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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공경과 자식 사랑 (2020.06.05. 금요기도회 설교)

 

에베소서 6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함께 나누는 말씀입니다. 지난주는 남편과 아내에 관한 말씀이었다면, 오늘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관한 말씀입니다.

 

먼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십계명의 계명으로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할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1~4번째 계명이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5~10번째 계명이었는데,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계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첫 번째 계명이었습니다.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왜 이처럼 말씀은 부모 공경을 가장 귀한 계명으로 말씀하셨을까요? 저는 그 비밀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부르시는 호칭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며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을 그 사랑을 보여주는 가장 비슷한 예로 들어주신 것입니다.

 

어떠한 사랑도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없지만,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흡사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찾아볼 때에 그 사랑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을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부모 공경에는 더 특별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같이 오늘 말씀 1절을 봉독하겠습니다.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우리는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되 그것을 주 안에서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부모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 부모님의 모습 속에서는 우리를 향한 뜨거운 사랑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준 상처나 아픔도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도 부모님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분도 부모님이십니다. 어떤 부모님도 완벽할 수 없고, 우리에게 온전하게 사랑만을 주지도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부모님과의 관계와 아픔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 안에서 부모님을 오히려 품고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무와 강제적인 규범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순종하고 공경하고 사랑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고 때로는 용서하는 마음까지 주십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사랑하고자 애쓸 때에 그 노력하는 마음을 귀히 여겨주십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품고, 감사해하고, 부모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마음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니다. 실제로 부모님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실망과 분노,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 닫힌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거절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모님께 닫혀 있던 문을 열기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를 더욱 깊은 사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할 때, 우리를 이 땅에서 오래 살게 하리라 하신 말씀은 단순히 장수를 뜻하는 것을 넘어서,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복 안에 거하게 될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조선후기에 천주교가 한국에 전파되었을 때, 조선 왕실은 이 새로운 종교가 조선의 전통과 윤리를 흔드는 위험한 종교라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1791년 전라도 진산의 양반 교인이던 윤지충이라는 사람이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태우자 정말 큰 난리가 났습니다. 당시 유교전통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부무군의 사악한 종교라며 천주교를 비판했습니다. 결국 윤지충은 사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유학의 전통에서 모든 윤리의 뿌리는 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은 불효로, 가장 큰 죄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학에서는 모든 도덕과 윤리의 근본을 효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윤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당연히 우리는 효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효도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효도는 우리에게 의무이기도 하고, 숙제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효도는 우리의 이러한 마음에 길을 제시하는 효도입니다. 말씀은 온전히 효도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동시에 효도할 수 있는 새로운 힘과 능력을 줍니다. 그저 의무이기 때문에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서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효도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주님 안에서 우리가 서서히 변화하는 것처럼, 그 사랑 안에서 조금씩 더 부모님을 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길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빛되시는 주님을 드러내는 빛이라 할 때,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도 우리 부모님을 사랑하는 주님을 드러내는 빛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가르쳐주시는 두 번째 말씀은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말씀은 우리에게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를 가르쳐줍니다.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가르칩니다.

 

대부분의 부모님은 자녀를 사랑합니다. 문제는 사랑을 하되,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노엽게 되는 것은 이처럼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사랑 자체가 쉽지 않을 때가 있지만, 자녀에 대한 사랑은 사랑은 하되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자녀를 사랑하되, 우리의 방법과 뜻이 아닌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 질문 앞에서 교회 전통이 전통적으로 라고 고백하는 3가지를 떠올렸습니다. 교만, 불순종, 불신앙 이 세가지 죄악이 우리 안에 있고, 이 죄악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에 이 세 가지 죄악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노엽게 하고 하나님의 교훈과 훈계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에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리에 서서 권위적으로, 일방적으로, 심판과 채찍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함께 우시고, 함께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겸손함이 주님의 교훈이요, 주님의 훈계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때에도 이러한 주님의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자녀의 눈높이에 우리의 눈높이를 맞춰주고,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자녀를 품어주고, 용납해주고, 자녀가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꺼이 낮은 눈턱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녀 앞에서도 겸손한 태도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자녀를 온전한 사람으로 키우는 길입니다.l

 

둘째로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삶의 원칙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우리가 자녀를 잘 키우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으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 십자가의 은혜를 마주보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사랑의 힘이 있습니다. 은혜에 감격하고, 사랑에 감사하고, 주님이 주시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녀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욕심대로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랑을 위해 사랑하지 않고, 자기의 부족함을 투사해서 자녀를 닦달하지 않고, 용서하고 품고 섬기며 자녀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녀를 키울 때 자녀는 부모님의 사랑이 진실된 사랑이라는 사실을 느낍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이용한다는 분노가 쌓이지 않고, 오히려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쌓이게 됩니다.

 

끝으로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과 훈계의 핵심은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를 두렵게 하고 염려하게 하는 것들이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끊임없이 세상의 것들을 가장 우선순위에 둡니다. 말씀은 그러한 우상 숭배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오히려 우리가 삶 그 자체를 잃게 된다고 선포합니다.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도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주시는 분, 우리의 모든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자녀를 양육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의 인생의 주인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의 인생 가운데 늘 함께 하시고, 좋은 만남을 갖게 하시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며,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의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자녀를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자녀의 인생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준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그 일을 강요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것은 오히려 자녀에게 너무 큰 짐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져도 그 삶을 지탱해줄 믿음이 없다면 그 인생은 다시 흔들릴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가 신뢰하는 하나님을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녀가 믿음 위해 서게 된다면, 스스로 그 길을 단단하게 찾아갈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이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지난주의 부부관계도 그렇고, 오늘의 부모자녀관계도 그렇고 가장 가까운 관계는 언제나 우리의 숙제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가장 깊은 사랑을 나누는 관계이기도 하고, 또 가장 깊이 상처를 주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는 단칼에 정의내리기도 힘들고, 당장에 결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장 가까운 관계는 무엇보다 관계를 만들어가기도 회복시켜가기도 어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사랑, 주님의 말씀, 주님의 교훈과 훈계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서두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서서히 변화시켜 가십니다. 먼저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그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서서히 바꾸어 가시고, 조금씩 우리를 성장시키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 닮게 하십니다. 주님의 구원은 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일이요, 우리의 인생 전체를 통해 일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마음으로, 서서히 사랑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결단으로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간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과 동행하며, 그 길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이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