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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신앙생활의 핵심 (2020.07.24. 금요기도회 설교)

 

디모데전서 1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전서 2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우리의 신앙을 잘 지키는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삶의 리듬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대표적인 리듬으로는 하루가 있고, 또 한주가 있고, 한 달이 있고, 한 계절이 있고, 한 해가 있습니다. 마치 긴 밧줄을 잡고 올라갈 때에 중간 중간 매듭이 있으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이 시간의 리듬에 맞추어 매듭을 맺고, 그 매듭을 딛고 삶의 여정을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매듭이 예배입니다. 삶을 살다 보면 신앙이 흔들리고,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는데, 그때마다 예배를 드려서 다시 주님 붙잡고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단위는 크게 보면 한주요, 작게 보면 하루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계획하고 실천하려고 애쓰는 삶의 단위가 한주 단위요, 또 실제로 우리가 결단한대로 살 수 있는 삶의 단위가 하루입니다. 우리는 한주의 계획과 하루의 실천을 통해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범주를 넘어가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우리의 삶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루 이틀 실천을 우리의 실천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한주, 두주 삶을 살피고 고민과 계획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매주 계획을 세우고, 매일 실천의 결단을 할 때 효과적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한 달의 계획, 한 해의 계획, 수 년의 계획, 인생의 계획은 이러한 구체적은 삶의 계획과 실천에 큰 그림을 그려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를 잘 아시고, 우리에게 예배를 허락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일 예배입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의 흐름을 늘 주님께로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항해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면, 주일 예배는 중간 중간 나침반을 보고, 별자리를 보며 배가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과 같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주님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의 방향과 실천은 적절한가, 내 삶 속에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죄는 없는가, 내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누리고 있는가,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통해 내가 서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내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일 예배입니다. 주일예배에 온전히 집중하고, 성실하게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때 우리의 인생은 주님을 선장으로 모시고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매일 드리는 기도와 묵상, 그리고 새벽예배는 하루의 삶을 결단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매일 매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에 맞추어 결단한대로 최선을 다해 살기를 다짐하고 주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항해할 때에 주일 예배가 나침반과 별자리를 보며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라면, 매일 묵상과 기도는 엔진을 점검하고, 연료를 넣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를 젓는 이들에게 밥을 주는 것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하루를 사는 것, 그 실천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결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오늘 바울은 이러한 신앙의 길로서의 예배를 강조하는 말씀을 전합니다. 특별히 믿음이 흔들리고 어려울 때에, 신앙이 길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때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예배입니다. 바울은 1장 말씀을 통해 에베소 교회에 닥친 위기와 그 위에 옳은 믿음을 세울 것을 강조한뒤, 2장 말씀을 통해 예배 때에 기억해야할 사항에 대해 전하였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 118~20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지혜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 우리는 겸손함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고, 오직 그 은혜의 풍성함을 먼저 누려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겸손한 것 같지만 오히려 교만한 일이요, 오직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실로 자기의 죄됨과 연약함을 깨닫을 겸손한 것이라는 것을 바울은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의 복음을 다시금 디모데에게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디모데가 해야할 일은 다름 아니라 이 은혜의 복음을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육적인 다툼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참된 의미를 에베소 성도들에게 힘써 가르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선한 싸움, 영적 전투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누구보다 먼저 디모데가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믿음과 선한 양심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그 믿음에 온전히 순종하는 태도를 의미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 예수님께 순종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악한 길로 빠지지 않는 온전한 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예수 붙잡는 삶을 디모데에게 요청한 것입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이 예수에게 집중하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지혜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안에 구원의 은혜가 있는데, 이들은 다른 영적인 지혜를 추구했고, 다른 구원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 일들을 할 수 있을것이라 착각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모욕하였고, 사탄의 종이 되었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벗어난 신앙의 여정의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한 말씀 후에 곧 이어서 2장에서 바울은 예배에 관한 권면을 전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다름 아닌 복음을 경험하는 길, 예수님께 집중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배에 대한 권면의 핵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25~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다시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삶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우리의 사람의 방향을 발견하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다시 은혜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제자요, 성령님이 거하는 성전인 것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가 바로 예배의 자리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깨닫는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의 참된 주인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애쓰시는 분이심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큰 사랑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우리에게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시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 주시고,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생명과 의로움 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어주셔서 이 세상을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영원히 책임지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이 은혜 가운데에 살게 하시며, 우리를 영원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이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예배는 말씀 선포를 통해 이 놀라운 복음을 깨닫게 하고, 찬양을 통해 그 복음안에 들어간 기쁨을 고백하게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사랑의 교제를 통해 이 놀라운 복음 가운데에 살아가는 이들을 서로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결단과 파송을 통해 우리가 모든 인생 길에서 다시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게 합니다. 예배는 복음과 내가 다시 하나 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다시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교만과 자기 자랑과 자기 지혜와 자기 의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이기게 합니다. 후매네오와 알렉산더의 길을 걸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예배에 온전히 나아가야 함을 바울은 선포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예배가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합니다. 1~4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바울은 이 예배를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할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전히 모든 성도들의 심령 가운데 심겨지고, 그 복음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예배가 온전히 세워져야 했습니다. 바울은 이 예배가 온전히 드려지기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며 준비할 것을 요청합니다. 바울은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시 상황은 황제와 왕들, 귀족들이 다스리는 고대 로마 제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권력자들에 의해 모든 상황과 여건이 뒤바뀌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의 태도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일이 방해될 수도 있고, 예배와 선교가 잘 이루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이들이 성공하고 잘되기를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주의 복음을 전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들을 하나님께서 잘 다스려주시길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를 통해 경건하고 품위 있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바울의 요청은 오늘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의 모든 상황과 여건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만큼, 우리의 원수는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탄마귀의 전략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온전히 예배드릴 수 있도록 우리의 상황과 형편을 위해, 관계를 위해, 여건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은 단지 권력자의 선택이 아니라 모든 일들이 종합되어져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를 기억하고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예배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캐나다를 다니며 오래된 마을에는 꼭 마을 중심에 교회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중심에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렸던 캐나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예배를 두어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를 인도하는 네비게이션과 같고, 우리에게 나아가게 하는 엔진과 같으며, 우리에게 힘을 주는 연료와 같습니다. 예배를 늘 준비하고, 예배를 늘 지키며, 예배를 위해 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배의 형식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근원이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