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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지 말라 (2020.06.14. 주일예배 설교)

마태복음 7장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발로 풀을 밟듯 입속의 말들로 우리는 많은 것을 짓밟는다. 심지어 침묵으로도 그렇게 한다. 헤르타 뮐러라는 사람이 쓴 마음 짐승이라는 글에 담긴 구절입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얼마나 비판하며 지냈는지를 생각해봅시다. 우리의 말로 비판한 것은 물론이요, 우리의 생각과 마음으로 비판한 것까지 합치면 우리는 정말 수도 없이 많은 비판을 하면서 한주를 살아왔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정직하게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면, 주님 앞에서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정죄할 때, 한편으로는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 저 사람은 욕을 먹어도 싼 사람이야, 이러한 비판이 있어야 저 사람도 발전하고, 이 세상도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묘하게도 우리는 누군가를 함께 비판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더욱 친해지며, 서로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누군가를 한참 비판하다면 마음이 시원해지기까지 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그 비판과 판단으로 여러분 또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저울질하면, 여러분 또한 그 저울질을 당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다름 사람의 눈 속에 들어있는 티끌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면서, 왜 여러분 눈 속에는 들보가 들어있음을 깨닫지 못합니까? 여러분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줄테니 가만히 있어라'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십시오. 그 다음에야 여러분의 눈이 잘 보여서 다른 사람 눈 속에 있는 띠끌을 빼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포함하여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에는 큰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사람이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이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의 바탕입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가장 큰 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무너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우리가 용서받은 존재라는 것을 잊고, 오늘도 주님의 사랑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잊는 것,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죄라는 것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을 비유하시면서 눈에 들보가 있는 사람이라 말씀하십니다. 들보는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지붕을 받히는 큰 나무 기둥입니다. 당연히 눈으로 들어올 수도 없을 정도로 큽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눈에 들보가 있는 사람이요,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영적인 눈이 먼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누군가를 비판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 말씀은 특별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한 말씀이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율법으로 늘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안식일날 일을 한 대, 저 사람은 금식을 하지 않는 대, 저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래, 저 사람은 정결예식을 지키지 않는 대, 저 사람은 구제를 하지 않는 대, 이들은 끊임없이 율법과 규칙으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비판과 판단은 때때로 사람들을 정신차리게 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고, 성장시키고 성숙시키기도 했습니다. 사실 성경 말씀에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는 악한 사람들에 대한 무수한 비판이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들이 이처럼 비판하고 판단하는 말을 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비판하고 판단하는 마음 속을 깊이 살펴보니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와 사랑을 알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정말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율법을 보는 눈은 있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눈은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눈이 없는 것, 그것을 주님께서 지적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판하는 사람의 눈에 들보가 있는데,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비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모르는 심각한 상황 속에 있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덜 중요한 사람들의 행실과 종교생활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마음 아파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뭣이 중한데 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심정을 주님께서는 6절 말씀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거룩한 것’, ‘진주’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사람들에게 주셨는데,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발로 밟고, 찢어 상하게 한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율법과 종교생활의 원칙들도 사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하기 위한 수단인데, 정작 그 은혜와 사랑은 놓치고 다른 사람들의 잘못만을 찾아서 지적하고 정죄하는 일만 남아버린 것에 대해 주님은 안타까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은혜가 우리의 왕 노릇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근원에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처럼 부족한 나를 사랑해주셨지, 이처럼 연약한 나를 용납해 주셨지, 이처럼 죄 많은 나를 용서해 주셨지, 그것에 대한 깊은 감사와 감격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용서하고 품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격이 사라진 교회는 분열하고 분쟁하고 비난하고 비판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가 살아있는 교회,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살아있는 교회는 늘 더욱 겸손하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품어줍니다. 

지난 주에 우리 임미경 집사님과 함께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집사님께서 저에게 여쭈어 보셨습니다. 이곳에서의 삶이 힘드지신 않으신가요? 그때 제가 솔직하게 드린 말씀이 이러했습니다. 낯선 타지에서 외롭기도 하고, 또 어떻게 목회를 해야할 지 아직 길을 찾는 중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고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희 교회 성도님들 덕분에 힘이 납니다. 제가 사실은 누구보다 제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비하여 늘 설교도 부족하고, 목양과 목회를 잘해 우리 성도님들의 모든 어려움들을 잘 돌보아드리지도 못하고, 아직 이곳에서의 삶을 잘 추스르지도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사님들이 저에게 늘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감싸주시고, 또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제 부족함과 연약함을 참아주시고 품어주셔서, 그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고, 그것으로 제가 힘을 얻고 그것으로 회개하고 그것으로 애쓰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비판과 헤아림으로 저를 대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늘 은혜와 사랑으로 감싸주셔서 제가 지금도 힘을 낼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러한 점에서 참 귀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저와 우리 성도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은혜의 자리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주님이 우리을 어떻게 용서하셨는지, 우리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존귀한 자들인지, 주님이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동행하시는 지를 깊이 경험하고, 그 은혜를 나누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은혜가 가득 찰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넉넉한 마음으로 용서하고 품는 이들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는 새롭게 오신 성도님인 김성희 성도님과 함께 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성도님께서 우리가 믿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에 선포된 지극히 큰 하나님의 사랑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우리는 늘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두가지 면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이었나, 예수님의 탄식과 아픔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토록 사랑하셨구나. 이토록 나를 귀히 여기시는구나를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두 깨달음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우리는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 다가가면 다다갈수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 둘 사이에서 감사와 감격이 있고, 이 둘 사이에서 우리의 새로운 삶의 태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이처럼 큰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인데, 어찌 저 사람을 품지 못할까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서서히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처럼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인데, 어찌 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 앞에서 내가 용서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여유가 생기게 되면, 이제 우리는 놀랍게도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삶의 기준이 다르고, 능력과 형편이 다르며, 보고 있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눈에 들보가 끼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기준, 자기 판단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멀어지면 그러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저의 경우를 살펴보면 심지어 설교를 쓰는 중에도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사랑을 간구하며 설교를 써야하는데, 이게 잘 되지 않으면, 설교를 쓰면서 예민해지고, 심지어 짜증도 내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가장 멀어지는 제 모습을 보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기억하고, 다시 하나님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려고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눈안에 들어와 있던 들보가 빠지게 됩니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게 되고,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고, 그 사람을 품으려고 애쓰게 됩니다. 내 판단과 내 기준을 절대화하지 않게 되고, 여유롭고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내가 늘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가장 주님에 뜻에 합당한 길을 더불어 찾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율법적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잠시 잠깐은 우리가 받아들이고 다짐할 수는 있으나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없는 너무 어려운 말씀이 됩니다. 반대로 오늘 말씀을 오해해서 받아들이면 아무런 비판과 판단을 해서는 안되고, 심지어 죄악과 잘못 앞에서도 침묵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생깁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주님의 사랑과 용서와 은혜를 기억하라는 데에서 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바라보아야 할 것을 바라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더욱 주님의 마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감사와 겸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용서와 용납의 삶을 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마음보다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마음이 먼저가 되고, 부정과 불의 앞에서는 사랑과 희생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삶을 살려고 애쓰게 됩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비판은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만 남길 뿐입니다. 그러나 은혜에 충만한 사람은 진실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진실로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예수 향기 드러내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