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금식 (2020.05.24. 주일예배설교)

 

마태복음 6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오늘 말씀은 우리가 3주전에 나누었던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혹시 기억나시는지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마땅히 해야 할 경건생활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신앙 습관이기도 했던 구제와 기도와 금식입니다.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것, 하나님께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것, 일정한 시간을 정해 금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경건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좋은 통로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할 때에 경계해야 할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기 위한 경건생활 마저도 사람들에게 보이기위해서 한다면, 우리는 경건 생활의 참 의미를 잃어버릴 뿐 아니라, 되려 우리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에만 익숙해지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칭찬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기 시작하면, 진실된 자기의 마음을 상실합니다.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자기도 잃어버리고, 오직 헛된 껍데기 명성만 남아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여 남을 돕는 기쁨을 누리는 자리에 우리를 초대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주는 놀라운 평안함과 새 힘을 얻는 자리에 우리를 초대합니다. 하나님 그 분 자신을 아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소중한 선물의 자리임을 예수님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은 구제와 기도에 이어 금식에 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같이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봉독하겠습니다.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께서는 금식을 할 때에도 구제와 기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 것을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금식을 할 때에 외식하는 사람들 같이 슬픈 기색을 하고, 얼굴을 흉하게 하고 다니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금식하는 것이 티나지 않도록 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정기적으로 금식을 하는 날이 다가오면 일부러 초췌한 얼굴과 비통한 표정으로 금식을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연기하는 사람처럼, 자신이 이렇게 경건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와 저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신앙이 깊다,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칭찬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회적, 종교적 위치와 사람들의 평판을 듣고자 자랑스럽게 이러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들의 칭찬과 좋은 평판을 들었을지는 몰라도, 금식이 정작 그에게 주는 유익은 하나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느라 정작 금식을 통해 집중해야하는 대상인 하나님께 대하여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말씀 속에서 나타난 믿음의 선배들이 금식을 했던 의미는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식을 하되 사람들에게 티 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그 금식을 보일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금식의 진정한 의미를 얻어갈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금식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금식을 실천하는 것과 더불어 금식이 주는 의미를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금식은 먼저, 애통함과 간절함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깊은 슬픔에 빠질 때 곡기를 끊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 앞에 간절한 간구가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간절한 모습, 곧 생명을 건 모습으로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이번 주에 함께 말씀을 나누었던 한나가 그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사무엘상 178절입니다.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한나는 자녀를 갖지 못한 슬픔, 그 비통함을 금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뒤에야 음식을 다시 먹기 시작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가장 큰 고통을 경험했던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욥은 음식 앞에서 탄식을 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애통한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얼마나 그 슬픔이 큰지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에스라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시길 간절히 간구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금식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가 될 수 없습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건 절규입니다. 금식은 삶을 주관하시고,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아픔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간절한 기도이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소망을 거는 행위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찾는 부르짖음입니다.

 

둘째로 금식은 회개와 결단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할 때에, 또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키고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단할 때에 금식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가 죽음에 이르는 죄었음을 절절히 깨닫고, 이제 다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죄를 짓지 않겠다 고백하는 마음으로 금식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 했을 때 모세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요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옷을 찢지말고 마음을 찢으며 하나님께 돌아오라 선포하며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가장 간절한 회개를 할때에 금식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금식은 죄를 지었던 다윗의 모습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사무엘하 1215~17절 말씀입니다.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습니다.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장수였던 우리아가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가 있을 때, 그의 아내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자, 그를 일부러 죽음으로 몰아넣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윗 일생의 가장 비열한 범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어 다윗을 크게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가자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의 불륜에서 낳은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아이를 위하여, 또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기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교독문으로 봉독했던 시편 51편 말씀은 그의 참회하는 심정을 잘 보여줍니다. 시편 519~12절까지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시편 51

9 주님의 눈을 내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10 ,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11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12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그는 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 참회하는 마음, 회개하는 마음, 주님을 다시 찾는 마음으로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회개와 결단은 하나님 앞에서의 가장 내밀한 고백입니다. 가장 정직한 고백이요, 가장 순수한 고백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러한 회개의 금식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이 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요,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도 진정한 돌이킴이 될 수 없습니다.

 

금식은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사명을 받고, 그길로 나아가길 결단할 때 드리는 고백입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서 금식을 했습니다. 신명기 99~10절 말씀입니다.

 

신명기 9

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10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받기 전, 모세는 40여일간은 금식한 것입니다. 엘리야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왕기상 198절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19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호렙산에 가는 동안 40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않고 이동하였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환상을 보는 동안 3주를 금식하였습니다. 다니엘 102~3절 말씀입니다.

 

다니엘 10

2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3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말씀과 환상을 받고, 하나님이 가리키는 사명을 받기 위해 믿음의 선배들은 금식으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40일을 금식하시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며 사역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되는 가장 중요한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출사표를 받고 담대하게 우리의 삶을 내딛는 순간 금식으로 자신의 모든 욕망을 멈추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갖았던 것입니다. 이 순간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다른사람을 신경쓰는 여지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금식을 할때에 외식하지 말아라,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 금식하지 말아라, 오히려 누구도 네가 금식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금식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집중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주님의 뜻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금식은 애통하는 자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백할 때 하는 것입니다. 금식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가 하나님께 정직한 마음을 드릴 때 하는 것입니다. 금식은 사명을 받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준비되고자 할 때 하는 것입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드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모든 욕망을 절제하고, 지극히 겸손한 태도로,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비워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추는 자리가 곧 금식의 자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는 나를 높이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맞추는 모든 시도들은 모두 사라져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삶 속에서 금식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 금식을 하였습니다. 교부였던 테르툴리아누스는 절제가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회복시키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금식은 마귀와 싸우는 영적인 무기이자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는 통로라 가르쳤습니다. 종교 개혁자 칼뱅은금식은 육체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깊은 기도와 묵상을 하게하며, 하나님께 속죄하고 겸손하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경건주의자는 어거스트 헤르만 프랑케는 먹고 마시는 일을 절제하고 그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금식을 강조했습니다.

 

사실은 실제로 금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애통한 마음을 정직하게 내어드리는 가, 늘 회개하는 삶을 사는 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사는 가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시간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있는가,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자리가 있는가, 우리의 신앙이 세워지고 있는가입니다. 금식은 그것을 위한 하나의 좋은 도구가 될 뿐입니다. 귀한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금식의 근본 정신을 주님 앞에서 확인하는 시간을 꼭 갖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침시간, 또는 잠자기전, 그리고 가능한 한 예배시간과 기도회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시간을 내어드리기를 권면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금식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고백, 곧 내 생명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제 인생이 주님의 것입니다. 저의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이웃을 위해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이웃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처럼 그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명을 위해, 또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러한 시간을 갖게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러한 시간을 통해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것,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을 채워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