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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또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예수님을 늦은 밤에 방문하였습니다. 예수님께 예수님의 정체와 그의 사역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진리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놀라운 대답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니고데모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대답이었습니다. 아니 이해조차 하기 힘든 대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새롭게 태어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 필요함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사실 니고데모는 표적에 집중했습니다. 당시의 메시아사상을 알고 있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의 기적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모세나 다윗,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사람으로서의 예수님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능력 많고 위대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니고데모의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정체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사역이 어떤 의미인지, 진리와 구원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할 것을 정확히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듭나야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곧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하나님이시고, 그의 사역은 예수님께서 하나님되심을 드러내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이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사람이 스스로 죄인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온전히 내려놓고 오로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영생의 길임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야에서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인 모세의 뱀을 보았을 때 병이 나았던 것처럼,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았을 때 온전한 영생의 진리가 사람을 살릴 것을 의미합니다. 니고데모는 아직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우리에게 그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붙잡고 나아갈 것, 그것은 복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