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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따라! (2020.05.08. 금요기도회 설교)

 

에베소서 5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지난주에 우리는 성령님의 확증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함께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고, 또 성령 안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1~2)은 이처럼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굳게 붙들었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라 선포합니다. 또한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랑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이 되셨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이라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본받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한국 달력으로 어버이날입니다. 제 아이들도 저에게 선물을 준다고 종이로 작은 꽃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면 당연하겠지만, 정말로 사랑스럽습니다. 엊그제는 함께 목욕탕에 앉아 목욕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참 귀한 선물이다 하는 고백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자녀들을 보면서 부모의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부모의 사랑 또한 한계가 있습니다. 한없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늘 우리의 사랑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 부모의 사랑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 부모의 사랑을 무한대로 확장한다면, 그 깊이를 무한히 확장하고, 너비를 무한히 확장하고, 길이를 무한히 확장하고, 높이를 무한히 확장한다면, 그 사랑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사랑일 것입니다.

 

찬송 가사에도 나오듯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가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이미 주님은 그분의 영원하시고 충만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선포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한평생, 어쩌면 영원히 알아가야 할 우리의 여정일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 길 가운데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달아 가면 갈수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분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제 하나님 닮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온전히 아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어떤 속성, 전지, 전능하신 능력이나 영원히 존재하시는 능력 같은 것은 우리가 결코 똑같아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처럼 될 수 있습니다. 이사야 14장에서는 스스로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장담하던 바벨론은 결국 죽음의 구덩이 맨 밑으로 떨어질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처럼 우리 스스로를 높이는 것, 우리가 얻고 싶은 것을 다 갖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잘못된 신앙을 가진 분들이 신앙을 스스로를 높이는 데 사용하곤 합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교만해지고 독선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가 하나님이 된 것처럼 행동하곤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권력과 자본과 명예를 얻어가는 것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닮음은 이러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닮는 다는 것, 하나님을 본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처음 창조하셨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신 그 모습 그대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며 사는 존재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닮기를 원하시는 모습은 그분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회복하길 원하셨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 각자 자기 길로 가던 사람들을 사랑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이러한 하나님의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백성을 세우시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사랑의 가르침을 선포하셨습니다. 다윗 왕과 이스라엘 왕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모델을 보여주셨으며,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떠난 이들을 돌이키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사랑하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녀삼아주시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그 분과 사랑을 나누며 영원한 교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완성하시기 위해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사랑을 나누시기 위해 끊임없이 사랑을 주시며, 이 사랑하는 나를 닮아라 말씀하시는 데, 우리가 그 사랑에 관심이 없고 엉뚱한 것에만 마음을 쓴다면 하나님께서는 실로 답답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2절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분명히 드러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음과 부활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 말씀의 전체 구조는 아주 간단히 보면 이러합니다. 말씀의 모든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야구방망이와 히트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 이야기의 정점에는 그분의 자기 희생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그것도 하나님을 떠나 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정확히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요, 곧 하나님의 사랑이다 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면, 그리고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면, 이 놀라운 사랑을 따르는 것이다 라고 말씀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결국 사랑을 행하는 것으로 향합니다.

 

3절에서 5절 말씀은 사랑의 행함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미 마태복음 5장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살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주일에 나누었던 예수님의 말씀과도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다같이 3절에서 5절 말씀을 봉독 하겠습니다..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3절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음행 곧 불법적인 성행위, 더러운 것 곧 비도덕적인 성행위, 그리고 탐욕 곧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은 그 이름을 부르지도 말라고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말씀이 이 세 가지 죄악의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고 한 것은, 이 세 가지가 가장 사랑과 비슷해 보이지만 정작 사랑을 가장 크게 왜곡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추구할 때 얻는 즐거움과 기쁨이 너무나 크기에 이것이 마치 옳은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적인 은밀함은 하나님의 은밀함과 비슷하고, 부가 주는 힘은 하나님의 힘과 비슷합니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추구할 때 얻는 기쁨과 쾌감이 마치 사랑할 때의 기쁨을 얻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13절에서 음행은 우리 몸에 짓는 죄라고 말씀합니다. 상호 관계에 있어 가장 소중하면서 신비로운 성을 욕망의 수단으로만 사용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은 결국 욕망으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결국 내 안에 있는 사랑도, 그리고 사랑의 관계도 모두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나아가 외도로 인한 관계의 파괴는 불과 같아서 우리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24절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610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가질 수 있는 힘입니다.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랑하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돈을 향한 욕망은 이렇게 사랑을 소유로 바꾸어 버립니다.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지 않고, 콜라를 마시면 순간은 더 상쾌하고 시원해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음료는 결국 우리를 더 목마르게 하고, 우리를 더욱 해칩니다. 마치 성적인 욕망과 부에 대한 탐욕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대치하지 않도록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4절 말씀은 우리에게 일상적인 말을 경계할 것을 말씀합니다. 누추함, 곧 저속하고 음란한 말, 어리석은 말, 그리고 희롱하는 말 곧 외설적인 농담을 하지 말 것을 선포합니다. 말씀은 음란과 더러운 것들과 탐욕이 이러한 말들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말들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고귀한 마음이 조금씩 무너지고, 이웃을 향한 온전하고 신실한 사랑이 조금씩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우리의 삶을 굳게 붙들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이러한 말 대신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감사는 사랑의 시작점입니다. 앞서 말한 죄악들은 사랑을 비틀고 왜곡하고 무너지게 하는 반면, 감사의 마음을 우리에게 사랑을 시작하는 뿌리가 됩니다. 앞서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 한가운데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처럼 사랑하셨구나에 대한 감사가 하나님 닮기 원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나를 위해 죽으셨구나 하는 감사가 우리로 하여금 이웃을 사랑하게 합니다. 내가 늘 받은 자요, 사랑에 빚진 자라는 감사가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감사의 힘은 우리에게 기쁨을 허락하여 자발적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발적으로 할 때 비로소 열매를 맺습니다. 감사는 그러한 사랑의 시작점이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계속 입에 감사의 열매를 둠으로 사랑을 시작할 것을 선포합니다.

 

끝으로 5절 말씀은 우리에게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음행 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는 곧 우상숭배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기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자기 욕망을 하나님처럼 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의 유산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매주 선포하는 말씀을 다시 새롭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붙드십시다. 성령님께 간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고, 이토록 굳게 붙들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용서를 굳게 붙드십시다. 성령님께 간구하여 성령님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의 은혜를 알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놀라운 은혜가 우리 가운데 온전히 임하여, 우리가 진실로 감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기도하시겠습니다.

 

또한 우리 삶 가운데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의 마음이 있다면, 그 이름조차 우리 삶에 붙어있지 못하도록 제거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오직 우리 마음에 1번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달라고 기도합시다. 더불어 오늘 말씀처럼 누추한 말, 어리석은 말, 희롱하는 말이 우리 입술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거룩하고 정결한 말씀만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마치 왕이 그에 합당하게 가장 좋은 옷을 입는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가장 고결하고 아름답고 귀한 말을 쓰고,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를 닮는 것처럼 하나님을 닮아가고,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