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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2020.09.11. 금요기도회 설교)

 

디모데전서 6

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제 디모데전서의 마지막 장인 6장까지 다가왔습니다.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그가 사역했던 에베소 교회를 이어 사역하고 있던 디모데에게 목회적 권면을 담아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에베소 교회에 무엇보다 위협이 되었던 이단, 영지주의와 율법주의를 경계하고 오직 복음 위에서 교회를 든든히 세울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또한 교회를 어떻게 굳건히 세울 수 있는지, 목회자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차근 차근 권면하였습니다. 디모데 전서는 오늘날까지 목회 서신이라 불리며, 교회와 목회자를 위한 좋은 안내서가 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제 성도들이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를 설명하였습니다. 복음에 온전히 붙들려 있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 하나님과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의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교회, 목회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습니다. 또 특별히 이민 사회에서도 보면 저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 데 전혀 모범이 되지 않는다. 저 사람 때문에 교회를 못가겠다 하는 일들도 비일비재로 일어납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오늘날 상황에서 우리가 성경적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세상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 수 있는지, 덕이 되는 삶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함께 말씀을 경청하며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시간 되길 축복합니다.

 

먼저 1, 2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먼저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 덕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이란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다니지 않는 사람 모두를 뜻합니다.

 

오늘 1, 2절 말씀은 노예들, 섬겨야 하는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권면합니다.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사람, 노예로 그 일을 감당하여야 하는 사람들은 자기 주인을 대할 때 깊이 존경하며 섬겨야 할 사람, 공경해야 할 사람으로 여기십시오.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우리의 가르침을 비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노예제도를 긍정하는 말씀이거나 불의한 폭력과 갑질을 다 감내하라는 말씀으로 선포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심지어 우리가 노예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그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유익과 덕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속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우리의 신앙이 무엇인지 무관심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 유익과 자기 즐거움만 있을 뿐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손해 보지 않는 삶, 더 많이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에 훨씬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우선순위로 생각한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불문율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이익보다 중요한 믿음이 있고, 복음 전파의 사명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이러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세상 가운데 선한 방법으로 드러내어 세상을 당혹케 할 것을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종이 어느 날부터 교회를 다니더니 더욱 열심히 일하고, 더욱 충성된 모습을 보이고, 자기 자신을 존경하고 공경하기 시작한다면, 그 주인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놀라움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 관심은 복음전파의 길이 될 것입니다.

 

설사 그 사람이 이러한 반응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복음 안에서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그 사람의 삶을 우리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을 말씀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의 노력과 애씀을 통해 주님께서 반드시 열매를 거두실 것이요,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 자체로 점점 더 예수님 닮아가는 큰 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삶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고, 복음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교회 이름으로 밖에서 하는 모든 행사들에서 조심해야 하는 이유, 교회가 사회를 섬기고 조심해야 하는 이유, 택시 잔돈, 더 나누어 주는 삶)

 

2절 말씀은 특별히 믿는 상전을 섬기고 있는 종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믿는 상전을 형제라고 여겨 가볍게 여겨서는 안됨을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오히려, 같은 믿음을 가진 주인을 모실수록 더욱 잘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섬김에서 이익을 얻는 이들이 동료 신도요,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노예 중에서 몇몇은 주인과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태만히 일하고, 같은 성도됨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태도가 옳지 않은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렸을 때 교회에서는 요람을 만들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요람에 보면 여러 사업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교회 성도가 하는 사업체를 이용하기도 하고, 서로 서로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한 마음, 도움을 주려는 마음으로 그 요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유익을 위해 그 요람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같은 성도니 깎아줘야 하고, 때때로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하고 하면서 자기 배를 채우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상대방의 믿음과 사랑을 이용해 자기 배를 채우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요,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일입니다. 말씀은 이와 반대로 선포합니다. 같은 믿음 동역자들을 위한 일이면 더 많이 주고, 더 많이 섬기십시오. 그렇게 해서 상대방에게 더 많은 이익과 유익이 남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성경적인 것입니다.

 

1절과 2절에 나타난 바울의 권면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덕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고, 믿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움을 받고자 한인교회에 오는 문화에 익숙해져서는안됩니다, 킴스 컨비니언스) 작은 일에서부터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같이 3~5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다른 교훈을 따르는 것을 조심하라 경고합니다. 그 교훈은 앞서 말씀드린 영지주의와 율법주의입니다. 이 두 교훈의 공통된 특징은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영지주의는 영적인 지혜를 깨달았다는 교만함이요, 율법주의는 신앙적 열심이 있다는 교만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깊은 지혜가 있어도, 아무리 열정적인 신앙이 있어도 그 안에 교만함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길은 순종의 길, 겸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훈에 빠진 사람들은 세상의 눈으로 보이기에 거룩해보이고, 위대해보일수 있어도 그것은 주님과 거꾸로 가는 길이 됩니다.

 

이처럼 교만한 신앙에 빠진 사람은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자기 비움, 헌신, 사랑, 그 깊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4절 말씀은 그러한 사람은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라고 선포합니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보여도 정작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지혜를 드러내고 자기 열심을 자랑하기 급급합니다. 다른사람과 논쟁하고 말다툼하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을 통해 자기 지혜를 뽐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열심을 자랑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기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질투하고, 다투기까지 합니다. 그를 깎아내리고 그를 해치려는 악한 생각까지 합니다. 마음이 점점 부패해지고 정작 중요한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맙니다. 능숙한 종교인이지만 예수님과는 상관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에 관하여 말을 많이 하는 것, 신앙과 교리에 관하여 자기 생각을 늘어놓는 것, 자기 신앙의 연륜과 경륜을 자랑하고, 자기 열심을 드러내는 것,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주 미묘한 것인데, 그 영적 구분을 섬세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면 그 사랑위에 힘입어서 고백과 나눔이 늘어납니다. 심지어 때때로 비판적인 생각들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 사랑이 있다면 이것은 우리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그런데 때때로 많은 경우에 우리의 이러한 말들이 우리 자신의 교만함이나 냉담함에서 비롯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말들은 가장 먼저 자기 영혼을 해치고, 곁에 있는 성도를 해치고, 교회를 해치게 됩니다. 교회에 관하여. 성도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가 있는 자리에서 악한 권세가 활발하게 일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교만함과 죄악은 늘 그렇게 숨겨진 채로 우리 안에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섬세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기 이익만이 남게 됩니다. 자기의 교만함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가 싫어하는 누군가를 깎아내리기 위해,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교회를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경계할 것을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이것을 경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고,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이, 함께하는 성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그와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끝으로 6~10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셋째로 그리스도인 자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경건, 곧 주님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자족은 매우 큰 도움을 줍니다. 말씀은 우리 인생의 본질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돌아갈 때에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공수래 공수거인것입니다. 그렇기에 무엇인가 쌓아두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결국 썩어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저 우리에게 오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면 자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에 집중하고, 감사하고, 자족하라는 것입니다. 탐욕으로 삶을 망가 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9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은 더욱 분명하게 탐욕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선포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게 되고, 올가미에 걸리게 되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서 파멸과 멸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돈이 주는 매혹이 너무나 크기에, 돈에 마음이 빼앗겨 버리게 되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유혹과 함정도 바라보지 못하게 되고, 죄악과 불의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게 되며, 결국 믿음을 떠나기도 하고, 삶이 고통으로 떨어져 버릴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족하는 삶을 자칫 잘못 오해하면 나태한 삶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이만큼 먹고 입으면 됬지, 더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죄악이야. 이렇게 생각하며 나태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나태한 것 또한 악한 것이라 말씀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10절에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청지기와 같이 우리가 속한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고,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한편으론 언제나 탐욕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두 절벽을 경계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주님께 주목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 우리는 자족하며, 동시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매일의 경건의 삶입니다. 경건의 삶을 통해 주님을 주목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진실로 자족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고,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셨음을 기억하고, 그 기억 위에서 오늘 하루도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을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탐욕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주님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 먹는 것, 입는 것, 살아가는 것 모두 주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저는 이것을 감사함으로 받고 이것으로 충분함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 믿음 위에서 제가 모든 일을 할 때에 나의 유익과 탐욕을 위해 일하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제가 일하는 이 모든 삶의 애씀이 주님의 부르심과 주님의 역사하심의 통로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이 주님과 이웃을 위한 길, 거룩함과 주님의 영광이 되는 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이제 정리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는 방법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 곧 진리대로 사는 방법입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 덕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가는 곳마다 헌신된 사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을 볼 때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둘째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의 종교적 지식이나 신앙적 열심은 자기를 높이는 데에 사용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겸손한 사랑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바라봄으로서, 이 겸손한 사랑으로 예수 향기를 나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탐욕을 멀리하고 자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만 이것은 나태함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주목하고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 주님께 대한 감사와 자족, 나아가 주님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을 통해 열매를 맺어가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열매는 없고 입만 무성한 나무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굳게 붙들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알찬 열매를 나누어주는 큰 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