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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 (2020.11.20. 금요기도회 설교)

 

야고보서 1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지난 주 말씀에서 나누었듯이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동생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 사도가 온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신앙의 권면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권면하였습니다. 야고보서는 신앙의 실천을 강조하며,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지난 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시련과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전하는 야고보 사도의 권면을 들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고난이 우리를 결코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면 고난은 우리에게 시험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온전히 세우는 기회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을 인내로 버텨내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라 선포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진정한 시험은 욕심이라 선포하였습니다. 달콤한 유혹처럼 다가오는 욕심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우리의 삶을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라 말씀하였습니다. 상황과 형편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높아졌다고 자랑하지 말고, 낮아졌다고 낙망하지 말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라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구체적으로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 곧 경건한 삶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말씀이 상황과 형편을 어떻게 살펴야 하는지, 삶의 시험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에 관한 말씀이라면, 오늘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26, 27절 말씀을 먼저 봉독하겠습니다.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이 사람은 경건한 사람입니다 할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우리가 흔히 하는 오해는 경건한 삶을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신앙생활로만 한정시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열심히 읽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찬양을 들으며 감격하고, 우리의 삶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동과 감격을 경험하고, 이러한 내 삶속에서 느껴지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들만을 경건 생활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하거나, 기도를 못하거나, 말씀을 읽지 못하거나 그럴 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지 못한 삶을 산다고 자책하곤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경건한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없이 경건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이러한 것들과 함께 우리의 경건을 보여주는 것은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우리의 이웃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웃에게 선한 말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 곧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자기를 거룩하게 지켜내는 것, 그것이 경건이라 선포한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시련과 환란 가운데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한 뒤, 바로 이어서 이웃과의 관계를 최우선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경건이 진짜 경건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고백할 때 그 고백은 여러 가지의 의미가 될 수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첫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단했다는 의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구체적인 예로 오늘 말씀 19절에서 20절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야고보 사도는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십시오. 또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마십시오. 화를 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정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은 단순히 좋은 리스너가 되어라, 말을 줄여라, 화를 내지 말아라 하는 겉모습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 인간이 가진 죄된 본성을 깊이 살피고, 그 본성대로 관계를 맺는 모습을 돌이키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죄를 살펴보면, 인간의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것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판단, 자기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죄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기준을 절대화하려는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죄성은 우리의 이웃과의 관계에 그래도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 눈의 티는 지적하는구나.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조롱하고, 심지어 혐오하는 죄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깊이 해아려보기보다는 내 관점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그 사람 입장이 되어보기보다는 내 입장만을 고수하는 어리석은 존재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죄성을 가진 존재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 선포한 것입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그저 겉으로 잘 듣는 모습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입장, 그 사람의 삶, 그 사람의 아픔, 그 사람의 고민 이러한 것들을 헤아려 주는 것을 뜻합니다. 겉으로 잘 듣고 있으면서, 속으로 하나하나 판단하는 것은 결코 잘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 사람의 자리에 서서 함께 들어주는 것 그것이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내 기준, 내 입장, 내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들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경청입니다.

 

더디 말한다는 것은 그저 말을 하지 말아라는 것이 아닙니다. 더디 말하라는 것은 불필요한 말, 내 기준대로 판단하는 말, 상대를 정죄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을 하되,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겸손과 온유함을 가지고, 꼭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말입니다. 선한 말, 위로하는 말, 사람을 세우는 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은 우리의 죄된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다스림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관계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화를 내게 될 때, 우리는 때때로 우리 자신을 통제할 수 없고, 하나님을 생각하기는 더더욱 어렵게 됩니다.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던 우리의 죄성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악한 권세가 우리의 분노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본성대로 분출한다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화를 내지 말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시편 378편은 분노가 악을 만든다고 말씀합니다. 잠언 14장 말씀은 분노를 더디하는 것이 명철한 일이다 말씀합니다. 잠언 16장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고 선포합니다. 에베소서 426, 27절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이처럼 분노를 주의해야 하는 것은 성경의 일관된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 안에서 경청하는 삶과 귀한 말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분노는 그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경건한 삶이란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그 사람의 입장을 잘 들어주고, 내 판단과 정죄를 절제하며, 관계 안에서 주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는 삶입니다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야 할까요? 우리는 21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우리가 모든 우리의 죄성을 내버리고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기 위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여러분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귀를 가진 것은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혀를 가진 것도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연약함과 부족함, 여러분의 죄와 한계가 여러분을 매번 듣는데에 실패하게 하고, 말하는 데에 실패하게 하며, 화를 멈추는 데에 실패하게 합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말씀, 구원의 말씀, 권면의 말씀, 견책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주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되돌릴 때 우리는 조금씩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변해간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진정한 경건이란 그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뿐 아니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라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고백하는 말씀에 온전히 서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아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요, 이 두면이 함께 이루어질 때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두면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를 이어지는 말씀에서 선포합니다. 그 핵심은 실천입니다. 22~25절 말씀입니다.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 사도는 선포합니다. 말씀을 듣기만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생각없이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오늘 내 외모가 이렇구나 생각하지만, 실제 하루종일 자기 얼굴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이처럼 말씀을 들을 때에만 아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지 생각하고, 실제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으면 말씀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말씀을 그저 귀로 듣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하나라도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복을 받는 사람이요, 진정으로 말씀을 체화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습관을 몸에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이 6개월이라 합니다. 꾸준히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것, 몸으로 말씀을 듣는 것, 그것이 진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말씀은 우리에게 경건한 삶을 살 것을 요청합니다. 경건한 삶이란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곧 이웃의 입장에서 설줄 알고, 판단과 정죄보다는 이해와 포용으로 감싸는 삶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같이 연약한 이들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진실로 듣는다는 것은 그저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은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들은대로 실천하여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고, 포용하고, 경청하고, 돕는 삶을 사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경건의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러한 경건한 삶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작은 예수님이 되어 우리의 이웃을 진실로 품고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의 자리로 나오시고,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의 결단을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실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 향기 드러내고 빛과 소금의 삶이 되며 복을 나누는 귀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