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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집중 (2020.07.31. 금요기도회 설교)

 

디모데전서 2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지난주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은 예배를 통해 세워지고, 예배를 통해 굳건해진다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율법주의와 영지주의라는 이단으로 위협받던 에베소 교회를 이끌어가는 디모데에게 바울은 예배를 통해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은 세울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 말씀과 마찬가지로 예배에 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바울은 당시 교회를 흔들던 이단이 어떠한 모습으로 예배를 흔들고 있는지를 경고하고,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도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권면하였습니다. 예배는 그때나 지금이나 신앙생활의 핵심이기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참 중요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은 첫 번째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예배가 우리의 우선순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다같이 8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먼저 남자에게 권면하였습니다. 비록 형식상으로는 남자들에게 권면한 말씀이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리 모두를 위한 권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배를 드릴 때에 분노와 다툼의 마음을 버리고 거룩한 손을 주님께 손을 드려 기도하기를 권면하였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영지주의와 율법주의의 이단이 들어와서 교회를 흔드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단이 교회에 끼치는 여러 영향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분열과 다툼입니다. 누가 이단에 들어갔는지 의심하게 되고, 비난과 정죄가 넘치게 되고, 미움과 다툼과 분열이 커져서 결국엔 돌이길 수 없게 무너져 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영지주의와 율법주의를 받아들인 성도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들과 갈등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부터 성도들은 분노에 마음을 빼앗겨 벼렸고, 곳곳에서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와 다툰 후에 예배가 온전히 드려질 리가 없었습니다. 성도들은 예배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은혜를 누릴 수 없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온전히 세우고자 하는 열정에서 시작된 다툼 때문에, 정작 교회의 중심이 되는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보다 예배에 집중하길 원하십니다. 예배가 우선순위입니다. 예배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온전한 충만함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에 앞서 분노와 다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아무리 이단이 마음을 흔들고, 교회가 갈라질 지경에 이르러도 그것을 분노와 다툼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분노와 다툼으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빈대를 잡으려고 집을 모두 불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가라지를 없애기 위해 좋은 알곡마저 없애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를 세우려는 그 노력이 자칫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예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성도는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바울은 분노와 다툼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교회를 세울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께 집중하는 온전한 예배를 통해 가능합니다.

 

예배에 집중할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주님의 말씀과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배에 집중할 때 우리는 주님의 일하심을 느끼고, 모든 것의 주관자가 우리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에는 결국 분노와 다툼이 일어나서 예배를 못드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거꾸로 분노와 다툼을 멈추고 예배에 집중하여 하나님을 경험하면 이 모든 일을 넉넉히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예배에는 이러한 놀라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문제 해결에도 우선 순위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예배를 온전히 드리는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바울은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것을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손을 들어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순전한 마음, 주님 사랑하는 마음, 온전한 마음을 빈 손을 통해 주님께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모든 마음을 주님께 드리고, 집중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온전히 받으시고, 또 그 예배를 통해 우리 가운데 일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능력을 온전히 깨닫게 하십니다. 다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다시 주님의 능력으로 붙드십니다. 성령님께서 주관하셔서 우리를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말씀은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두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문제들을 우리의 힘과 지혜로 풀려고 할때에는 늘 한계가 있습니다. 분노와 다툼이 일어나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무너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흔들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 빈 손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거룩하신 주님께 집중하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것이 더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의 삶의 문제들을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을 둘째로 하나님께 집중하여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검소한 마음으로 나야가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다같이 9~10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바울은 자연스럽게 여자들에게 권면하였습니다. 이 권면은 남자, 여자를 병렬적으로 말씀하는 형식으로 여자에게 했으나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바울의 권면입니다. 말씀은 선포합니다. 여자 성도 분들은 소박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합니다. 머리를 지나치게 꾸미거나 금이나 진주로 치장을 하거나 비싼 옷을 입지 말고 오직 착한 행실로써 단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여자에게 어울립니다.

 

에베소 지역은 참으로 화려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도시의 신도 여신 아르테미스였습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했고, 각자 가진 화려한 장식으로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도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꾸미는 것을 즐겨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검소한 마음을 가질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검소한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검소한 마음은 한마디로 말하면 본질에 집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부풀게 하고, 번잡하게 하고, 교만하게 하는 것들을 절제하고, 가장 중요한 것, 핵심적인 것에 마음을 모으는 것 그것이 검소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잘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바로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입니다. 마크 주커버그는 매일 회색 티셔츠와 청바지만 입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옷장에는 똑같은 옷으로 가득합니다. 심지어 남성 패션 잡지 GQ는 세계에서 옷을 가장 못입는 남자로 마크 주커버그를 뽑았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매일 똑같은 옷을 입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매일 매일 수많은 선택과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침을 무엇을 먹을까? 옷은 어떤 걸 입을까 하는 식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쌓이게 되면 그것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만듭니다.” 주커버그는 불필요한 모든 선택을 없애고, 모든 에너지를 페이스북을 위해 쏟기위해 인생을 최대한 단순하게 산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검소하게 옷을 입으라고 하는 것은 어떤 종교적, 율법적 차원이 아닙니다. 패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옷을 화려하게 입으면 비난하고 정죄하라는 차원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오히려 기쁜 주일날 좋은 옷, 예쁜 옷을 입고 주님께 나오는 것은 어떤 차원에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헛된 데에 쓰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인정과 평판보다는 오히려 주님을 바라보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마음을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이 말씀은 우리의 예배를 전제로 하는 말씀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그 은혜에 집중할 것을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당시 율법주의나 영지주의가 유행했던 것은 그 이단 사상들이 자신의 영적 지헤를 자랑하고, 자기 행위를 자랑하는 이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생활을 통해서 자기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높이는 이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단의 거짓 가르침에 대응하여, 신앙생활과 믿음의 핵심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요, 본질에 집중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배에는 더욱 주님께 집중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분주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각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를 드리러 나오는 순간 만큼은 우리의 마음을 단정하고 소박하게 합시다.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을 내려놓읍시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그 은혜에 집중합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께 집중하는 예배를 드리길 원하십니다.

 

끝으로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겸손한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것을 선포합니다. 11~15절 말씀을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여성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근거가 되는 말씀으로 적용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로마 카톨릭이나 정교회에서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 또 저희 개신교의 몇몇 교단들에서 여성 목사나 여성 장로를 세우지 않는 것도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바울의 다른 말씀, 나아가 성경 전체의 다른 말씀과 함께 비추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공중 앞에서 예언을 하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바울도 이를 인정할뿐더러, 많은 여성 지도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과 함께 동역하였습니다. 아볼로와 같은 지도자들도 여성이었던 브리스가의 가르침을 받아 성장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 루디아와 고린도 교회의 뵈뵈, 유오디아와 순두게 등도 여성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말씀은 조금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당시 에베소 교회에 유행했던 영지주의는 주로 여성들이 주도하여 퍼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지주의에 빠진 여성들은 영적 교만함에 빠져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영적 지혜를 자랑하며, 사도들과 교회의 가르침을 무시했습니다. 영적 지혜를 위해서 결혼과 출산을 포함한 가정 생활의 완전한 포기를 가르쳤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으로 교회는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어려움에 처해있는 에베소 교회에 직접적이고 강력한 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사도와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사탄의 유혹에 빠졌던 아담과 하와의 역사를 기억하십니다. 그때 사탄의 거짓말을 전했던 그 잘못을 다시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결혼과 출산과 가정의 소중함을 기억하십시오. 그것도 구원을 이루어가는 좋은 삶의 방법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무너진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한 가르침을 전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영지주의에 빠진 여성들의 잘못된 가르침은 예배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무엇보다 예배의 질서를 회복하고, 그 가운데에서 온전한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살펴볼 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겸손함을 요청합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고, 신앙의 경륜이 쌓일수록 우리는 더욱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쌓인 지식과 경험이 하나님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하는 벽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내 생각과 내 판단이 우선이 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예배를 통한 새로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어려워집니다.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러한 자기 교만이 높아지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시작하며, 교회를 흔들고 사람들을 낙심시키게 이르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지주의자가 없지만, 영지주의자들이 가르쳐주는 교훈은 우리에게 유효합니다. 신앙은 영적인 지식을 높이 쌓아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깊이 알아 날이 갈수록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믿음의 신비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는 율법주의와 영지주의로 교회가 분열되고 흔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투고, 예배 가운데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였으며, 거짓된 가르침으로 예배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바울은 역설적으로 이 어러움을 이겨내는 길은 예배를 회복시키는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 분노와 다툼을 멈추고 예배에 집중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라. 자기를 드러내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검소한 마음으로 예배에 집중하라. 사도들과 교회의 가르침에 겸손히 순종하며 예배에 집중하라 선포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삶의 모든 문제들 앞에서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상황과 형편 때문에 분주한 마음이 있다면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먼저 예배로 나아갑시다. 또한 사람들의 시선과 나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쓰십시오. 우리의 마음을 소박하고 검소하게 하여 주님께 집중하며 예배들 드립시다. 끝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은혜와 사랑에 낮아진 마음으로 반응합시다. 그렇게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우리 가운데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시고, 우리를 빚어가시며, 우리에게 새 힘과 능력과 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예배가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