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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 우린 하나 (2020.02.21. 금요기도회 설교)

에베소서 2장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람은 누구나 구분을 합니다. 구분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라면서 계속해서 구분을 배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찬솔이도 세 살쯔음 되니깐 나는 남자, 아빠도 남자, 엄마와 이은이는 여자 이런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남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조금 지나면 우리가족, 다른 가족, 나는 한국 사람, 다른 사람은 외국 사람 이렇게 서서히 여러 구분 방법들을 알게 되고, 그 구분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해 갑니다. 내 안에 어떤 구분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구분을 강하게 하는 사람은 자기의 정체성을 강하게 붙들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3대 모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해병대 전우회, 호남 향우회, 고려대 동문회, 3대 모임,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있는 모임이라고 들었습니다. 다른 군대와 나를 구분하고, 다른 지역과 우리지역을 구분하고, 다른 학교와 내 학교를 구분하는 것, 이것이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안에서 인정을 받으며, 안정감을 누리는 우리 모두의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구분을 너무 강하게 붙들게 될 때에 발생합니다. 구분을 통해서 단순히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구분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자기 우상화에 길로 들어서게 될 때 문제는 발생합니다.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가 아닌 사람들을 차별하고, 심지어 우리가 아닌 사람들을 배척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역사 속에서 너무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유럽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을 구분해서 배척해왔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였던 유대인들을 더러운 민족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그들이 사는 동네를 따로 만들어서 게토를 만들고, 그 안에서만 살게 하며, 공공연하게 그들을 적대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럽의 분위기는 훗날 나치의 유태인 학살로 이어졌습니다. 유럽인들은 유태인들을 학살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기 보단 오히려 자기들의 우월감을 자랑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백정이라 불렸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북쪽 유목민족 출신의 이방인들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에게 도축 일을 맡기면서 천대해왔습니다. 백정들은 늘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야했고 하대를 당했습니다. 백정 출신의 여인들은 때때로 성적인 폭력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에게 집단 폭력을 가하거나 심지어 죽여도 큰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질서. 곧 당시의 구분기준에 따르면 백정은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더라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 속에는 늘 이러한 구분점이 있습니다. 지역에 대한 차별, 학벌에 의한 차별, 인종에 대한 차별, 부에 대한 차별, 지식에 의한 차별, 외모에 대한 차별, 은밀하게는 인격과 성품에 대한 차별, 우리는 무심결에 우리 안에 다양한 기준들을 절대적인 잣대로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무시하곤 합니다. 심지어 이러한 잣대는 교회 안에도 있어서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과 새신자간의 구분, 헌신하고 애쓰는 사람과 그냥 왔다갔다 하는 사람과의 구분, 잘살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과 사회적으로 낮은 사람과의 구분, 직분을 가진 사람과 평신도간의 구분 등 많은 구분들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우리는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그 차별과 구분을 통해 우리는 때때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결속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전파된 에베소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2년을 넘게 사역했던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간의 갈등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 특유의 선민의식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으로서 지켜야할 율법들을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원조요, 이방인들은 아류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이방인들대로 불만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뻣뻣함과 교만함을 마음속에서 비난하고 비방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그리스 최고의 도시 중 하나인 에베소 지역의 사람들이고, 지혜와 지식으로는 그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는 그리스인들이라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이들의 이러한 교만한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 속에 있었던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바울은 먼저 1~2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모두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자요,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제 하나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다같이 14절~16절까지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육체로 허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자기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싶어하고, 자기를 우월하게 높게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늘 자기가 중심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의 우월함을 계속 자랑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욕심이 넘친 나머지 하나님을 거절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의 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스스로 높이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허무셨습니다.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주시고, 지극히 겸손한 모범을 보이셨으며, 무한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높이려는 시도를 멈추게 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그러한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자기가 충분히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말썽장이 아이에게 사랑을 해주면,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인정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넉넉한 마음과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품게 되고, 용납하게 되고, 기다려주게 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구분되어 거룩한 삶을 살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삶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율법을 자신들과 다른 민족을 구분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율법 안에 있는 유대인들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율법 밖에 있는 이들은 저주받은 이방인들이라 여겼습니다. 율법을 통해 오히려 자신을 높이고 이웃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넘어서는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도록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으나, 그것을 사람들이 잘 못 사용하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율법이 이루고자 했던 진정한 거룩함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복음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제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선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정죄하고 구분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화평과 포용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끝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난 주, 지지난주 말씀에서 선포한 것과 같이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한 사람입니다. (내 안에 너있다. 너안에 내가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던 우리는 이미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하여 주님의 다스리심과 뜻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과 실제로 연합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믿게 된다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나와 예수님이 연합한 것처럼, 내 곁에 있는 내 형제 자매도 예수님과 연합하였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기전에 우리는 끊임없이 구분 점들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찾는 사람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 몸, 한 지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눈이 손더러, 머리가 발더러 너는 쓸데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물으면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함께 고통을 받고, 함께 즐거워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깊게 깨달을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화평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화평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 자신의 기준을 잘 살펴봅시다. 내 안에 어떤 굳은 기준이 있는지,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지를 살펴봅시다. 누군가를 낮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보이지 않는 우상이 있는지를 살펴봅시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나를 우월하게 생각하는 것이 없는지를 살펴봅시다. 마치 유대인들을 억압하며 우월감을 느꼈던 유럽인들처럼, 마치 이방인들을 무시하며 우월감을 느꼈던 유대인들처럼, 내가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우월감을 느꼈던 적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주신 율법마저도 자기들 위한 기준으로 삼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우리를 예수님만큼 값진 존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우리를 볼 때 우리는 늘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준으로 우리와 이웃을 바라보게 된다면 이 가운데 열등한 존재는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때 주님이 주시는 화평이 우리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이제 예수님과 연합한 존재입니다. 우리를 가르는 기준은 사라졌고, 대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로 연합하였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존귀한 존재일 뿐 아니라,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주님 안에서 한 몸으로 엮인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와 내가 하나된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며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교회 공동체를 통해 이 땅 가운데 당신을 실제로 드러내시며,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 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