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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권한과 책임, 그리고 의무 (2020.09.04. 금요기도회 설교)

 

디모데전서 5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19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25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디모데전서는 그가 온 마음을 다하여 사역한 에베소교회를 이어서 사역하게 된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바울은 무엇보다 에베소 교회가 복음 위에서 온전히 서야 됨을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영지주의와 율법주의에 대해서 경계하고,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를 또한 강조하였습니다. 그것은 예배를 온전히 드리는 것, 사람을 바르게 세우는 것, 교회가 늘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병이 걸렸을 때 잘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이 걸리지 않도록 몸이 튼튼한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사람을 든든히 세우고, 교회의 중심이 늘 예수님이 되도록 힘쓰는 것, 그것이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바울은 이제 목회자가 성도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에 관하여 가르침을 전하였습니다. 먼저는 목회자의 태도에 관하여, 둘째로는 과부를 섬기는 일에 관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오늘 말씀은 가르치는 일을 맡은 장로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장로는 곧 목회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목회자의 권한과 그 책임, 그리고 의무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실 이것은 1차적으로는 목회자가 들어야 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교회 구성원들이 함께 공감하고 공유해야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 안에서 우선은 제가 바로서고, 그 안에서 교회가 온전히 서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첫째로 교회가 목회자를 책임져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다같이 17, 18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를 두배로 존경하십시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겐 더욱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18절 말씀을 통해 그 존경이란 목회자의 삶을 책임져주는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54절 말씀, 곧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전하고 있습니다. 소가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밟아서 그 껍질을 벗기는 일을 할 때에,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남은 겨와 곡식을 먹으면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비유는 일을 시키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바울 사도는 이 비유를 통해 목회자의 삶을 교회가 책임져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9절 말씀에서도 동일하게 이와 같은 말을 선포하였습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목회자가 교회를 통해 재산을 축적하고, 교회를 통해 자기 배를 채우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회자의 것이 아니며, 목회자의 성취의 지표는 더더욱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투명하지 않은 재정과 과도한 권위주의로 자기 배를 채우며, 복음전파의 걸림돌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그러한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말씀 앞에서도 이러한 탐욕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목회자는 늘 교회의 덕을 생각하고, 복음을 생각하여 주님을 먼저 신뢰하고, 교회에 덕이 되는 범위 내에서 그 사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오늘 말씀은 조금 더 깊은 차원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크게 세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목회자가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는 것에는 목회자에 대한 존경과 존중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목회자가 교회로부터 권위를 갖고, 존경과 존중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사실 목회자 개인을 향한 권위, 존경, 존중이 아니라, 목회자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 존중, 경외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목회자가 더 이상 존경스럽지 않고, 가볍고 하찮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선포되는 말씀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때부터는 목회자와 더불어 교회와 우리 자신의 신앙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먼저는 목회자가 스스로 거룩한 삶, 하나님과 성도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 하나님 믿는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 역시 사람이기에 무너지고 쓰러지고 인간적인 약점을 계속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에 무엇보다 내 자신의 신앙을 위해, 교회를 위해, 목회자를 위해 계속해서 의지적으로 존중해주고 존경해주고 사랑해주는 것, 그것이 결국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길입니다. 물론 그 섬김을 목사는 지극한 겸손함과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례에도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삶을 존중하여 섬겨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을 깊이 깨닫고 겸손하게 사례를 받는 것, 그것이 교회를 또한 거룩하게 세워나갑니다.


둘째로 목회자가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는 것에는 목회자와 성도간의 상호 의존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신학자들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다름 아닌 사랑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먹고 마시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은 독립, 홀로, 자급자족, 그러나 말씀은 반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찾아가셨을 때에 사람들은 하나가 되고, 함께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벌였다는 것은 온전히 회복된 사람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교회로 모이는 것은 이러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의존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갑니다. 이것은 네가 없이는 나도 없고, 너를 돕는 것이 나를 세우는 길이며, 너를 사랑할 때 내가 온전해짐을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의 연장 속에서 교회와 목회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는 교회에 주님의 말씀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교회는 목회자의 삶을 책임짐으로서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관계로 얽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얽힘의 관계 속에서 서로가 온전해지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로 자기를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목회자의 교회에 대한 전적인 헌신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신 이수영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는 것은 모든 삶의 시간을 먼저는 하나님께, 그리고 둘째로는 교회와 성도를 위해 드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시간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보내야 하며,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헌신을 드러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목회자에게 사례를 주는 것은 이처럼 모든 시간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해달라는 요청이 담겨져 있습니다. 목회자는 교회에서 사례를 받을 때마다 이러한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시간 속에서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는지를 살피고,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헌신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며, 과연 제가 이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았을 때 그렇지 못한 시간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느꼈습니다. 다시한번 마음을 붙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선포하였습니다.

 

정리하면, 교회는 목회자에게 사례를 줌으로서 목회자에 대한 존중을 고백하고, 목회자는 교회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며, 서로간에 상호 의존의 사랑의 공동체임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같이 목회자를 향한 교회의 섬김을 선포한 후에, 목회자가 가져야할 책임의 엄중함에 대하여 선포하였습니다. 19절에서 22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9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바울은 목회자가 잘못했을 경우에 어떻게 징계해야 하는가에 관하여 선포하였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우선적으로 목회자의 잘못을 따지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신중하지 못한 목회자에 대한 처벌은 교회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에 대한 가벼운 비판이나 신중하지 못한 비판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렸듯, 목회자 개인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에 관한 문제이고, 말씀의 권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존재하고, 말씀의 권위가 필요한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부족함이 눈에 띄었을 때에는 사랑과 섬김으로 감싸 안아주시고, 더불어 기도해주시고, 개인적으로 권면해주시면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소한 잘못이 아니라 명백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그것을 덮고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말씀은 두세사람의 증인이 꼭 필요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증언이 존재하고, 그것이 공동체에 지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복음과 은혜에 걸림돌이 될 때에 교회는 그 문제를 교회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덕으로 문제를 풀어가되,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는 심각한 문제가 될 때에는 그 문제를 엄히 다스려야 함을 말씀은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은 선포합니다. ‘범죄한 사람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라특별히 교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잘못했을 경우에는 그 문제를 공적인 자리에서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범죄한 사람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을 위해서 반드시 징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두렵게 하여 다시는 죄의 길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많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재정적인 문제, 성적인 문제, 갈등과 폭력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때에 교회를 위해, 성도를 위해, 또 목사님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이러한 큰 죄를 덮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실족한 성도들이 넘쳐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여 떠났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덕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성도를 위해 지켜주어야 하는 범위와 분명하게 공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부분을 지혜롭게 구분하지 못할 때 교회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엄히 명한다고 선포합니다. 편견없이 이것들을 지켜라. 아무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아라 선포합니다. 오늘 말씀은 목회자의 잘못을 지혜롭게, 정의롭고 온전하게 처리할 것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22절 말씀은 이러한 잘못을 처음부터 예비하기 위해 안수 자체를 신중하게 할 것과 다른 사람이 죄를 짓는 자리에 참여하는 것을 늘 신중하게 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한 사람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늘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목회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23절에서 25절 말씀입니다.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25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바울은 먼저 23절 말씀에서 위장과 자주나는 병을 위해 포도주를 먹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가 꼭 해야할 의무 가운데 자기 몸을 잘 챙기고 건강 관리를 잘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장목사님도 저에게 인수인계를 하면서 꼭 매일 운동을 하라고 권면을 해주었습니다. 온지 1년이 되어가는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잘 못하다가 이제 집에서라도 하려고 맨몸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목회자의 몸은 자기 몸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몸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 건강한 정신이 나오고 섬김과 사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또한 선한 일에 힘쓰라고 선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선한 일을 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러나 그 선한일을 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선한일은 기억을 건강하게 잘 키우는 일입니다. 수많은 먹여 살리는 것, 그것이 사업이 주는 선한 일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은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한일입니다. 한 사람을 귀한 존재로 키워내는 것, 선한일들을 이루어내는 씨앗을 키워내는 것,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일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존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선을 이루어가는 각각의 방식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선을 행하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말씀을 충실히 준비하는 것, 늘 최선을 다해 기도하는 것, 성도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만나는 것, 공부하고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복음 전파에 힘쓰고,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선한 일입니다. 바울은 죄를 멀리하고 마땅히 해야할 선한일에 힘쓰라 명령하였습니다. 그 선한 일은 주님의 열매로 아름답게 드러나게 될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말씀은 목회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목회자의 권한과 책임, 의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로부터 존중과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목회자를 위한 일인동시에 교회와 성도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랑과 헌신 관계로 얽힌 공동체적 삶이 결국 우리를 진실로 주님 닮은 모습으로 바꾸어 갑니다. 목회자는 자기 자신이 큰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목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감싸주고 품어주고 높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가 분명하고도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엔 그 잘못을 공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모두를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목사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자기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 배우고 섬기고 사랑하고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는 든든히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주일 예배 때에 기도를 할 때에 꼭 목회자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저는 그 기도가 성도와 교회의 상호의존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목회자가 함께할 때 교회는 아름답게 주님의 뜻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이러한 아름다운 전통 위에서 든든히 세워질 수 있도록 늘 기도해주시고, 사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더욱 헌신할 수 있도록 애쓰고 수고하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