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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랑 – 프롤로그 (2017.02.05. 대학부 집회 설교)


시편 13편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요즘 뉴스를 보면 대선 후보들의 이야기가 가득 채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각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러한 정치인들의 좋은 경쟁을 통해 조금 더 나은 사회로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1956년도에도 이렇게 뜨거운 대선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지금처럼 방송이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벽보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특히 벽보에 붙은 구호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당시 구호가 재미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당시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었습니다. 반대편 후보는 조봉암, 신익희 후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 신익희 후보가 내세운 구호가 아주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당시 어려운 형편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파고든 구호였습니다. 아주 큰 호응이 있자, 그 반대편이었던 이승만 대통령 측에서는 그에 대응하는 구호를 만들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갈아봤자, 더못산다’ 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거중에 신익희 후보가 돌아가셔서 이승만 후보가 당선이 됩니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구호들은 당시에 팽팽했던 상황을 보여줍니다.


갑자기 왜 이러한 구호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눈치채셨겠지만 사실은 수련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수련회를 앞두고 우리 가운데엔 이 두가지 구호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못살겠다 만나보자’, ‘만나봤자 별거없다’는 두가지 구호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수련회를 기대하면서 아, 정말 우리의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삶이 변하고, 인생이 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게 중요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게 중요해, 수련회 가운데 이러한 놀라운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 하는 마음이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수련회 몇 번 가봤잖아 가보니 별거 없더라. 집회할 때 뿐이더라. 사실 나에겐 당장 급한게 있어. 학원도 가야하고, 알바도 해야하고, 모임들도 있고, 이번 수련회는 잠깐 쉬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수련회를 가느냐, 가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수련회를 앞두고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부분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우리가 따르고 있는 본질이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이것은 일평생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규정하고, 나는 어떤 것으로 삶의 만족을 얻는가를 결정하고,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하는 삶의 방식을 결정합니다. 


저는 수련회를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수련회를 가는 것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내 삶의 중심으로 두는가에 대한 가치관을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사례를 들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껏 수십번의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수련회 마스터라고 할 수 있지요.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캠프를 시작으로,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수련회를 다녀왔고, 국내 유수의 교회와 기도원에서 하는 수련회와 기도회를 다녀왔습니다. 심지어 대학때는 대학교회에서 하는 수련회와 신학대학원에서 하는 사경회까지 다녀왔습니다. 수련회를 다니다보면, 어떤 수련회는 정말 뜨겁게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한적도 있고, 어떤 수련회는 맹숭맹숭 시간만 보내다 온 수련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수련회는 좋아하는 자매가 생겨서 그 자매만 바라보다 온 수련회도 있었습니다. 정말 깊이 기도했던 수련회도 있었고,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려고 해도 답답하기만 했던 수련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어느 수련회든 하나님이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경험했을 때에도, 하나님과 멀리 있는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늘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계절에 따라 뜨겁게 성장해야할 때가 있고, 차갑게 단단해져야 할 때가 있듯이 각각 내 상황에 따라 나를 다른 방식으로 만나주신 것이구나. 나는 늘 부족했지만, 하나님은 늘 나를 이끌어주셨구나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셨구나하는 고백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분인지 알기전에,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기 알기전에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던지는 실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믿음이요, 신뢰입니다. 아브라함이 알지 못하는 땅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로 내어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상상하지 못했고, 기대하지 못했고, 꿈꾸지 못했던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수련회를 가는 것이 그러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3박 4일간 경험할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3박 4일동안 정말 뜨겁게 하나님의 사랑을 주실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련회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습니다. 설령 이번 수련회 동안 제가 기대했던 것만큼 큰 은혜가 안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시간을 낭비했구나 하는 시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기에 나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들이 그러한 시간이라면 저는 그 시간을 감사히 받을 것입니다. 나의 감정과 느낌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을 배우는 시간 저는 그것이 수련회를 가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신뢰가 우리안에 있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새롭게 해석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 예수의 핏값으로 산 사람’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물건처럼 취급합니다.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물건으로 보는 것이지요. 더 예쁜 것, 더 유용가치가 있는 것, 더 비싼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존재가 이러한 것들에 규정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에 여러분이 규정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그 무엇으로도 라벨 붙을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자녀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깨달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뢰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게 됩니다.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는 삶,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으로 허세를 부리고 교만하지 않게 됩니다. 건강한 자존감에서 비롯된 겸손함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게 됩니다. 더불어 헛된 것으로 쾌락을 찾지 않기에 검소한 삶을 살게됩니다. 나아가 참으로 가치있는 것을 찾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순간의 이익과 두려움 때문에 불의를 선택하지 않게 됩니다. 정직하게 옳은 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수련회 한번이 내 인생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지일관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는 태도’는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꾸준한 애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가르쳐주시며, 하나님을 알고 만나게 하십니다. 콩나물에 물이 부으면 자라듯,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순간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두고 씨름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이 우리의 깊은 토대가 되도록 다시금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굳건히 신뢰하는 이가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가장 극심히 어려울 때에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5절에 보면, 원수들이 온전히 둘러싸고 있을때에 다윗은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고 주의 구원을 기뻐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고백합니다. 어떠한 원수도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임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어떠한 두려움, 어떠한 불안, 어떠한 탐욕, 어떠한 죄, 어떠한 야망, 어떠한 판단, 어떠한 정죄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도록 굳건히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소망합니다. 수련회를 결정하며 이 신뢰의 길을 찾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