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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말 (2020.12.11. 금요기도회 설교, 야고보서 3:1~11)

 

야고보서 3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동생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 사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권면의 편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에 합당한 모습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여러 주제에 걸쳐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야고보 사도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각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만나게 되는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를 심도있게 다루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면, 성도로서 시련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성도가 조심해야 할 진짜 시련은 무엇인지, 성도의 지켜야할 경건은 무엇인지, 교회 내에 빈부격차와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믿음과 행함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여러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야고보 사도는 구체적으로 그 길을 설명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도의 말, 특별히 교회 안에서 교회를 이끄는 교회 지도자의 말에 관한 말씀입니다. 당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아직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역사가 아주 짧은 공동체들이었습니다. 어떤 공동체나 집단의 역사가 짧으면, 그 공동체를 세워가는 과정 속에서 아주 많은 말들이 쏟아지기 마련입니다. 공동체에 참여한 사람마다 서로 각자의 생각이 있고, 그 생각과 의견을 공동체의 방향으로 정하려는 의견과 말들이 난립하는 과정을 겪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 말들은 공동체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말들로 인해 공동체가 흔들리기도 하고 분열되기도 하고, 심지어 무너지게 되기도 합니다. 이제 갓 시작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도 당연히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습니다. 기독교 교회 내에서 신학과 전통이 확립되고, 적어도 모든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 생기기 전까지 최소 300여년 이상 이러한 문제는 계속 되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을 조심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을 예쁘게 해야한다. 고운말을 써야 한다는 뜻을 넘어서서 그 말과 연결된 생각, 그 생각을 전하는 일에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말이 담고 있는 잘못된 생각이 복음을 왜곡할 수도 있고, 사람의 영혼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12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야고보 사도는 선포합니다. 저와 같이 교회의 지도자들, 교회의 가르침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책임의 엄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잘 못된 생각, 잘못된 가르침, 잘못된 말을 하게 되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로 인해 큰 심판을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말과 가르침을 조심하고 함부로 선생이 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초대 교회에는 수많은 이단들이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도 난립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많은 지도자들과 선생님들이 자기 생각과 자기 주장을 마치 예수님의 뜻처럼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에서 아직 교회의 역사가 짧고, 공동체의 역사가 짧은 곳에서는 신학이 튼튼하지 않아서 잘못된 가르침이 전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오늘날 중국 교회, 아프리카 교회 이런 교회들은 교회가 크게 성장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충분한 역량을 갖춘 교회 지도자가 아직 없어서 잘못된 가르침과 이단 때문에 큰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상황을 염려하면서, 교회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자신의 말과 생각을 살필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 모두가 실수가 많은 사람들이니 겸손해야 하며, 교회 지도자들은 늘 겸손해야 함을 선포합니다. 말을 하기 전에 실수가 없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요, 그 가르치는 일에 앞서 배우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몸을 고치는 의사도 오진을 하고, 잘못 치료를 하면 생명을 위태롭게 하기에 늘 배움에 힘쓰고, 치료할 때 모든 최선을 다합니다. 영혼을 다루는 이들은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일에 겸손함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3절부터 5절 전반부까지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야고보 사도는 말의 중요성을 선포하면서, 말의 힘에 대하여 선포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타고 다니는 말과 배를 비유하여 말이 가진 힘을 선포하였습니다. 말은 아주 힘이 센 동물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말을 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아주 작은 힘으로 말을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그것은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작은 재갈을 통해 그 큰 말을 다룰 수 있는 것입니다. 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는 아주 큰 이동수단입니다. 큰 바람의 거대한 힘을 통해 움직입니다. 만일 사람이 힘으로 밀어서 배를 움직여야 한다면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큰 배가 작은 키를 통해 사공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말의 재갈과 큰 배의 키 모두 아주 작은 것으로 크고 힘센 것들을 움직이는 것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의 혀가 이와 같은 힘을 가졌다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 말의 힘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먼저는 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 지를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귀한 가르침 하나가 어떤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도 합니다. 적절한 순간의 위로와 사랑의 말이 사람의 생명을 가르기도 합니다. 말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창조하고, 말은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하며, 말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합니다. 거꾸로 말 하나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생이 완전히 틀어지기도 하고, 관계가 무너지기도 하며, 심지어 영혼이 파괴되기도 합니다. 말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매우 힘이 세다는 것을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교회 지도자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교회 지도자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포된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신 입술을 가지고 고백하고 나누고 가르치고 배우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말은 힘이 세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말씀속에 새기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실 때에, 우리에게 창조의 능력을 가진 입술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오직 사람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 창조된 뒤에 모든 생물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주는 모습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허락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입술을 하나님의 선한 일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는 일에 우리의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사용하시는 방법처럼, 우리도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말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계속해서 5절 하반부에서 8절까지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5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야고보 사도는 말의 힘을 선포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말의 무서움에 관하여 선포하였습니다. 말씀은 선포합니다. 아주 작은 불이 얼마나 큰 숲을 불태워 없애 버리는 지를 살펴보십시오. 혀는 이러한 불과 같습니다. 죄악된 혀는 우리의 온 몸을 더럽히고, 우리의 인생의 수레바퀴를 불태어 버립니다. 그것은 지옥불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길들일 수 있지만, 죄악된 혀는 길들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의 말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가장 악마적인 것이 된다는 것을 말씀은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을 보십시오. 놀랍게도 그들은 말씀을 가장 잘 가르쳐준다고 현혹하며, 말씀을 왜곡하여 가장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말이 가진 무서움을 그들은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제가 얼마 전 히틀러의 연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똑똑하다던 독일사람들이 한번에 무장해제되어 열광적으로 악에 동참하게 된 것은 바로 이 히틀러의 연설 때문이었습니다. 히틀러의 말이 온 세상을 죄악으로 이끈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을 때, 우리의 말은 이와 같은 죄악과 죽음의 말이 될 수 있음을 야고보 사도는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선은 우리가 할 수 있는데로 고운말 따뜻한말 바른 말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말이 무엇을 담고 있느냐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는 우리의 말은, 그 말이 아무리 아름다워 보여도 때때로 우리를 죄악과 헛된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담은 말, 사랑을 담은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해야하며, 동시에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그러한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함으로, 진리로 말하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9~12절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야고보 사도는 끝으로 구체적으로 우리가 말을 할 때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말과 이웃을 사랑하는 말이 우리의 입에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이 가르치는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이와 같이 갈라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온전하게 가르치는 일, 말씀위에 바로 서는 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이 곧 우리의 일상의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됨을 말씀은 선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위에 온전히 선다면 우리는 그 말씀과 다른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온전히 연결된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바른 가르침은 곧 바른 말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샘의 비유를 통해, 나무와 열매의 비유를 통해 이와같은 가르침을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말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온전히 설때에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으며, 성령님께서 우리의 주권을 내어 드릴 때에만 우리의 입술이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신적인 능력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안에서 사용될 때에 이 말이 그 창조된 목적대로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사랑을 나누는 통록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때엔 오히려 악한 권세에 사용되어 모든 것을 파괴하는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온전케 하기 위해, 더욱 하나님 앞에 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먼저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가르치는 일을 맡은 이들이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동시에 모든 성도가 그 일에 함께 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 말을 잘하는 것은 그저 언변이 좋거나 말투가 세련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 전통에서는 눌변이 지혜로운 사람의 덕목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말이 무엇을 진실로 담고 있느냐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과 그 사랑을 담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입술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이요, 우리가 만나는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