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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1) (2020.05.10.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6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대화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기도를 잘 아시는 분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자,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결코 길지 않은 기도이지만, 기도의 정수가 담겨 있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이기에, 주기도문은 2000년 교회 역사에서 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 기도를 지금도 사랑하고, 또 고백합니다. 이번주와 다음 주는 이 주기도문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9절 전반부 말씀을 함께 봉독 하겠습니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 말씀하시면서 가장 첫 소절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란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기도를 자주 하십니까? 주로 언제, 어떨 때에 기도를 하십니까? 또 기도를 하신다면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기도를 생각하면, 저에겐 몇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기도는 주로 어른들이 앞에서 하시고, 저와 제 친구들은 그 기도를 듣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별히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그저 잠잠히 듣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고, 교회를 들어가니 그때부터는 예배시간에 찬양을 하고 따로 기도하는 시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도를 해야 하는 시간이니, 이제 눈을 감고 제가 제 생각으로 기도를 해야 했는데 도저히 뭐라고 기도를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저 눈을 감고 기도하는 척을 하거나 아니면 몰래 잠을 자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기도를 한두 마디씩 하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제 기도는 짧은 문장이었고, 기도를 깊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수련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하나님을 꼭 만나야 한다는 설교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원래 호기심이 참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 궁금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정말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기도가 깊어지고, 기도를 제대로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기도라는 것이 저는 이처럼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우리의 탄식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에서 기도를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정말로 필요할 때, 간절한 무엇인가가 생겼을 때 우리는 진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의 시작은 한마디로, 제게 지금 하나님이 필요합니다.’라는 터져 나오는 고백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느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가 받을 유산을 가불해 달라는 요구를 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 몫을 챙겨 먼 도시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구할 수 없어 굶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둘째 아들은 생각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적어도 이렇게는 살지 않을 것 같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보자마자 불쌍히 여기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잔치를 열어주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버지를 떠나 살아가는 둘째 아들과 같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살려고 해도 우리의 점점 더 어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아니 삶이 좀 윤택해졌다 하더라도 관계의 문제, 건강의 문제, 가족의 문제 그 밖의 삶의 문제가 더 켜져서 너무 힘들다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의지할 데가 없고, 위로받을 데가 없고, 품어주는 데가 없어서 지독한 외로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사실 실제적인 힘든 일이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그저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실 백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가지 이유를 가지고 각자 삶의 문제들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아 저 사람은 정말 좋아 보인다 하더라도, 그 속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삶의 고민과 아픔이 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렇게 아 내가 쥐엄 열매를 먹고사는구나 하는 비참함을 느낄 때, 우리 마음속에 문득, 아 아버지를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게 되는 것! 그래서 입을 떼어, 하늘에 아버지시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렇게 외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의 시작인 것입니다. (쿰바야)

 

이렇게 우리가 아버지를 부르고 난 뒤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고백을 하게 됩니다. 9절 말씀의 뒷부분입니다..

 

9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합니다. 거룩하다는 뜻은 히브리어, 헬라어에서 모두 구분되었다 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합니다라는 고백은 하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속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저는 이 고백을 조금 더 쉽게 해석하면 이러한 고백이라 생각합니다. 이제껏 저는 세상의 것에만 온통 제 마음을 쏟고 살았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과 여건, 제가 얻어야 할 것들, 제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에 간 온통 관심을 쏟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주님 이렇게 살다가 한계에 다 달았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고, 이 모든 문제를 뚫고 나갈 힘을 상실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실망하였고, 제 삶에 실망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는 답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더 얻고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을 넘어선 하나님,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세상의 모든 문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찾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내가 부르짖는 하나님은 그러한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이 시간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합니다.라는. 고백은 하나님 이제, 제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진실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간청하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 세상 사람들이 실제로 믿는 신, 이나 권력이나 인정이나 욕망이나 안정이나 행복을 넘어서, 진짜 신을 바라보기로 결단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들로 내 삶을 지탱하려고 하는 시도를 넘어서서, 주님 제가 이 모든 것을 넘어서 진짜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결단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이름은 이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지금껏 내가 신이라고 여겨왔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주님께 이 시간 나아옵니다. 근원으로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 찾아왔습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백한 뒤, 우리는 주님께 장엄한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10절 말씀입니다.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뜻하신 것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에 급급할 때에는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벽에 부딛혔 을 때, 나 자신의 한계를 직면하였을 때, 이 땅의 고통과 설움을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비로소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에 개입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것을 위하여 끊임없이 욕망하고 확장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다른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죄악입니다. 하나님 대신, 돈을 숭배하고, 욕망을 숭배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 그러면서 스스로 설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죄악입니다. 이집트의 바로는 나일강의 풍요로움을 믿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였고, 바벨론의 왕들은 군사력의 강대함을 믿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였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제국의 교만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가 되었으며, 바벨론 제국의 폭력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과 애통한 기도를 들으셨고, 이집트와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뜻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사회 속에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시키시고, 정의를 일으키시며, 생명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이제껏 우리의 삶의 방식으로 살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리하여 세상과 구별된 거룩하신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 들어오셔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십니다.

 

놀랍게도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과 씨름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모습을 우리에게 은밀히 드러내십니다.. 때로는 당신의 힘과 능력을 강하게 보여주시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완전한 침묵 속에 들어가시기도 하십니다.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 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파격적으로 자신을 깨닫게 하시기도 하십니다. 자신에 대한 오해를 바꾸어 주시기도 하시고, 친절히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시기도 하십니다. 기도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과, 기도하기 싫어진 우리의 냉담함, 기도 응답을 통해 생겨난 우리의 믿음과 기도가 되지 않아 답답하여 생겨난 우리의 낙심을 모두 활용하여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절대로 교만하게 만들지 않으시고, 또 우리를 절대로 절망시키지 않으시며 당신의 뜻을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기도를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다스리심과 뜻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삶이 변하기 시작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기도의 여정이 곧 신앙의 여정, 삶의 여정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는 기도가 결국 우리의 길을 찾아가는 등불이 되어, 우리의 길을 인도하게 됩니다. 기도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우리의 탄식에서 기도를 시작하지만, 기도의 길을 통해서 우리의 탄식이 하나님의 열정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본다면 기도는 늘 어렵습니다. 기도가 늘 잘 되고, 기도가 늘 쉽다면 그 기도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우리는 결국 기도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기도의 핵심을 확실하게 가르쳐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기도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주기도문을 통해 우리가 이처럼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를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정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때,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로 결단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찾는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개입을 받아들입니다. 우리의 정직한 마음이 하나님의 온전한 마음과 맞닿아서, 우리의 심령이 변하고, 우리의 삶이 변하고, 이 땅에 변화하게 하옵소서.

 

끝으로 마음에 남는 시 하나를 낭독하며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한다면, 우리의 모든 삶은 기도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