, 그러나 곧 예수님의 절망으로 이어집니다. 우상숭배적 권력은 30여 년 뒤에 예수님을 죽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가장 치욕적인 방식, 가장 강하게 짓밟는 방식인 십자가로 죽여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비참한 길을 걸어가심으로 모든 이들의 절망과 슬픔, 탄식에 동참하셨습니다. 


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지 고난에 함께 참여하시기 위해서만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베들레헴의 절망을 닦아주시고, 베들레헴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가장 비참하게 죽은 예수님은 영광으로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들은 폭력과 악으로 예수님을 죽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희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시고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10. 예수님의 승리는 모든 사람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가장 연약한 이들의 죽음까지도 부활의 길로 승리할 것이요, 가장 강력해 보이는 우상숭배적 길은 결국은 실패할 것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길이 승리의 길임을 부활로써 온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11. 오늘날 수많은 아이들이 세상 곳곳, 곧 시리아에서, 미얀마에서, 북한 등지에서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을 감추고, 탐욕과 권력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일으킨 전쟁과 폭력, 학살과 억압은 가장 작은 아이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우상숭배문화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역시 우상숭배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우리가 깊이 묵상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이들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고, 이들을 돌보며, 우상숭배적 문화를 거부하고,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 승리과 생명을 선포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