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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간절한 기도 (2020.03.27. 금요기도회 설교)

에배소서 3장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목회가 무엇일까? 목사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계속합니다. 특히 캐나다에 와서 이러한 생각을 더 집중적으로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 끝에, 결국 목사는 성도들이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 잘 믿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더불어 깊은 신앙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목사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 소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 일이 참 어려운 길이라는 생각에 아득해지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 체험을 많이 하게 됨 으로써 얻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독려해서 의지를 고양시켜서 되는 것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성령님의 도우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모든 방법이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결국 신앙이란 주님이 역사하실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목회라는 것이 결국은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핵심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러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1절과 2절에서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당시 유대인들, 그리고 헬라인들이 기도를 할 때에게 했던 방식은 대체적으로 서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은 서서 하늘을 보고,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간절히 기도,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드릴때에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그가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주님을 의지하려는 태도입니다. 겸손한 태도, 간절한 태도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고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길 원하는 태도를 꼭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태도는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으로 나타날까요? 다름 아닌 기도입니다. 주님을 진실로 믿고자 한다면, 또 진실로 믿고 있다면 그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혹시 주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분이 계십니까? 상황과 여건 때문에, 관계 때문에, 혹은 내 마음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에 나아와서 우리가 간구해야 할 기도는 무엇일까요?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세가지 기도제목을 가르쳐줍니다. 이 기도제목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을 위한 기도 제목이며, 또 저를 위한 기도제목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께서 각자 자신을 위해, 이웃을 위해, 또 저를 위해서도 해야 할 기도제목입니다. 

첫 번째 기도제목입니다. 다같이 16절 말씀을 봉독 하겠습니다.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첫 번째 기도제목은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을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으로, 곧 하나님의 그 무한한 능력으로, 성령님을 통해서, 여러분의 속 사람, 곧 여러분의 마음과 심령이 강건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석가들에 따르면, 여기에서 강건해진다는 것은 낙심한다는 것의 반대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무수히 낙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나누었던 말씀처럼 상황과 여건이 어려워질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특별히 관계가 어려워질 때 우리는 깊은 낙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 자신의 죄된 모습과 연약한 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앙이 너무나 연약하다는 것을 느낄 때 낙심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은 늘 미약하고 흔들립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의 낙심을 회복시켜주실 수 있는 분, 우리의 마음이 다시 강건해질 수 있도록 도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성령님 우리안에 오셔서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강건하게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상황과 관계와 나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마음을 만져주셔서, 내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에서 상한 나의 마음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제목입니다. 다같이 17절 앞부분을 봉독 하도록 하겠습니다.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두 번째 기도제목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믿음을 통해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우리를 구원한 사건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로 연합하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2000년 전의 십자가 부활 사건이 그저 지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다시 살아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믿음은 참으로 놀라운 신비입니다. 믿음은 이제껏 살아온 내가 죽는 것이요, 주님 안에서 내가 다시 사는 것입니다. 주님과 내가 더 이상 분리되지 않음을 믿는 것이요, 주님의 생명 안에서 내가 영원히 거하게 됨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에 살게 되는 것이요, 주님의 뜻 안에서 붙들려 살게 됨을 믿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믿음이 생길 때에 우리에게 현실로 고백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늘 기도하며 간구해야 할 것은 이 믿음입니다. 물론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주시는 믿음이 있기에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믿음을 위해 더욱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이 더 깊어지도록, 믿음을 통해 복음의 신비를 더욱 깨닫도록, 우리의 믿음이 굳건해지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깊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욱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절절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 그리스도께서 주신 부활의 영광이 참으로 크고 아름답다는 것,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다는 것, 내 모든 인생과 모든 존재가 예수님과 함께라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이 놀라운 신앙의 세계를 알아가고 느껴가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여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간구하며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그 놀라운 세계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기도제목입니다. 17절 뒷부분부터 19절까지를 봉독하겠습니다.

17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이 강건해지고, 주님 주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을 때, 우리 안에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사랑 위에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17절에 바울 사도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러분이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혀지길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사랑 가운데에서 터가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첫 번째는 나무를 비유한 것이고, 두 번째는 건축물을 비유한 것입니다. 나무가 굳건히 세워지기 위해서는 뿌리가 잘 내려야 합니다. 또 건물을 잘 세우기 위해서는 토대를 단단히 잘 받쳐줘야 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사랑 위에서, 사랑을 뿌리 삼아, 사랑을 토대 삼아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 되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깊이 깨닫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사랑 위에서 세워집니다.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그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실로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신앙을 세우는 일도,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러분이 지식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지식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지식으로 깨달을 수 있는 사랑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그것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오직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며, 그렇기에 우리는 이를 위해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상식을 넘어서는 사랑, 그 놀라운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만지고, 우리의 영혼을 만질 때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우리 또한 진실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이 기도는 진실로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입니다.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봅시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우리의 힘과 의지는 매일 꺾입니다. 우리의 지식도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우리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를 우리에게 다시금 말씀합니다.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사랑은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무한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너비는 무엇을 뜻할까요? 그분의 사랑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가족, 우리의 일터, 우리의 교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 못하는 관계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인도하십니다. 사랑의 길이는 무엇을 뜻할까요? 그분의 사랑의 영원함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끝이 없는 사랑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주님의 결단이 담겨 있는 사랑입니다. 죽음까지도 우리를 막을 수 없는 그 사랑입니다. 사랑의 높이는 무엇을 뜻할까요? 그분의 사랑의 크기를 뜻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하늘에 이르기까지 큰 사랑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알면 알수록, 이 사랑이 이렇게 컸던가 감격할 수밖에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깊이는 무엇을 뜻할까요? 그 사랑이 우리의 가장 깊은 마음의 심연까지 다다른 사랑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가장 깊은 곳, 가장 절망적인 곳, 아무런 희망이 없고, 슬픔과 애통함만 있는 그곳까지 주님의 사랑이 충만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간구하고 기도해야하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이미 우리에게 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 사랑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의 믿음을 세우고, 우리의 삶을 다시금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주며, 절망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붙잡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시 기도의 자리로 모였습니다. 기도는 말씀과 함께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근본적으로 살립니다.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하며,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전제할 때, 기도는 이 은혜를 간구하는 우리의 탄식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합시다. 

주님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낙심했던 마음이 회복되게 하시고 다시 주님 안에서 새 힘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믿음을 회복시켜주시옵소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다시금 믿게 하여 주시고,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의 죄된 본성이 죽고, 예수님과 더불어 참 생명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깨닫게 하여주셔서, 그 사랑에 뿌리내린 사람, 그 사랑의 터 위에 살아가는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사랑의 감격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삶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함으로 우리가 다시금 주님께 회복되는 삶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