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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의 회복 (2020.10.16. 금요기도회 설교)

룻기 2장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룻기 3장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벌써 룻기의 네 번째 말씀입니다. 지난 이야기들을 혹시 기억하시고 있나요? 우리가 매번 말씀을 듣지만, 생각보다 우리 마음가운데 남는 말씀은 많지 않습니다. 듣고서 한주간 바쁘게 살다보면 들었던 말씀들이 바람에 날리듯 다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복습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매주 이렇게 말씀을 이어서 하는 말씀의 장점이 다시한번 말씀을 회상할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들은 것을 또 듣고, 되새기고 하다보면 결국 말씀이 새겨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함께 나누었던 말씀들을 잠시 곱씹어보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룻기는 이름의 뜻이 참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룻기의 주인공 ‘룻’의 이름뜻이 무엇이었나요? 맞습니다. ‘친구’입니다. 룻기는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첫 번째 친구는 바로 ‘룻’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앞서 나누었듯, 나오미는 사람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아픔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 엘리멜렉과 함께 사사시대에 베들레헴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가장 죄악이 가득했던 시절, 가장 죄악이 많았던 마을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삶 자체가 고난 가운데 있는 삶이었습니다. 그 베들레헴에 기근이 닥쳤습니다.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없었던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모압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모압에서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죽은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이제 며느리 둘만이 남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삶, 가장 큰 슬픔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 그녀의 삶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기쁨’이라는 뜻의 나오미가 아니라 ‘고통’ 이라는 뜻의 마라라 불러 달라고 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그 순간에도 소망은 있었고, 깊은 어둠 안에 둘러 있던 그 순간에도 등불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녀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룻이었습니다. 룻은 이방여인이요, 나이도 아직 어린 여성에 불과했지만 끝까지 나오미의 등불이 되어 주었습니다. 제가 룻기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 강의를 들었는데, 그 중에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해준 비유가 있는데 탁월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50CM의 원을 그려놓고 이렇게 서 있으라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원 밖이 까마득한 절벽이라 하면, 우리는 당장 서있는 것 조차 두려워서 주저 앉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외에 비어 있는 땅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옆에 있어주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큰 힘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런 존재로 창조하셨고, 우리 안에는 그러한 힘이 있습니다. 나오미는 룻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은혜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그것은 신실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을 통해 나오미를 위로하시고, 나오미를 세우고, 회복하였습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두 번째 ‘친구’는 보아스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자기 밭에 찾아오자 그녀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모압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이곳에 와서 그녀를 돌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룻의 태도를 참으로 귀하게 여기며, 그녀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습니다. 그녀가 마음 편히 곡식을 주워갈 수 있도록 일꾼들에게 말해주었고, 일부러 곡식 다발 중 일부를 남겨주라고까지 명령했습니다. 그녀를 식사자리로 초대하였고 볶은 곡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태도가 바로 ‘환대’입니다. 성경은 여러차례 이 ‘환대’의 중요성에 대해 잘 전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텃세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이 아닙니다. – 소돔과 고모라, 유대인, 바리새인) 아브라함은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융숭하게 대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환대의 정신이 그를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이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고난 받고 환란 속에 있는 이를 보살피는 것이 제사나 예배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대접하는 것이 나를 대접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말씀은 정말 수십 차례에 걸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의 핵심 윤리는 이처럼 소외된 사람, 연약한 사람,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한 식구로 받아주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이러한 말씀의 정신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여인이요,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여인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고, 민망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그녀를 도와주었고, 기꺼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주었습니다. 그녀의 헌신과 공헌을 귀한 것으로 여겨주었고, 그녀의 존엄성을 높여 주었습니다. 나오미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룻은 보아스를 통해 새로운 위로를 얻게 되었습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세 번째 ‘친구’는 우리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충실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던 나오미에게 귀한 친구 룻을 보내주셔서 도우신 이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나오미와 룻에게 돕는 사람 보아스를 만나게 하신 이가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그들이 만난 것은 우연처럼 보일지라도, 말씀은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고, 풍성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길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은 진정한 친구가 우리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것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룻처럼 고난당한 이와 함께 있는 것, 보아스처럼 고난당한 이들을 환대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룻기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핵심 가르침입니다. 룻기는 친구란 무엇일까, 은혜가 무엇일까를 우리에게 곰곰히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이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룻은 보아스의 환대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보리를 무려 한 에바 가량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대략 18KG 정도 되는 양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집에서 보니 40파운드짜리 이천쌀 한포대가 18.14KG이었습니다. 그정도의 보리를 가지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녀는 또 배불리 먹고 남은 볶은 보리까지 가져왔습니다. 말씀에서 배불리 먹고 남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먹을 것이 없어 이곳 베들레헴까지 돌아왔는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통해 풍족한 복을 이들에게 허락해 준것입니다. 나오미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와 같은 환대를 해준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오미는 이 모든 것을 누가 주었는지 물었습니다. 룻은 이 모든 것을 ‘보아스’가 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나오미는 이 모든 상황을 지혜롭게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는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나오미가 보기에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나오미와 룻에게 은혜를 베풀었을 뿐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로 돌아간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었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의 은혜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였습니다. 나아가 나오미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음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녀가 보기에 이러한 그의 환대와 친절은 두가지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환대와 친절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요, 온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또한 더불어 그의 환대와 친절이 룻을 향한 그의 마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친족으로서 우리 기업을 무를 사람이라 고백함으로 그러난 그녀의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뜻은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샀다가 그 물건을 취소할 때, 나 무를래 이런 표현을 씁니다. 장기나 바둑을 두다가 실수했을 때 나 한번만 물러줘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무엇인가를 취소하고 되돌리는 것을 무른다라고 표현합니다. 기업은 중소기업, 대기업 이런 뜻이 아니라 유산이라는 뜻입니다. 유산에는 물건이나 부동산도 있지만, 빚도 있습니다. 그래서 빚만 물려받으면 상속 포기를 하는 것입니다. 기업을 무른다라는 뜻은 빚을 취소하고 되돌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빚을 졌을 때, 그 가족을 대표해서 빚을 대신 갚아주는 사람을 기업을 무르는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누군가가 빚 때문에 노예가 되었을 때 그 가족을 대표해서 빚을 갚아주고 노예에서 해방시켜주는 사람도 기업을 무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을 때 복수해주는 사람도 기업을 무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아가 과부가 된 미망인을 거두어주고, 그녀와 결혼해주는 사람도 기업을 무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남은 생을 책임져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온 가족을 책임져 주는 사람이 기업을 무를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이러한 기업을 무를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룻에게 호의와 사랑을 갖게 된다면 그야 말로 남은 여생을 책임져 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처럼 환대하고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을 보고, 나오미는 이 모든 상황을 지혜롭게 이끌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껏 룻이 나오미의 친구가 되어 준 것처럼, 이제는 나오미가 룻의 친구이자 조언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된 것입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앞으로는 소녀들과만 함께 다닐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밭에는 가지 않을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때가 이를 때까지 혹시 있을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한 것입니다. 룻은 이러한 시어머니의 권유를 충실히 따르며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보리 추수와 밀 추수 기간 사이의 두달정도를 그렇게 보낸 것입니다. 밀 추수가 끝나자 나오미는 좀 더 적극적으로 룻에게 조언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오미의 조언은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었습니다. 룻기 3장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룻기 3장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나오미는 룻에게 권유하였습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해 행복하게 살만한 안락한 가정을 찾아보아야 하겠다. 네게 계속 함께 했던 하녀들의 주인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다. 그가 오늘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키질할 것이다. 오늘이 기회가 될 것 같다.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발라 단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숨어서 그를 기다려라. 그가 먹고 마시기를 다 마치고 그가 눕는다면 너는 그가 누운 곳을 봐뒀다가 들어가라. 그리고 그의 발치를 들고, 그의 곁에 누워라. 그가 다음에 할 일을 너에게 알려줄 것이다. 시어머니였던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와 잠자리를 가질 것을 권유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다 똑같습니다. 자기 아들의 며느리였던 룻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오미는 진심으로 룻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복을 누리기를 원했으며,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했습니다. 아직 상황을 잘 모르고,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모르는 룻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하여 그녀를 보아스의 아내로 맺어주려 한 것입니다. 룻이 나오미의 친구였던 것처럼, 나오미가 이번엔 룻의 친구가 되었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나오미는 사실 이제껏 늘 의기소침하고 절망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소망을 찾을 수 없어서 늘 낙담하고 슬퍼하였습니다. 자기 이름을 마라라 부르라 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셨다 자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며느리들에게도 시어머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모습만 보였습니다. 이곳 베들레헴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그녀가 아니라 며느리 룻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의 사랑, 보아스의 도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오미의 마음 속에 새로운 소망을 불어 넣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 안에 사랑을 회복되었고, 그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그녀도 알지 못한 채 서서히 슬픔과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놀랍게도 계속해서 ‘나오미’라 불렸던 그녀가 마침내 ‘시어머니’ 나오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어른으로서 그녀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룻기 말씀 속에 나타난 네 번째 친구는 ‘나오미’입니다. 말씀은 절망 속에 있었던 사람을 건져내어 결국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녀와 함께하는 룻이 있었고, 그녀를 도와주는 보아스가 있었으며, 그녀의 삶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속에서 그녀는 다시 기쁨을 회복 할 수 있었고, 새롭게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회복되자 그녀는 어른으로서 지혜를 나누게 되었고, 하나님의 귀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새벽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친구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누군가의 친구로 불러주셨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곁에 서서 함께 있어 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따라 누군가를 도와 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또 때로는 친구가 되기 위해 우리의 친구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이 회복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절망적인 시대, 슬픔이 가득한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소망을 드러내시며, 믿음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 상태입니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회복되고, 나아가 복을 나누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