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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부터 오는 지혜 (2020.12.18. 금요기도회 설교, 야고보서 3:13~18)

 

야고보서 3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오늘 말씀은 지혜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보면 지혜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시험지에서 나오는 문제는 정답이 딱 있지만,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는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여러 선택의 갈림길을 만납니다. 그 갈림길 앞에서 여러 가능성들을 생각해보고, 그 가운데에서 더 나은 길, 더 좋은 길을 고심하며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을 알 수도 없고, 또 일이 진행되는 모든 변수를 다 파악할 수 없기에 늘 선택 앞에서 두려움과 어려움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순간순간마다 지혜가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어떤 선택을 하고 결단을 할 때마다 그저 그 일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넘어서 이 선택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인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인지 아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을 담은 세상의 지혜를 넘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치관을 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 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붙잡고 그 지혜로 삶의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이 가장 좋은 길, 가장 빠른 길, 가장 유익한 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명분으로나 실리로나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을 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분명한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해야할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은 이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야고보서 말씀은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사도가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보낸 편지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큰 어른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하는지 그 구체적인 신앙의 태도를 가르치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야고보서 3장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지난주에 함께 나눈 말씀 야고보서 31~12절 말씀을 통해 교회 지도자는 말을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 혀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고, 말로 일으키는 분쟁을 조심할 것을 엄중히 가르치신 것입니다. 오늘은 그 말씀에 이어서 교회 지도자는 마땅히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이끌려고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지혜들이 솟아나오게 되는데, 그 지혜를 모두 따르지 말고, 그 지혜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헛된 것들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잘 구분하고,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따를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권면은 비단 교회 지도자들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13절부터 16절까지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5절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요, 또 다른 하나는 땅의 지혜, 정욕의 지혜, 귀신의 지혜입니다. 지혜라고 하여 다 같은 지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지혜는 그 열매를 통해 확연히 구분됩니다.

 

13절 말씀은 선포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와 총명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그의 선행으로 그 지혜와 총명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참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온유함으로 그 행실이 드러납니다. 야고보 사도는 참된 지혜와 총명은 공동체를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로 온전히 이끄는 데에서 드러난다고 선포합니다.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매어 덕을 이루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바로 참된 지혜와 총명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지혜가 있습니다. 14절 말씀은 이러한 악한 지혜를 가진 사람을 설명합니다. 이 사람은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 원어를 찾아보면 아주 강한 질투심과 이기적인 야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마음, 교회와 공동체의 덕을 세우고 이웃을 섬기기 보단 자기가 높아지기 위해 모든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거짓 지혜, 거짓 총명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중심성에 사로잡힌 사람은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로 나아가게 됩니다. 말씀은 이러한 지혜를 땅의 지혜, 정욕의 지혜, 귀신의 지혜라 선포합니다. 곧 세속 문화에 물든 지혜요, 육체적 욕망과 감정에 빠져있는 지혜요, 악한 영에 사로잡힌 지혜인 것입니다. 16절 말씀은 이러한 시기심과 야망으로부터 시작된 지혜는 결국 혼란과 온갖 악한 일을 가져올 뿐이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먼저 오늘 말씀이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선포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시기심과 야망이 주님의 일에 개입될 때가 있음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지혜, 욕망을 위한 지혜, 악한 권세로부터 오는 지혜가 마치 하나님의 지혜인 것 마냥 둔갑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일 모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이러한 질투와 야망으로 교회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교회를 바라보면서 교회의 규모와 재정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경쟁과 성장만을 마음에 둔다고 생각해 봅시다. 만일 교회 지도자들이 자기 교회와 다른 교회를 늘 비교하면서, 아 저 교회는 크고 재정도 많고, 성도도 많은데 하면서 질투와 시기심으로 교회을 운영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또 우리 교회가 밴쿠버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겠다는 야심으로 교회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게 교회의 초점이 맞추어지는 순간, 그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사라지고, 오직 세속적인 지혜와 욕망과 탐심을 위한 지혜, 악한 권세에 이용당하는 지혜만이 교회에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고 그것이 교회의 중심이 되는 순간, 질투와 야망이 교회의 핵심가치가 되는 순간, 그 교회 공동체 안에는 분란과 악한 언행이 멈추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늘의 지혜를 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핵심가치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와 사랑이 그 교회를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사랑 가운데 드러나는 온유함과 겸손함, 섬김과 사랑의 교제가 교회를 이끄는 지혜이자 덕목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자리에서 적용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 사람들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앞서 나눈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곧 세속 문화에 물든 지혜요, 육체적 욕망과 감정에 대로 사는 지혜요, 악한 영에 사로잡힌 지혜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지혜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기준,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또한 내 곁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을 기꺼이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주님의 뜻을 드러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대로 살기를 결단하고, 또 그렇게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17, 18절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말씀은 선포합니다. 참된 지혜는 첫째로 성결합니다. 성결하다는 것은 거룩하고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참으로 거룩해지고 깨끗해지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 안에 모든 죄를 사함받으며, 그 참된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합니다. 모든 세상 유혹을 넘어서서 진리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바로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참된 지혜는 화평을 이룹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이웃과의 온전한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화평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이웃과의 화평을 이룹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 안에 거하는 사람은 교만과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욕심과 자기 유익을 내려놓고, 기꺼이 이웃을 품고 섬기고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때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주님이 주시는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참된 지혜는 관용을 이룹니다. 관용이란 법을 넘어서는 은혜를 아는 마음입니다. 관용 역시 복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 앞에서 우리는 범죄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죄인된 우리의 운명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법을 넘어서는 사랑과 용납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이웃에게 관용을 베풉니다. 용서 받은 자로서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큰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로 참된 지혜는 양순을 이룹니다. 양순이란 순종하는 태도, 특별히 마음을 열어 들어주고 설득되어 주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슬픔과 애통, 우리의 연약함과 심지어 우리의 죄까지도 다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들어주는 것에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마음을 깨달은 사람은 이제 거꾸로 들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먼저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뜻을 기꺼이 따르는 사람이 됩니다. 나아가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처럼 그들 가운데에 들어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품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듣는 마음이 곧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다섯째로 참된 지혜는 긍휼과 선한 열매를 이룹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 긍휼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가 주님을 알지 못했을 때부터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우리의 눈물과 아픔을 바라보셨고, 우리의 애통함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셨고, 우리를 만나 주셨으며,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처럼 내 곁에 있는 이들도 똑같이 긍휼이 여김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긍휼이 여길 뿐 더러, 나아가 그들을 돕는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말씀은 이와같은 긍휼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늘의 지혜라 선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지혜는 편견과 거짓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바라볼 때에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여인도, 어린이도, 이방인도, 나병환자도, 세리도, 창녀도 모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어떤 위선도 없이 진실되게 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놀라운 사랑, 편견과 거짓이 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 기준과 판단에 따라, 자기 유익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만, 오직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있는 모습 그대로 진실되게 우리를 대하십니다. 주님의 이 큰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님을 닮아 편견없는 사랑, 위선 없는 진실된 사랑을 드러냅니다. 말씀은 이러한 사랑을 가진자를 하늘의 지혜를 가진자라 선포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결국 하늘의 지혜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알고, 그 사랑안에 온전히 거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늘의 지혜를 갖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르기에, 하늘의 참된 지혜를 모르기에, 그저 세상의 방식, 정욕의 방식, 심지어 악한 권세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진리이시며, 우리의 참된 주님이시오, 온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며, 또 우리 주님이 그 방식대로 살아가실 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8절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하늘의 지혜로 살아갈 때, 그 곳 가운데 하나님의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화 속에서 정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지혜만이 우리에게 정의를 이루어 준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질투와 야망의 자기 중심성이 사라지지 않은 지혜는 결국 우리에게 혼란과 악한 일들만 가져다 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지혜로 살아간다면, 그 가운데 온전한 관계의 회복과 더불어 진정한 정의가 회복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중심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주목하고, 그 복음으로 흘러나오는 지혜에 우리의 삶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에 따라 성결과 화평, 관용과 양순, 긍휼과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정의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