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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비밀 (2020.08.14. 금요기도회 설교)

 

디모데전서 3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디모데전서 4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우리는 지난 말씀들을 통해 디모데전서가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라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사역자였습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세우고 3년여를 말씀으로 양육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이 교회를 떠나며 누구에게 에베소 교회를 맡길까 고민하다가 디모데를 세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또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가장 잘 이해하던 바울의 동역자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에베소 지역은 큰 항구였기에 여러 사상과 철학이 번성하였는데, 이단들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역시 이러한 이단들의 공격을 심하게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디모데가 교회를 온전하고 바른 복음 위에 든든히 세우고, 흔들리지 않기를 소망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마음을 담아 디모데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당시 교회를 흔들던 이단은 두 가지 이단이었습니다.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였습니다. 율법주의는 구원을 얻기 위해 구약의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한다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선포하는 각종 규례, 즉 음식을 가려서 먹는다거나, 할례를 받아야 한다거나, 절기를 지켜야 한다거나 이러한 모든 것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이러한 이야기들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바울은 이러한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를 오해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 이전 시대에는 이러한 모든 규례와 규칙을 지키는 것이 필요했지만, 예수님이 오신 후부터는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의 완성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면 된다고 바울을 믿었습니다. 율법은 잠정적이었던 것이요, 예수님께서 온전한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주의는 복음의 자유와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구약의 율법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삶의 결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영지주의는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둘로 나누어서 보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깨끗하고 육체적인 것은 더러운 것이라 믿은 믿음이었습니다. 말씀은 우리가 죄인이라고 고백할 때, 우리의 영혼도 죄 가운데 있고, 육체도 죄 가운데 있다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은 우리의 영혼도 구원하고 육체도 구원하시는 구원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의 영혼도 새로워지지만, 우리의 육체도 새로워져서, 우리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는 구원을 소망합니다. 그러나 영지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구원은 육체는 소멸되고 영혼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몸은 필요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몸으로 하는 이세상의 모든 생활을 불필요하거나 무의한 것으로 여기고, 오직 영혼을 위한 지혜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라 높임을 받는 것이지요.

 

이 율법주의, 영지주의는 모양을 다르지만 결국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것, 영적인 지혜를 깨달아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 이 둘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둘이 분명히 다른 길이기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 것입니다. 율법주의, 영지주의는 결국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높아지게 합니다. 거꾸로 낙담하게 하며 열등감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하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온전한 복음이 우리를 진실로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선포한 것입니다.

 

바울은 앞선 말씀을 통해 이 복음 위에서 교회가 굳건히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배를 온전히 세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예배는 다름 아닌 이러한 복음의 핵심 원리를 깨닫는 가장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부활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예배가 우리를 복음으로 계속 인도하는 것입니다.

 

또하 바울은 앞선 말씀을 통해 복음 위에서 교회가 굳게 서기 위해서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모하고 믿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그 몸을 지탱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각 직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그 은혜와 사랑 앞에서 겸손하게 교회를 섬기고 사랑할 때 교회는 든든하게 서고, 세상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디모데전서 편지를 보낸 바울의 목적을 다시한번 분명하게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14~15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바울은 속히 디모데에게 가서 위로하고 힘을 주고, 복음을 다시한번 선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러 상황 상 에베소 교회에 방문할 수 없었고, 대신 편지를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앞에서 여러차례 이 편지를 쓰게된 목적들을 보여주었지만, 다시한번 분명하게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디에게 하나님의 집, 즉 교회에서 어떻게 목회를 해야할 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의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온전히 설 수 있는 핵심 원리를 다음 16절에서 선포하였습니다.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교회가 이단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으로서 온전히 진리를 세워내기 위해 집중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말씀의 가장 중심, 3장의 마지막 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경건의 비밀입니다.

 

그 분은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시고, 성령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셨습니다. 세상이 그분을 믿었고, 그분은 영광에 싸여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것, 그분의 길을 신뢰하며 따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경건의 비밀입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가 엄격하게 음식을 구별하여 먹고, 엄격하게 절기를 지키고, 엄격하게 종교규칙들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어떤 고상한 철학이나 지혜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 체험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인 권능과 능력을 많이 발휘하는 것도 아닙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그 사랑과 은혜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길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이렇게 낮고 낮은 사람의 자리에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오셔서 죄인들, 병자들, 귀신들린 사람들, 부정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위해 순종하시되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저주의 한복판인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러한 예수님의 길을 의로운 길이라 선포하였습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어떤 종교적 권위와 능력으로 자기를 높이는 일이 아닙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이처럼 지극히 큰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는 사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었는데, 나는 사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사실 하나님과 동행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나에게 찾아오셔서 사랑한다고 말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내 인생을 책임져주시겠다고 말씀해주시는 그 사랑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경건이라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곧 진리입니다. 주님의 용서와 은혜가 곧 진리입니다. 주님의 구원이 곧 진리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성도고, 그 성도들의 모임이 곧 교회입니다. 바울을 이것을 기억하라 선포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그 큰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면, 사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종교적으로 위대해보이고, 훌륭해보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실제 신앙생활하면서도 미묘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구분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주님의 복음에 붙들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적하는 말씀을 이어갑니다. 41~5절 말씀입니다.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1절 말씀에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은 당시 율법주의자들과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던 사탄을 떠올립니다. 네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라. 우리는 또한 예수님을 유혹하던 악마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너를 위해 돌을 떡으로 만들고, 너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을 시험하고, 너의 권세를 위해 사탄에게 경배하라. 결국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것의 중심에 너 자신을 두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들은 신앙생활에서도 너 자신을 중심으로 둘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들은 영적인 지식을 얻음으로 종교적 권위를 얻고자 했고, 율법적인 행동을 통해 거룩한 사람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구원을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지식에 따라 육체의 일을 하찮게 여겼기에 혼인을 금지했고, 율법주의자들은 구약의 규칙에 따라 음식을 가렸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종교적 지혜, 종교적 열정을 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에 불과했습니다. (성경을 100회독 했다, 기도를 10시간씩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반응하지 않는 것, 자기의 죄인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것) 바울은 오히려 이러한 것으로부터는 자유로울 것을 선포하며,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신앙생활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점점 더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겸손해지되 담대해지고, 낮아지되 영광스러워지며, 순종하되 자유로워지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처럼 예수님께 집중하는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성도분 한분 한분도 우리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충만하게 누리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 길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이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매일 새롭게 우리를 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