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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으로 사는 방법 (2020.04.24. 금요기도회 설교)

에베소서 4장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우리는 지지난주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께 선물을 받은 이들이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 선물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마을에 좋은 우물이 하나 있으면, 사람들이 그 우물을 가지고 밥도 하고, 음료수도 만들고, 약도 만들고, 목욕도 하고, 청소도 하며 여러 용도로 사랑합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통해 주님의 사랑도 경험하고, 위로도 경험하고, 용서도 경험하고, 용기도 경험하고, 주님의 놀라운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영원한 은혜의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과 성품과 능력과 결합하여 소명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 누구이든지간에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모양에 맞추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전하는 통로가 되게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지체가 되게하셔서 하나님의 귀한 사명자가 됩니다. 사도도, 예언자로, 목사로, 교사로, 또 어머니, 아버지로, 사장으로, 자녀로, 직원으로, 학생으로 모든 자리에서 주님을 드러내는 빛과 소금이 됩니다. 십자가 은혜는 우리의 내면을 치유할 뿐 아니라, 우리 삶의 목적을 비추어 줍니다.

우리는 지난주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이제 이방인과 같이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처럼 살아왔던 삶을 청산하고,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삶이 자기 욕심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마음과 생각이 온전히 새롭게 되어 정의롭고 거룩한 삶, 곧 진리의 삶을 살아갑니다. 자기의 죄된 욕망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으로 생명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이처럼 정의롭고 거룩한 진리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심령이 새롭게 되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지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이러한 사람은 첫째로 진실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합니다. 다같이 25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우리가 누군가를 대할 때 그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진실됨입니다. 진실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실함이란 솔직함을 넘어서 것입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진지하게 존중하며 마음을 다해 대하는 것이 진실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대하는 것, 이 사람을 이용하기 위해서 만나지 않는 것, 이 사람에 대해서 계산하거나 게임하려고 들지 않는 것, 앞과 뒤를 다르게 대하지 않는 것,(뒷마음을 품지 않는 것) 이 사람을 존귀하게 대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진실한 교제, 참된 것을 말하는 교제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이러한 교제를 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애쓰고 수고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다칠 수 있는 위험에 우리 자신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시도를 몇 번 하다가 실패하면 우리는 마음의 문을 닫고, 경계를 하며, 속마음을 보여주기보단 형식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진실되게 만나기보단, 필요에 의해 만나는 관계가 됩니다. 사회생활은 사실 이러한 관계가 대부분이지만, 이러한 관계에 익숙해지다 보면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는 가족관계, 교회 내의 성도들과의 관계, 목회자와 성도들과의 관계까지도 이러한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를 우리에게 아무런 감동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러한 관계로 둘러싸이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황폐해지고 맙니다. 무엇보다 진실된 마음이 없는 관계에서는 사랑이 피어날 수 없습니다. 

말씀은 십자가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은 진실된 관계에 자기를 내어드리는 사람이라 가르칩니다. 자기 자신이 상처받을 수 있어도, 기꺼이 마음을 열고 상대에게 다가가는 사람이라 가르칩니다. 상처받을 각오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상처받을 각오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이 고난의 길, 아픔의 길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열매를 맺는 놀라운 삶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순간에 흔들리기 보다는 큰 그림을 안에서 다른 사람을 대합니다. 다같이 26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이 말씀을 봤을 때 얼마 전 인터넷에서 봤던 유명한 글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최종훈 교수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마라. 저는 이 글을 보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 정말 진리다.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고민이 들었을 때, 이 교수님이 선택을 하는 원칙은 길게 보는 것 이었습니다. 이 선택을 했을때에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가 돌아올지를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그 순간의 원칙이었습니다. 가기 싫은 마음, 사고 싶은 마음, 말하고 싶은 마음, 주기 싫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 모두 욕망인데 그 욕망을 긴 관점에서 넘어서는 것, 그것이 교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지혜입니다. 

저는 이 지혜가 오늘 말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분이 날때가 있습니다. 상대의 부족한 생각, 잘못된 행동,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 내 것을 손해보게 된 상황, 모욕적인 태도, 우리의 마음을 화나게 하고 우리의 생각을 뒤흔드는 일이 우리의 삶에는 늘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마음에 이러한 분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은 그 분을 붙잡고 있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분이 일어나도 죄를 짓지는 말아라. 분이 일어나도 해가 질때까지 그 분을 품고 있지 말아라. 분이 일어나는 그 순간 네 분을 터트리게 되면, 오랜 시간 만들어온 너의 소중한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 분이 일어났다고 그것을 오래 네 마음에 두면, 네 마음과 네 관계를 망가뜨릴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 마귀가 네 관계와 네 삶을 무너뜨리기 위해 늘 틈을 보고 기다리고 있으니, 더 크게 보고 지혜롭게 선택을 하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랜 시간을 걸쳐서 만들어주신 것들을 순간의 선택으로 무너뜨리지 않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살인이야기인 가인과 아벨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아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아주시지 않았을 때 가인은 크게 분을 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곧바로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했고,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한평생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죄를 다스리라 말씀하십니다. 죄를 잘 다스릴 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은혜의 삶을 잘 지켜내고 평안한 삶을 살 것입니다.

세 번째로 십자가의 은혜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삽니다. 28절 말씀을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3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모든 삶의 관심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만 쏠려 있는 삶, 그것이 이방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과도해져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이방인의 삶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삶의 주인이자 하나님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방인의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이방인의 삶을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코 앞에서 우리의 목숨 줄을 들고 흔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문제에 온통 빠져있는 우리에게 오늘도 큰 소리로 외치고 계십니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큰 이가 너희 앞에 있다. 너희의 생명보다 더 큰 이가 너희 앞에 있다. 네 인생을 책임져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나다 이렇게 선포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돌리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 선포합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도둑질 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부당한 이익 앞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부정과 불의를 통한 이익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겪게 되는 손해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의 손으로 수고하고 애써 벌어들인 재물을 기꺼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나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이름을 전하는 데 나눌 수 있습니다. 생명은 시간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을 사용하여 수고하여 수입을 얻습니다. 그 수입을 나누어주는 것은 우리의 시간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믿음을 고백하는 가장 실제적이고도 귀한 방법입니다. 

신명기 24장은 우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 말씀 속에 생명을 귀히 여기시고, 사랑을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저당을 잡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생존에 꼭 필요한 맷돌이나 겉옷은 가져오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가난한 사람의 하루 품삯은 꼭 주라는 것을 명령합니다.(주안건축) 외국 사람과 과부, 고아의 재판은 공정하게 할 것을 명령합니다. 곡식을 거둘때에 한 묶음, 올리브 나무 열매를 딸 때에 한 가지, 포도를 거두고난 뒤에 남은 것들을 가져오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눌 것을 요청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나눌 때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날 것입니다.

네 번째로 십자가 사랑에 거하는 사람은 선한 말로 은혜를 끼칩니다. 다같이 29절을 봉독하겠습니다.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은 곧 생각입니다. 노트를 펴놓고 아무 단어나 쓰고 그 단어와 연관되어 생각나는 단어를 빠르게 쭈욱 적어봅시다. 그렇게 한참을 써놓고, 살펴보면 내가 요즘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지가 다 나와 있습니다. 생각과 말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로 생각을 하고, 생각은 말로 표현이 됩니다. 그래서 어떠한 말을 하느냐는 단지 그 말을 넘어서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말하는 스타일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생각의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말이 습관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각도 습관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말, 안 좋은 말, 비난하는 말, 비하하는 말이 우리 입에 가득하면, 우리의 생각도 부정적인 생각, 안 좋은 생각, 비난하는 생각, 비하하는 생각으로 가득찹니다. 습관적으로 하는 안 좋은 말이, 습관적으로 안 좋은 생각을 같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싶다고 한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의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아예 좋지 않은 말은 입밖으로 내지를 말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말들을 모두 막아낸다면, 우리의 생각, 나아가 우리 자신이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바꾸어져 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의 말을 바꾸어 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우리가 해야할 말은 덕을 세우는 말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말일까요? 십자가 은혜를 나누는 말입니다. 십자가 은혜가 우리 가운에 올 때에 때로는 사랑이 되고, 때로는 용서가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용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십자가를 두고 살아갈 때 우리의 입술은 십자가가 해석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때에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낮추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오직 십자가에 매여 십자가의 은혜를 나누는 말을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십자가의 방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자랑하고,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겸손함과 온유함과 사랑으로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말해야할 때를 알고, 성령님께 의지하고 말하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할 때 우리의 내면 또한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이제 이방인과 같이 살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임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길을 걸어가는 네가지를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 명령은 특별히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우리 자신을 세우고, 우리 공동체를 세울까를 가르쳐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첫째는 진실되게 신실하게 온전하게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둘째는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를 기억하고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며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넷째는 십자가 은혜 가운데 덕을 세우는 말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아갈 때 우리는 이방인의 방식이 아닌 주님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열매 맺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