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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2020.06.21. 주일 예배 설교)

마태복음 7장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오늘 말씀은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더불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진 사람은 당연히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또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마치 가장 친한 사람과 가장 깊은 대화를 나누고, 또 가장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친한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둘 사이의 관계를 가장 잘 알려주시고, 보여주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다같이 9~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사랑하는 마음을 떠올리게 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제가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참 마음이 아팠는데, 그때 슬펐던 이유가 저를 이제 아버지처럼,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엔 없구나 하는 마음 때문에 참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아이를 낳아보니, 자녀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과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참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자녀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을 넘어서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자녀가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녀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대부분의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부모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 데 돌을 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달라고 하는 데 뱀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하지 않느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이러한 부모의 마음, 부모의 사랑과 같다. 때때로 부모의 마음은 부족할 때가 있고, 한계가 있을 때가 있을지 모르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사랑의 마음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며 그 하나님의 마음에 응답하는 것이 곧 기도임을 말씀해주십니다.

기도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우리는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삶의 길을 찾을 때마다, 삶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삶에서 주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주님,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든 순간순간에 초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고백합니다. 모든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기에, 늘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고백하는 가장 깊은 차원의 신앙고백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7~8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구하라 명령하십니다. 마치, 억울한 사람이 문전 박대를 당해도 물러서지 않고 간절히 그 억울함을 풀기위해 요청하는 것처럼, 마치 굶주린 사람이 한끼 밥을 먹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는 것처럼 하나님께 간구하라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찾으라 명령하십니다. 이 찾으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드릴 때 사용했던 표현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아 나오라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두드리라 명령하십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자비의 문을 두드리라는 전통적인 표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간절히, 집중하며, 지속적으로 기도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포합니다.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요, 찾는 사람에게 찾게 하실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리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알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시켜주십니다. 기도는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믿음의 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시고,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우리와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십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그저 우연에 의해 일어난 일이요, 운이 좋아 일어난 일이지만, 기도를 하는 사람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기도를 하는 사람은 삶의 굽이굽이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기도를 하지만, 동시에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기도는 그 자체로 우리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통로입니다. 언제나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막상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우리가 인도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기도에 관하여 주시는 가르침을 염두 할 때 우리는 우리가 기도에 관한여 쉽게 하는 오해들에 대해 바꾸어 가야 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상태가 따로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도 열심히 하고, 말씀도 열심히 읽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과 가까워진 기분이 듭니다. 이럴 때는 기도도 잘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도 힘차게 간구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보기에 신앙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끼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점점 민망해집니다. 아이고, 제가 뭘 하나님께 드리고 난 뒤에 기도를 해야 염치가 있지, 제 삶이 개판인데 이거 기도하는 것 자체가 민망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혹시 마음에 찔리는 죄라도 있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서 기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난 뒤에 하나님을 피해 숨은 것처럼, 마치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간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피해 다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기도해봤자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줄리 없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때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멀어져 있다고 느낄 때, 그때가 기도할 때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을 믿고 신뢰할 때 기도를 하게 되게 되기도 하지만, 또한 기도할 때에 응답받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기도를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를 할만한 자격이 못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구약의 말씀을 보면 기도하기 전에 먼저 회개하고 오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은 우리의 거룩함이나 선함, 우리의 행실이나 믿음의 깊이에서 오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 안에서 기도할 수 있을만한 자격을 찾는다면 아무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와 주님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고, 죄 많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로 결정하셨기에 우리는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주 작은 믿음을 가지고, 아주 작은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간다 할지라도 주님은 그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주시고, 기꺼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해도 만날 수 있도록, 문 앞에서 기다려주시는 분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를 떠났던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자 버선발로 뛰쳐 나갔던 아들을 부둥켜 앉았던 아버지처럼, 우리가 마음을 열고 주님께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응하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우리의 생각을 바꾸시며, 우리의 영혼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십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우리의 진심을 만들어 가십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하게 바꾸어 가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물들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울 때, 우리의 죄악이 우리를 집어삼켰다고 느껴질 때, 우리가 하나님과 아무런 친밀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부탁하기에 도저히 염치가 없을 때, 그때가 바로 우리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에 관한 또 한 가지의 오해는 우리가 해야 할 기도 제목이 정해져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감정, 마땅히 드려야할 고백, 마땅히 드려야 할 간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감정 그대로를 드러내기보다 공손하고 바른 마음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는 불평하거나 분노해서는 안되고 늘 두려워하면서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욕심이나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간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드리는 것, 그것이 바른 기도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간다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라는 점에서 이 생각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완성되어갈 우리의 이상향일 뿐,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간 원수가 있다고 합시다. 그래서 속으로 그 사람을 지독하게 미워하면서,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서 사랑하겠습니다. 용서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기도문 자체로만 보았을 때는 좋은 기도이나 우리의 마음과는 겉도는 껍데기 기도인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높은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진심이 담긴 기도는 버거운 느낌이 들기 마련입니다. 갑자기 체인이 탁 풀려버리면 페달은 잘 돌아가나 실제로는 자전거를 끌지 못하는 허무한 페달질이 됩니다. 우리의 진실된 마음이 담기지 않는 기도는 입으로는 술술 나오나, 하나님과 아무런 씨름이 되지 않는 기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진심을 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오늘 기도할 기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저 사람 심판를 내려주십시오. 도저히 미워서 용서가 안됩니다.’, ‘하나님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왜이렇게 인생이 꼬입니까?’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솔직히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저럴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숱하게 올라오는 진심들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날것으로 드릴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가 진심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그 진심에 반응하시고, 호응하시고, 만져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또한 기도할 때에 우리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 저도 좋은 집 갖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도 한달에 만불이상 벌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고, 스트레스 좀 안받고 싶습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하나님 안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이러한 솔직한 마음을 주님께 내어드릴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챙겨주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이 일하시고 계심을 보여주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삶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놓고 기도할 때 응답하심을 보여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것임을 느끼게 하십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삶의 문제들이 터질 때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몸이 아플 때마다, 차가 밀릴 때마다, 난처한 상황이 터질때마다, 날씨가 좋아져야 할 때마다, 무조건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놀랍게 그 모든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든 순간에 찾는다면, 하나님께서는 11절 말씀처럼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심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을 12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나님의 방식은 늘 먼저 주시는 방식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원하셨기에 우리를 먼저 지극히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셨기에 먼저 당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사랑, 그분의 말씀에 응답하여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사랑, 더 큰 응답을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우리도 하나님처럼 살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을 먼저 주님께 내어드리고, 우리의 고백을 주님께 내어 드립니다. 우리의 사랑과 베품을 이웃에게 먼저 나누어 줍시다. 그렇게 할 때에, 주님은 우리의 그 마음을 가장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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