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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2020.04.03. 금요기도회 설교)

에베소서 4장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올해를 시작하며 에베소서를 시작하였는데, 벌써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그 시간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닥쳤고, 상황과 여건이 참 어려웠지만, 에베소서의 말씀이 저에게, 또 우리 교회에게 큰 위로의 말씀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에베소서는 근본적으로 복음 안에 거하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말씀이었습니다. 특별히 1~3장 말씀은 더욱 그러한 말씀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1~3장을 통해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은 구원의 아름다운 영광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이 충만한 은혜를 누리기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죽음’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제가 믿는 신앙의 근본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그 돌아봄에 있어 에베소서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 4장부터는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태초부터 계획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삼은 사람들의 삶,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하여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주님의 몸된 교회로 부르심을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예수님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은 사람들의 삶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인의 삶,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바울은 ‘그러므로’로 오늘의 말씀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깨달은 사람은 ‘그러므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전한 뒤에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권하노니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십시오 라고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캐나다에 와서 운전면허증을 바꾸고 새로운 면허 자격을 얻은 사람이 캐나다의 운전 법규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처럼, 이제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우리,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는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 그 부르심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깨달은 사람은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데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 원하시는 삶일까요? 그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주님께서 이 부분을 우리에게 계속 요구하신다는 생각을 많이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주일에 나눈 마태복음 말씀에서도, 아침 묵상에서 나누는 요한1서 말씀 속에서도, 또 오늘 우리가 나누는 에베소서 말씀에서도 계속해서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화평을 이루고,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라. 하나됨을 지키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이런 말씀을 주실까, 다름 아니라 주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요, 신앙의 핵심임을 우리에게, 그리고 저에게 계속해서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위해 이 땅 가운데 오셨고, 사랑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고, 사랑만이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가는 길임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2절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라는 것입니다. 새번역은 겸손과 온유로 서로에게 깍듯히 대하라 말씀하십니다. 겸손과 온유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가장 바탕이 되는 성품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예수님을 사랑할수록 우리는 겸손해지고 온유해집니다.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자기 기준을 우상숭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고, 이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준을 절대화하게 되면, 이 기준이 무조건 옳아 라고 생각하면, 이 기준이 남을 판단하는 잣대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판단해버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래, 저 사람은 저래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심판자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2절은 이러한 모습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이것은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눈감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하지 말아라는 뜻이 아닙니다. 핵심은 자기 기준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이웃을 판단하지 않는 것 그것을 말씀은 가르칩니다.

심지어 이 기준을 절대화하면 자기 자신도 이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에 자기가 높다고 생각하면 교만해지고,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에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 모두 겸손과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언제나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 판단을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유를 두는 것입니다. 또 겸손이라는 것은 완전한 기준은 오직 하나님만 가졌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용납받은 사람,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준으로 볼 때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주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고인이 되신 제 아버지와 관련된 예화를 하나 전할까 합니다. 어느날 제 여동생이 아버지께 질문을 했습니다. 말을 직설적으로 함부로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물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사람은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이라 뒤끝이 없으니 좋은 사람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서 또 물었다고 합니다. 일처리가 늦고 답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런 사람은 진중한 사람이라 실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니 좋은 사람이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실 각각 부족한 면이 있었겠지만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한면으로만 평가하지 않으려 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은 아버지께 질문을 했습니다. 인생 도처 유상수라고 살다보면 곳곳에 삶의 고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인생의 진짜 고수를 만난적이 있냐 물었습니다. 가끔씩 자기를 드려내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만날때가 있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고수라고 느낀다고 답하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을 알고, 그 중요한 것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조급해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온유한 태도를 갖게 됩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자기를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진실로 알고 살아갑니다.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인정받고자 애쓰지 않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갑니다. 멸시하거나 모욕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서, 나도 이 사람을 귀하게 여깁니다. 제가 주안이 주찬이, 건이 단이, 용석형제, 석하형제를 바라볼 때 이 아이들이 참 귀하고 사랑스럽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오윤석 집사님, 김영신 집사님, 우리 전지혜 집사님, 김경훈 성도님, 임미경 집사님, 장길수 성도님, 임경미 집사님, 이준수 집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더욱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 뒤에서 이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온유함으로 이웃을 대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온유를 강조한 뒤에 2절 말씀 후반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십시오.’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해서, 친밀한 소통으로 이어간 뒤, 책임과 의지로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사랑해야지 결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시작하기로 결단하면, 그 사랑의 대상과 끊임없이 친밀한 관계를 맺어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저 일방적인 감정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관계를 맺다보면 결국 사랑은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요, 서로를 위한 의지임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부부관계도 그렇지요, 처음에는 뜨거운 감정으로 사랑을 시작하지만,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계속 대화하고 소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결국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요 의지의 문제구나. 감정과 소통과 책임감은 모두 사랑의 필수 요소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온유한 태도로 이웃을 대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사랑의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은 이상적이지 않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를 대비하여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십시오’ 사랑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오래 참음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실 때에 오래 참음으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기를 배신하고, 떠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끝까지 참고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의 완성은 의지적으로 결국 인내해주고, 용납해주고, 품어주는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3~6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성령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나와 내 곁에 있는 이는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님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저도 예수님과 연합하였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도 예수님과 연합하였습니다. 이것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과 연합하였기에 예수님 안에서 경계가 허물어졌고, 한 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구분하지 않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은 선포합니다. 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 한 성령 안에서,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하나요, 우리가 받은 세례도 하나요, 온 우주의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꼭 기억해야합니다.

겸손함으로 온유함으로, 또 오래참음을 가지고 서로를 용납함으로,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 우리 교회 공동체는 굳건히 이 하나됨을 지켜 나갈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회사에도 온전한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 안에서 이 놀라운 하나됨의 신비를 지켜가자고 선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신 이 놀라운 신비를 다시 한 번 붙잡고 나아갑시다. 모래알과 같았던 우리들, 자기 안으로 단단하게 뭉쳐져 있지만 곁에 있는 누구와도 함께하지 못했던 우리들을 주님은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시고, 내 곁에 있는 이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주셨습니다. 단지 깨달음 뿐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새 힘과 새 능력 또한 우리에게 허락하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증거이자 뿌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 바라볼 때에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장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을때에 계획하셨던 그 놀라운 사랑을 드러내는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 예수님의 길을 가는 것이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를 통해 세우신 교회가 작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요, 이 교회를 통해 주님께서는 놀라운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